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1월 중순 진로 매각 주간사인 메릴린치가 인수전의 입찰 제안서를 받는 등 매각 진행절차 개시를 앞둔 가운데 (주)진로 인수전 참가업체들의 면면이 드러나고 있다.
증권거래소는 지난 10일 두산 하이트맥주 CJ를 상대로 진로 인수 추진 보도와 관련된 조회공시 요구를 했다. 시중에는 이미 두산 하이트, CJ 등이 진로 인수전에 뛰어들 것이라는 예측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하이트는 지난 연말에 박문덕 회장이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진로에 관심이 많다”고 공식적으로 발언해 진로 인수전이 공식화되는 방아쇠를 당겼다.
박 회장은 “좋은 찬스가 하나 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진로라는 회사만큼 좋은 회사가 없다. 가능하면 인수할 생각이다. 컨소시엄 형태도 생각하고 있다”며 진로 인수 의사를 공식적으로 내비친 것.
그간 주류업계에선 진로의 부도 이후 국내 최대 주류업체로 부상한 맥주업체 하이트가 진로 인수전에 나서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많이 나돌았다. 실제로 증권가에선 하이트의 진로 인수가 긍정적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롯데나 두산이 진로를 인수할 경우 하이트에 잠재적 경쟁자로 부상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선 롯데가 일본의 아사히맥주와, 두산이 오비맥주를 매각한 벨기에 인터브루와, 하이트가 자본제휴관계에 있는 칼스버그사와 컨소시엄을 결성해 진로 인수전에 참가하지 않겠냐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진로 인수가가 애초 1조원대에서 최근엔 2조원대로, 일각에선 3조원대가 되는 것 아니냐는 예상까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진로를 탐내는 세력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애초 CJ와 진로의 채권을 다량 확보하고 있는 대한전선, 골드만삭스의 이름이 꾸준히 거론됐지만 여기에 식품 음료회사인 롯데, 두산, 하이트, CJ 등이 참여한 데 이어, 다국적 주류업체인 얼라이드도멕의 국내 자회사인 진로발렌타인스도 가세했고, 시티은행 계열의 CVC와 한국시장에서 기업인수 뒤 매각으로 재미를 본 뉴브릿지캐피탈까지 거론되면서 진로 인수전의 판이 커지고 있다.
먼저 가장 강력한 후보군은 롯데 두산 하이트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핸디캡을 안고 있다는 공통점도 있다. 롯데는 대선주조를, 두산은 산소주를 만드는 (주)두산이, 하이트는 충북과 전북 지역에 소주 회사를 계열사로 두고 있다. 진로의 국내 소주 시장 점유율은 55% 정도로 롯데나 두산, 하이트가 진로를 인수할 경우 국내 시장 점유율이 50%가 넘어가게 된다. 하지만 지난해 가을 서울 고등법원은 경남 소주업체인 무학의 대선주조 인수 시도에 대해 인수업체와 피인수업체의 총 시장점유율이 50%를 넘으면 기업인수를 규제한다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규정을 근거로 무학의 대선주조 인수는 경쟁제한행위라며 무학이 대선주조 보유주식을 전량 매각하라고 판결했다. 무학이 대선을 인수할 경우 무학의 부산 경남지역 소주시장 점유율이 90%가 넘어서기 때문이다. 이를 진로 인수전에 적용해보면 두산이나 하이트, 롯데는 애초부터 진입이 불가능한 것. 하지만 해당업체에선 이 부분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실제로 입찰에 참여하게 되는 경우 큰 문제가 아니다’란 입장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자금력.
진로의 인수 예상가가 시간이 지날수록 뛰고 있기 때문이다. 두산 롯데 하이트 CJ 등 국내 예상 후보자 빅4 중 가장 자금이 달리는 기업은 하이트다. 하이트는 주력 기업인 맥주회사 하이트 외에는 이렇다할 계열사가 없다. 하이트는 지난 90년대 말 외환위기 파동이 일기 직전 맥주업계 1위를 탈환한 뒤 지금까지 부채 줄이기 등 ‘몸 만들기’에 주력해왔다.
하이트는 최근 부채비율은 117.3%, 2004년 6월 기준으로 부채총액은 1조원 정도, 자본 잉여금과 이익잉여금이 각 4천원억 정도다. 이 회사는 최근 매출액 증가율이나 순이익 증가율이 답보 상태를 보이고 있어서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이라 박 회장 발언대로 ‘진로 인수를 기회’라고 여겨봄직하다. 문제는 최소한 1조5천억원이 넘을 것으로 보이는 인수대금 마련인데, 증권가에선 하이트 단독으로는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선 하이트의 지분 11.9%를 갖고 있는 칼스버그와 다시 한번 손을 잡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하이트는 지난 99년 칼스버그에서 1억달러를 유치해 재무구조 개선작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경험이 있다.
두산의 경우 지난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대우종합기계 인수전에 1조8천억원을 써내 재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어 곧바로 진로 인수전에 참가하겠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두산은 이미 지난 연말 전분당 사업체인 두산콘프로덕츠코리아를 6백78억원에 매각하고, 버거킹과 KFC사업 부분을 분리해 별도 법인을 설립해 ‘몸만들기’에 나선 상태이다. 재계에선 이런 일련의 작업을 진로 인수전을 대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보고 있다. 식음료 사업부분을 거느리고 있는 두산의 재무구조개선을 위한 것이라는 설명. (주)두산의 경우 부채비율이 346%에 이르는 등 부채총계가 자본총계의 3배를 넘는다. 때문에 진로 인수전에 참가할 경우 협상자 선정과정에서 재무구조에 관한 심사를 받을 때 불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두산의 오비맥주 사업을 인수한 벨기에의 인터브루가 진로 인수전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두산과 다시 한번 손을 잡게 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두산이 소주시장의 패자로 등극하면 오비맥주 인수 뒤 별다른 매출 신장이 일어나지 않고 있는 인터브루도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산은 현재 오비맥주의 지분을 5%만 남겨두고 전량 인터브루에 매각한 상태다. 물론 두산이 대우종기전 인수에서 탈락할 경우는 대우종기 인수를 대비해 비축해놓은 자금을 쏟아부을 수 있어 얘기가 달라지지만 말이다.
롯데의 경우 계열사로 대선주조를 갖고 있다는 것 말고는 진로 인수전에서 거칠 게 없다. 일각에선 진로 인수전 초기부터 나왔던 일본계 노무라증권과 아사히맥주, 롯데의 삼각협력관계가 구체화될 것이라는 지적도 없지 않다. 이미 롯데는 해태음료 인수전에서 아사히맥주와 협력해 인수를 성공시킨 경험도 있다.
역시 자금력에서 롯데만큼이나 풍부한 CJ의 행보도 주목받고 있다. 자금이 풍부한 CJ는 최근 CJCGV를 코스닥에 등록시키는 등 신규 사업을 벌일 실탄이 풍부한 상태인데다 진로 부도 이후 롯데가 구설수에 오른 것과는 달리 별다른 데미지를 입지 않은 것도 강점이다. CJ는 진로 인수와 관련 미국계 JP모간의 자문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회사 중 진로의 채권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대한전선이 이번 인수전에서 다른 국내 업체의 러브콜을 무시하고 끝까지 혼자서 완주할지도 관심사항.
진로의 매각 주간사인 메릴린치는 이르면 1월 중순께 진로인수합병 시행공고를 내고 인수의향서를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동아시아 최대의 인수합병전으로 꼽히고 있는 진로 인수전이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