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r |
반값등록금 청계광장 집회 17일째인 6월 14일. 한 여름 시원한 청계광장 분수대 주변으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오후 7시께, 빌딩 숲 사이로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할 무렵 대학생들은 집회준비로 분주한 움직임을 보였다.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소속으로 보이는 몇몇 학생들은 이날 집회진행을 위한 오디오장비를 세팅하는 한편 집회 취지를 알리는 대형 현수막을 내걸었다.
7시 30분을 넘기자 각 대학교 학생들은 청계광장 우측 인도를 중심으로 질서정연하게 자리를 잡았다. 학생들 사이사이로 참가 대학의 대형 깃발들이 바람에 나부꼈다. 해가 완전히 질 무렵 집행부는 준비한 종이피켓과 촛불을 참가자들에게 나눠주며 본격적인 촛불문화제의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한 점 한 점 초에 켜진 촛불은 꼬리에 꼬리를 물더니 삽시간에 큰 불길로 번져나갔다. 기말고사 기간인 탓에, 지난 6월 10일에 있었던 대규모 집회만큼의 규모는 아니었지만 촛불을 밝히기에는 충분한 숫자였다.
촛불문화제의 포문은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전권희 부위원장의 모두 발언으로 시작됐다. 마이크를 넘겨받은 전 부위원장은 “내가 대학을 다니던 80년대 대학 등록금은 50만 원에 불과했다. 그런데 지금 무려 8배 이상이 올랐다. 말이 되느냐. 정부는 사회적 책임을 져야한다”며 강한 어조로 반값등록금 실현을 주장했다.
전 부위원장이 모두 발언을 하고 있을 시각, 경찰은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더니 미신고 집회라는 점을 들어 해산할 것을 강력히 경고했다. 집회 중간마다 경찰의 경고메시지가 이따금씩 들려왔다. 하지만 전 부위원장의 발언은 멈추지 않았고 학생들과 참가 시민들의 항의하는 목소리는 더 굵어지고 있었다.
집회는 ‘촛불문화제’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야말로 한바탕의 잔치였다. 아우성을 듣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 옛날 장송곡풍 위주의 민중가요가 아닌 가요풍의 최신 민중가요들이 울려 퍼지며 분위기가 고조됐다. 중간 중간 여학생들의 발랄한 율동 공연과 정부에 대한 풍자가 뒤섞인 위트 있는 시민들의 모두 발언이 이어지면서 분위기는 점차 고조됐다.
집회가 중간쯤 다다랐을 때는 박자은 한대련 의장이 직접 마이크를 잡았다. 박 의장은 “지난 10일 대규모 집회가 있었다. 당시 정부에 반값등록금 실현에 대한 대답을 내놓으라고 했는데, 답이 나왔다. MB(이명박 대통령)는 서둘러 하지 말고 진지하게 대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우리는 죽음을 망설이고 있다. 등록금 때문에 많은 친구들이 죽음을 공유하고 학업을 포기하고 있다. 정부는 해결의지가 없다”며 더욱 강경한 시위와 정권심판을 주장했다.
▲ 지난 2일 광화문에서 열린 반값등록금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대학생.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동국대학교에 재학 중이라는 김병수 씨(20)는 당장 내일 기말고사를 앞두고 나온 상황이었다. 그는 “난 올해 입학한 11학번 신입생이다. 사실 대학에 들어오기 전까지 등록금 문제에 대해 잘 몰랐다. 그런데 학교에 들어와 보니 문제가 심각하더라. 나보다 형편이 어려운 친한 선배 한 분이 계시는데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결국 다음 학기 등록을 포기하셨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는 이어 “또 다른 큰 문제는 등록금 운영의 투명성이다. 우리 동국대 학생회는 얼마 전 학교 측에 등록금 운영 내역을 정중히 요청했다. 한 해 등록금 운영 내역은 보통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자료다. 그런데 달랑 7페이지짜리 요약본을 건네더라. 말이 되느냐”며 비싼 등록금문제와 함께 학교의 등록금 운영 투명성 문제를 꼬집기도 했다.
집회 현장에는 학생들뿐 아니라 다양한 계층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그중 유독 눈길을 끄는 사람들이 있었다. 집회 한 구석에서 나란히 촛불을 밝힌 채 학생들을 독려하고 있는 아주머니 세 명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각자 대학생 아들과 손자, 조카를 둔 우리네 어머니들이었다. 사실 ‘등록금 1000만 원 시대’에 허리가 휘며 가장 고통을 겪는 이는 바로 부모님들이다.
부끄럽다며 한사코 인터뷰를 거부하던 60대 주부 이미숙 씨(가명)는 기자의 계속되는 인터뷰 요구에 작정한 듯 속마음을 연거푸 쏟아냈다. 그는 “집회 시작 때부터 계속 참가하고 있다. 내 손자가 지금 대학생이다. MB정부가 도대체 한 게 뭐냐. 부자감세나 했지 정작 대학생들과 같은 약자들을 위해 한 게 뭐냐. 대학 등록금 꼭 인하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씨와 함께 참가하고 있는 김영자씨(가명)는 안산에서 매일같이 청계광장을 찾는다고 했다. 김 씨는 지난 광우병 파동 때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촛불집회에 참여했다는 열혈 시민이었다. 그는 “등록금 때문에 고생하는 대학생들이 참 안쓰럽다. 작은 힘이지만 엄마 된 입장에서 격려하러 매일 나온다. 지난 대규모 집회 당시, 경찰들이 아이들을 막무가내로 끌고 갔을 때 정말 마음이 아프더라. 그때도 작정하고 뜯어말렸다. 문제가 빨리 해결됐으면 한다”며 부모로서 깊은 속마음을 내보였다.
시위 현장에는 직장인으로 보이는 청년들도 꽤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한 30대 남성 직장인은 “난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이 아니다. 단지 시청근처에서 근무하는 평범한 직장인일 뿐이다. 퇴근길 청계광장을 지나다 며칠 전부터 우연히 집회에 참여하게 됐다. 나도 대학시절에 정부로부터 1000만 원 넘게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얼마 전 부터 이자와 함께 원금을 상환하고 있다. 그 빚을 갚느라 허리가 휜다. 이 학생들도 학교를 졸업하면 사정은 나와 비슷할 것이다. 그 전에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며 학생들의 시위를 거들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운 좋게 취업해도 학자금 대출금의 이자와 어김없이 찾아오는 원금상환의 압박에 허덕이는 우리네 청년층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이외에도 집회현장에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과 같은 진보계열 사회단체나 ‘아고라’와 같은 커뮤니티 동호회 회원들이 자리를 함께하며 학생들의 집회를 후원했다. 이날 촛불문화제는 마지막에 한 무명 가수의 멋들어진 가창 공연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학생들이 중간고사 시험을 앞둔 탓에 집회는 9시를 전후해 정리됐다. 각 대학 학생들은 각자 깃발 아래로 모여 하루의 회포를 푸는 듯, 힘찬 마무리 구호와 함께 집회를 정리했다. 우려했던 경찰과의 대규모 충돌은 다행히 없었다.
집회를 지휘하고 있는 한대련 측은 정부의 조건 없는 반값등록금 방안이 나올 때까지 촛불문화제를 이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대련은 당분간 평시에는 소규모 집회로 운영하되, 매주 금요일을 대규모 집중집회 기간으로 정해 촛불문화제를 이끈다는 계획이다. 한여름 밤 대학생들의 세상을 향한 외침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쇼라고? 소신이야
▲ 왼쪽부터 김여진, 김제동. |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소셜테이너는 단연 배우 김여진이다. 김여진은 지난 6월 2일 집회에 직접 참여해 학생들과 함께했고 트위터를 통해 현장분위기를 대중에 전달하기도 했다. 과거 홍익대 청소 노동자 시위현장에 뛰어들기도 했던 그는 최근에는 한진중공업 시위현장에 뛰어들다 경찰에 연행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현재 김여진은 한진중공업으로부터 불법침입 혐의로 고소당한 상태다.
평소에도 소신 있는 연예인으로 통한 MC 김제동 역시 집회참여는 물론 자신의 사비까지 들여가며 학생들을 적극 후원하고 있다. 김제동은 지난 6월 8일 집회에 참여해 사비 500만 원을 지원한 바 있다. 하지만 일부 지원금으로 햄버거를 구입해 전·의경에게 나눠주는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충돌이 일어나면서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이외에도 가수 박혜경이 집회현장을 찾아 즉석 라이브무대 선물로 학생들과 참여 시민들을 격려한 바 있고, 중견배우 권해효 역시 반값등록금 1인 시위에 앞장서는 등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한]
인권 논란 일파만파 그러면 안전합니까?
경찰이 반값등록금 집회에 참여한 여학생을 연행해 조사하는 과정에서 브래지어를 탈의시킨 후 대면조사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져 큰 파문이 일고 있다.
한대련 측은 6월 15일 청계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경찰의 인권침해를 문제삼고 나섰다. 특히 지난 10일 청와대에서 벌어진 시위현장에서 광진경찰서로 연행된 한 여대생이 브래지어 탈의를 요구받고 경찰의 대면조사에 나섰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문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경찰은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당시 해당 여학생이 화장실서 스타킹을 벗고 나오는 등 이상행동을 보였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 매뉴얼대로 브래지어 탈의를 요청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해당 여학생은 한 라디오 방송 인터뷰를 통해 “48시간 장기 조사를 앞두고 불편한 스타킹을 벗었을 뿐이었다. 나의 행동은 이상행동이 아닌 상식적인 수준이었고 남자경찰관 앞에서의 대면조사 당시 수치심을 느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문제가 커지자 ‘여학생이 성적수치심을 느꼈다면 사과를 표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경찰은 논란과 관련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직권 조사를 요청하면서 정면 돌파에 나섰다.
하지만 피해 학생 측과 경찰의 진술이 엇갈리면서 경찰의 과잉수사 논란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파장이 더욱 확대되고 있는 모양새다.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