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봄 청와대 주변 및 정치권 안팎에서는 차마 믿기 힘든 얘기가 떠돌기 시작했다. 대통령실에 소속된 고위직 공무원이 유부녀와 불륜을 저질렀다는 내용이었다. 불륜설에 휩싸인 인물은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 L 씨였다. 정부의 입장을 대변할 뿐 아니라 ‘대통령의 입’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고위 공무원의 부적절한 소문이 나돌자 정치권은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도 설마설마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L 씨를 둘러싼 구설은 단순한 소문이 아니었다. L 씨가 간통 혐의로 피소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고소인은 L 씨의 불륜 상대로 지목된 여성의 남편이었다. 놀라운 것은 고소 1년이 지난 현재도 ‘청와대 불륜 스캔들’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다. 기자는 6월 13일 고소인 A 씨를 만나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사건의 내막 및 뒷얘기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두 사람의 잘못된 만남으로 인해 가정은 풍비박산이 났고, 모든 것이 엉망이 됐습니다. 너무 큰 충격에 정상적인 생활이 힘듭니다. 하지만 가장 화가 나는 것은 두 사람이 끝까지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1년 만에 사건의 진실을 털어놓기까지 정말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A 씨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한참을 망설이다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는 지난해 5월 24일 간통 혐의로 L 씨와 부인 K 씨를 고소했다. 청와대 고위공직자와 국회의원 비서관 출신이 연루됐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세간의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이상한 것은 정부 고위 공무원이 연루된 이 엽기적인 사건의 내막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A 씨는 “부인의 불륜 상대가 L 씨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L 씨의 신분상 얼렁뚱땅 사건이 무마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간통 증거 하나를 제출하는 데도 신경을 써야 했고 검찰에 기소되기까지 수없이 가슴을 졸여야 했다”고 그간의 고충을 털어놨다.
사건의 진실은 무엇이고 고소 1년이 지난 현재 이 사건은 어떻게 됐을까. 주목할 점은 간단한 간통사건이 검찰로 송치되기까지 무려 반년이 걸렸고, 고소한지 1년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다.
우선 이 사건이 충격적이었던 가장 큰 이유는 불륜설에 휩싸인 주인공이 국정홍보비서관인 L 씨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단지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상대로 지목된 K 씨도 평범한 인물은 아니었다. 중진 국회의원 비서관 출신인 K 씨는 부적절한 행각을 저지를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가 명예회장으로 있던 재단의 간부를 맡고 있었다. 특히 <일요신문> 취재결과 K 씨는 현직 청와대 고위급 인사의 외조카로 미인대회 출신이라는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는 인물로 확인됐다.
두 사람이 알고 지낸 지는 10여 년이 된 것으로 전해진다. A 씨가 이들의 ‘이상한 낌새’를 본격적으로 눈치챈 것은 지난해 3월경부터였다.
“‘아니겠지’라고 생각했지만 미심쩍은 부분이 너무 많았다. 결국 나는 두 사람을 미행했고, 이들이 모텔과 오피스텔에 드나드는 것을 수차례 목격하고 캠코더로 찍었다. 그리고 지난해 5월 20일 종로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간통현장을 적발했다.”
간통신고를 한 A 씨는 출동한 경찰을 대동하고 문제의 오피스텔에 들어갔고 그곳에 함께 있는 두 사람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현장에서 증거물로 성관계를 뒷받침할 수 있는 휴지를 습득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선지 이들에 대한 연행은 바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서둘러 경찰서로 이들을 연행하려던 경찰은 어디로부터 전화를 받더니 2시간 동안 시간을 끌었다. 이 사이 L 씨와 부인은 나를 상대로 회유를 시도했다. 그러는 사이 L 씨의 부인과 청와대 직원들이 현장에 도착했고, 이들과 함께 경찰서로 갔다. 간통 고소장을 접수하려 했으나 L 씨와 그의 부인 등이 ‘청와대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난 후 고소하라’고 간곡히 사정하는 탓에 며칠간 여유를 주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부터 고소를 막기 위한 두 사람의 필사적인 노력이 시작됐다고 한다. K 씨는 “다시 잘해보고 싶다. 우리 아이를 봐서라도 살려달라”면서 남편인 A 씨에게 매달렸다. L 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공직에 몸담고 있던 L 씨는 A 씨에게 ‘6월 중순에 거취를 정리한다’ ‘관대하게 봐달라’ ‘청와대 공식회의에 빠지기 시작했다. 내 커리어는 끝났다’ ‘6월 2일(지방선거) 전까지는 사퇴가 어렵다. 조금만 시간을 달라’ ‘언론에만 터트리지 말아달라’ ‘주변에 피해 가지 않게 해주면 조용히 살겠다’ ‘죄송하다’등의 문자를 수차례 보냈다는 것이다. 부적절한 관계가 아니었다면 A 씨에게 그럴 이유가 없을 터였다.
하지만 A 씨로서는 도저히 용납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각자 배우자와 자녀까지 있는 이들이 가정을 무너뜨렸다는 것도 그랬지만 청와대와 정부 주요기관에 몸담고 있는 이들이 부적절한 행각을 저질렀다는 것은 치가 떨리는 일이었다. 너무도 큰 배신감과 충격을 느낀 A 씨는 “고소 안하면 서포트 해주겠다”는 L 씨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5월 24일 간통으로 고소하기에 이른다.
이후 L 씨는 고소를 취하해 줄 것을 요구하며 집요하게 연락을 해왔고, 직장으로도 수차례 찾아왔다고 한다. 당시 L 씨는 ‘언론에서 눈치챈 것 같다’ ‘고소 취하하면서 얻을 것을 얻으면 안되겠나’ ‘언론에 나오면 서로 힘들어진다’는 등 사건이 기사화될 것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는 것이다.
A 씨는 부인 K 씨가 당시 몸담고 있던 재단에 사표까지 내며 매달리고 L 씨 역시 찾아와 고소취하를 사정하자 고소취하 대신 합의로 일을 정리하려 만났으나 끝내 무산됐다고 한다. 두 사람이 끝내 반성도 하지 않는 데다가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통간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후 A 씨는 현장에서 수집한 물증과 CD 등을 증거물로 제출했고 2010년 11월에서야 국과수로부터 “휴지에서 검출된 체액이 두 사람의 DNA와 일치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갖은 우여곡절 끝에 경찰에 고소한 지 6개월이 지나서야 사건은 기소의견으로 검찰로 송치됐다.
A 씨를 가장 분노케 한 것은 두 사람의 태도였다고 한다.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두 사람은 간통혐의에 대해서는 부인했다는 것이다. 검찰조사에서 K 씨는 “이혼하기로 합의한 상황이었고 남편이 용서를 했기에 죄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는가 하면 현장에서 수집한 성관계 물증에 대해서도 말도 안되는 이유를 대며 둘러댔다는 것이다. 또 지난 4월 8일 시작된 간통사건 재판에서도 L 씨의 변호인은 ‘A 씨와 K 씨의 관계는 이미 파탄 상황이었다’며 가정을 파탄시킨 책임을 면하려 했다는 것이다.
A 씨는 “두 사람이 깨끗하게 인정하고 진심으로 반성했다면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 얼굴에 침뱉기 아닌가”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특히 A 씨에 따르면 두 사람이 모텔과 오피스텔을 드나들며 밀애를 나누던 장면을 목격할 당시는 천안함 사태로 온 나라가 침통해 있을 때였다. 천안함 장병들의 시신이 발견되고 이들에 대한 추모가 이뤄지던 때 정작 나랏일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할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이라는 사람은 부적절한 행각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L 씨는 피소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조용히’ 사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갑작스런 사임은 대외적으로는 ‘총선출마’ 때문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청와대 측은 L 씨의 사표 제출과 관련 “선거출마 준비를 위해 사표를 낸 것으로 알고 있다”며 L 씨가 간통 혐의로 피소된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입장을 보인 바 있다.
하지만 A 씨는 “간통현장이 적발됐을 때 청와대 측 사람도 2~3명 온 것으로 알고 있다. 또 L 씨가 내게 ‘윗선(이○○)에게도 얘기했다’고 분명히 말했었다”며 청와대 측에서 피소사실을 몰랐다는 것에 강한 의구심을 드러냈다. 또 ‘언론에 알려지면 끝장’이라며 그렇게 자리유지에 전전긍긍하던 L 씨가 피소 후 소리소문없이 사임한 것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과연 청와대 간통 스캔들의 진실은 무엇일까. 이 사건은 지극히 한 개인의 사생활 문제인 데다가 상당히 노골적인 부분을 담고 있어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 따라서 재판부의 판결이 나기 전에는 섣불리 단정할 수 없는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재판을 통해 고소인인 A 씨의 주장이 사실로 입증될 경우 문제는 달라진다. 공직자의 윤리 문제가 재부각되는 것은 물론 L 씨가 소속됐던 청와대의 도덕성도 적잖은 타격을 입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이 사건은 ‘정치’에 뜻을 보였던 L 씨의 앞날에도 계속 걸림돌로 남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오는 7월 6일로 예정된 결심 재판에서 재판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자못 궁금하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