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몽구 회장(왼쪽), 이건희 회장. 캐리커쳐=장영석 기자 | ||
지난해 말 <일요신문> 이 현직 경제부 기자 5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34%가 이건희 회장과 정몽구 회장을 ‘2004년도 경제계에서 가장 큰 활약을 한 인물’로 꼽았었다.
2004년은 국내 경기침체로 인해 기업들의 사정이 어려웠다고는 하나, 실제로 이들 관계회사들이 한 해 동안 벌어들인 수익은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이들이 관장하고 있는 기업들이 모두 흑자를 기록하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효자’ 노릇을 하는 기업도 있고, ‘애물단지’ 기업도 있다. 과연 이건희 회장과 정몽구 회장에게 ‘효자’와 ‘애물단지’ 기업은 어디일까.
지난해 재계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사람은 단연 정몽구 회장이다. 재계 부동의 1위 그룹 총수인 이건희 회장과 개인 주식평가액, 재계 영향력 등에서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니 그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그에게 지난해는 아쉬움이 많은 한 해다. 현대차그룹 전 계열사가 흑자를 낼 수 있는 기회를 눈앞에 두고 있었으나, 아쉽게도 이를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을 기준으로 현대차그룹은 해외현지법인을 제외하고 총 29개의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다. 이 중 적자를 기록한 곳은 4개사. 현대캐피탈, 현대카드, 기아 타이거즈, 한국경제신문 등이다.
기아 타이거즈(주)와 한국경제신문이 각각 스포츠법인과 언론사라는 특수성을 감안할 때, 실제로 현대차의 ‘대업’에 브레이크를 건 곳은 현대캐피탈, 카드사다. 본업인 제조업이 아닌 금융계열사가 골치덩어리로 전락한 셈이다.
정몽구 회장에게 그룹의 주력사인 현대자동차를 제외하고 가장 효자노릇을 한 곳은 기아자동차. 기아자동차는 지난해 11월 3분기까지 매출 12조, 순익 7천억원을 기록해 계열사 중에서 가장 이익을 많이 낸 것으로 집계됐다. 기아차는 지난 2003년 3분기까지 순익이 6천4백억원가량이었으나, 지난해에는 불경기 속에서도 오히려 실적이 늘어나 정 회장의 마음을 흐뭇하게 했다.
현대모비스와 INI스틸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대모비스는 매출 5조3천억원, 순익 5천5백억원을 기록했고, INI스틸도 매출 3조6천억원에 2천4백억원의 순익을 냈다.
전년 동기와 비교해볼 때 실적이 눈에 띄게 늘어난 곳도 있었다. 대표적인 곳은 BNG스틸과 다이모스, 현대파워텍 등 세 곳. BNG스틸은 삼미특수강이 이름을 바꾼 회사로 현대차 그룹의 냉연강판 생산업체다. 이 회사는 지난 2003년 3분기까지 1백52억원의 흑자를 기록했으나,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무려 순익이 5배 가까이 늘어난 7백25억원을 기록했다.
그런가하면 정몽구 회장의 최측근 인사로 알려진 이중우 사장이 맡고 있는 다이모스의 경영실적도 눈에 띈다. 다이모스는 자동차 부품제조회사로 지난해에 3백48억원의 이익을 내 사상최대의 실적을 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자동변속기 제조회사인 현대파워텍 역시 지난 2003년 3분기 누적 75억원 흑자에서 지난해에는 1백59억원을 기록했다.
그런가하면 1년 전에는 적자를 기록해 ‘미운 오리새끼’였지만, 지난해 화려하게 ‘백조’로 변신을 한 곳도 있다. 엠코와 아주금속공업, 위스코가 바로 그런 기업이다. 종합건설회사로 발돋움하고 있는 엠코는 지난 2003년 3분기까지 1천3백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으나, 지난해 1백23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자동차 부품회사인 위스코와 아주금속공업도 적자를 탈출하고 각각 26억원, 29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이렇게 괄목할 만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정몽구 회장의 ‘전 계열사 흑자’의 야심이 무너진 것은 금융사 때문.
현대카드는 지난 2003년 1천4백50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이후, 1년 만인 지난해에는 무려 5배에 달하는 6천2백73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적자규모가 한 해의 전체 매출을 뛰어넘는 위기상황에 직면한 것. 현대캐피탈도 지난해 3분기까지 전년동기보다 많은 1천8백72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경우는 어떨까.
지난해 11월을 기준으로 삼성그룹은 해외 법인을 제외하고 총 61개의 계열사를 갖고 있다. 이 중 삼성전자, 삼성에버랜드, 삼성생명보험, 제일기획 등 총 52개의 계열사는 흑자를 기록한 반면, 삼성카드, 삼성탈래스, 이삼성인터내셔널 등 9개의 계열사가 적자를 기록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회장이 이끄는 삼성그룹의 경우 적자를 기록한 계열사의 9개가 모두 비상장법인이며 이 중 대다수는 외부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법인이라는 점이다.
이 회장에게 주력사인 삼성전자를 제외하고 가장 ‘효자’는 삼성생명보험주식회사다. 삼성생명은 지난해 반기까지 매출 10조7천4백억원, 순익 5천2백억원을 남겼다. 뒤를 이어 매출 순위로는 삼성물산 7조4천5백억원, 삼성SDI 4조6천억원으로 2, 3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삼성계열사에서 알짜배기 회사로 불리는 곳은 삼성코닝정밀유리. 이 회사의 매출 규모는 다른 계열사에 비해 높지 않지만, 마진율이 50%에 육박하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 7천15억원, 순익 3천38억원을 기록해 그룹에 효자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삼성SDI도 순익 7천억원(2004년 3분기 누적 기준), 삼성전기 1천2백억원, 삼성코닝 1천억원씩을 내며 그룹의 흑자폭을 넓혀갔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 역시 ‘전 계열사의 흑자’라는 대업을 이루진 못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카드사. 삼성카드는 지난해 3분기까지 총 2조2천9백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나 적자가 1조5백억원에 달했다. 그룹의 주력계열사 5~6개의 흑자를 합쳐놓은 것과 맞먹는 금액이다.
삼성전자 방위산업부문과 유럽의 방산업체 탈레스사가 합작한 회사인 삼성탈레스도 1백40억원대의 적자를 기록했다. 또 지난 2001년 삼성SDI가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에게서 주식을 인수한 이삼성인터내셔널의 경우도 적자를 면치 못했다.
해마다 사상최대의 실적을 거듭하고 있는 이건희 회장과 정몽구 회장에게도 금융계열사는 여전히 골치덩어리 자식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