고법 부장판사 폐지 후 일만 많고 승진 없는 자리 전락…사법행정권 남용 수사 이후 대법 근무 기피 분위기도
대법관들을 위한 숨겨진 조력자인 대법원 재판연구관. 100여 명 안팎의 재판연구관들은 고등법원 배석판사와 같은 10년 정도의 경력을 가진 법관들이 임용된다. 대법관마다 3명 안팎의 재판연구관들이 배당돼 있는데, 이들은 대법관 앞으로 온 사건을 법리적으로 검토해 대법관에게 보고한다. 전국 1심, 2심 법원에서 쏟아져 나오는 재판 결과만큼이나 일도 많다. 2~3년 전 대법원에서 근무를 했던 한 판사는 “저녁을 먹고 다시 돌아와서 서류를 봐야 하는 게 당연한 보직”이라며 “그러지 않으면 대법원에 계류된 사건이 계속 늘어나, 재판 결과만 바라보고 있는 이들이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과거에는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자리였다. 동기 판사들 중에서 소위 ‘인정받았다’고 평가받는 20~30%만 갈 수 있었다. 일이 고되지만 성장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소부가 아닌 전원합의체로 넘어가는 복잡하고 어려운 사건을 많이 다룰 수 있기도 하고, 선배 판사들의 연구 자료를 마음껏 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재판 연구관 경험이 있는 한 판사는 “재판연구관을 하면서 기존에는 1심 재판부의 시선에서만 보던 게 ‘대법원이라면 이렇게 보고 접근하겠구나’라는 것을 알게 돼, 법리적으로 더 깊이 있는 고민을 할 수 있게 됐다”며 “특히 대법관들에게 직접 사건 관련 법리를 보고하고 의견을 나누면서 법리의 대가들에게 직접 배울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훌륭한 경험이었다”고 평가했다.
자연스레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1순위로 평가받던 자리이기도 했다. 법관으로 임용된 뒤 하급심 법원에서 10년 정도의 재판 경험을 가진 이들이 2년 동안 재판연구관을 경험한 후 지방법원 부장판사로 갔다가 서울의 지방법원 부장판사를 2~3년 정도 거친 뒤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법원이 인사 시스템을 손봐 고등법원 부장판사 자리가 없어지면서 인기는 예전 같지 않아졌다. 과거에는 성적 평가 상위권 20~30% 판사들이 줄을 서서 가고 싶어 했던 자리였다면, 이제는 평가 성적 하위 30~40%에도 재판연구관 근무 제안이 갈 정도라는 후문이다.
법원 관계자는 “재판연구관의 인기가 사라진 것은 ‘승진’이 전부였던 문화가 바뀐 것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나”라며 “9시 출근 6시 퇴근을 희망하는 웰빙 문화가 퍼지면서 일은 힘든데 인정은 받지 못하는 자리가 된 재판연구관을 누가 하고 싶어 하겠나”고 얘기했다. 판사 출신의 법조인은 “예전에는 대법원에서 근무하는 게 능력이나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척도였다면,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 이후 판사들이 대법원 근무를 오히려 기피하게 된 분위기도 재판연구관 인기 하락의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서환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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