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의 저축은행 비리 사건 수사가 청와대와 정치권을 향하고 있다. ‘저축은행 리스트’를 들고 있는 김준규 검찰총장 사진은 합성. |
검찰은 실명이 공개된 친이계 실세 공성진 전 한나라당 의원과 임종석 전 민주당 의원에 대한 계좌 추적에 나서는 등 리스트에 올라 있는 정치인들에 대한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여권내 유력한 차기주자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동생 박지만 씨와 조카도 저축은행 사태에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어 정국은 격랑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야권 일각에서는 ‘중수부 폐지’ 위기에 몰린 검찰이 리스트를 담보로 청와대와 빅딜을 추진하고 있다는 강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중수부를 사수하기 위해 ‘배수의 진’을 친 검찰이 신구 정권을 망라한 전현직 의원들과 여야 실세들이 대거 포함된 ‘저축은행 리스트’ 카드로 마지막 승부수를 띄우고 있는 형국이다. 수면위로 부상하고 있는 리스트의 실체 및 칼자루를 쥔 검찰의 승부수를 들여다봤다.
검찰이 확보한 저축은행 리스트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부산저축은행과 삼화저축은행의 각종 비리사건에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정관재계 인사 리스트가 그것이다.
우선 삼화저축은행의 경우 신삼길 명예회장 구속(4월 1일)을 전후해 정재계 유력인사들이 구명로비에 나섰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나돌았다. <일요신문>도 신 회장 구속 직후 ‘여권 거물급 동생이 신 회장의 구명로비를 펼친 의혹이 있다’(987호)는 기사를 최초로 게재한 바 있다.
이러한 의혹은 결국 소문이 아닌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여기에 정진석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삼화저축은행 사외이사를 지낸 것으로 드러나면서 파문은 일파만파로 번졌다. 급기야 민주당은 박지만 씨 부부와 신 회장이 긴밀한 관계에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홍영표 민주당 의원은 6월 3일 국회대정부 질문에서 “신 명예회장과 박지만 씨, 정진석 정무수석이 아주 긴밀한 관계라고 한다. 박 씨는 신 명예회장이 연행되기 두 시간 전 같이 식사했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홍 의원은 또 “박 씨의 부인 서향희 씨는 삼화저축은행 고문 변호사였다가 삼화저축은행 사건 직후 사임했다. 고문 변호사라면 사건이 발생한 경우 오히려 변호해야 하는 것 아니냐. 철저히 진실을 밝혀달라”고 압박했다.
이후 민주당은 박 씨가 신 회장을 만날 때 정진석 수석 외에 또 다른 청와대 인사와 국정원 간부도 동석했다는 추가 의혹을 제기하며 공세수위를 높였다. 이윤석 의원은 8일 대정부질문을 통해 “청와대 권재진 민정수석과 정진석 정무수석, 민병환 국정원 제2차장, 박지만 씨, 신 명예회장 등이 강남구 청담동의 W차이니스 레스토랑에서 자주 회동을 가져왔다는 제보가 있다”며 해당 음식점의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실제로 <일요신문> 취재결과 박 씨와 신 회장은 비슷한 연배인 정 전 수석과 이웅렬 코오롱 회장, 연예인 이 아무개 씨 등과 친목모임을 만들어 골프장과 식당 등에서 자주 어울린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동갑내기인 박 씨와 신 회장은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히 가깝게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씨가 신 회장의 구명로비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했을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상당수 전현직 국회의원들도 ‘신삼길 리스트’에 오르내리고 있다. 삼화저축은행 불법대출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는 신 회장으로부터 “여야 전현직 국회의원 2명에게 매월 수백만 원씩 억대 금품을 전달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대가성 여부를 집중적으로 수사하고 있다.
신 회장은 검찰에서 2005년부터 최근까지 임종석 전 민주당 의원에게 매달 300만 원씩, 지난 6월 9일 대법원의 확정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한 친이계 핵심인 공성진 전 한나라당 의원에게는 매달 500만 원씩 건네는 등 두 사람에게 총 1억 5000만 원 상당의 금액을 각각 전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신 회장이 두 전직 의원에게 건넨 돈이 후원금 성격의 정치자금이 아니라 은행 퇴출을 저지하기 위한 청탁용 로비 자금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조만간 두 전 의원을 소환해 돈을 받은 경위를 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또 신 회장이 체포되기 직전까지 평소 두터운 친분 관계를 유지해 왔던 박지만 씨 부부와 이웅렬 회장, 정 전 수석 등 정관계 인사들을 두루 접촉한 정황이 포착된 만큼 이들을 상대로 구명 로비를 벌였는지도 파헤칠 것으로 알려졌다.
구여권 인사들도 ‘신삼길 리스트’에 올라 있다. 검찰은 DJ 정부 때 실세로 통했던 K·H 전 의원이 신 회장으로부터 정치적 후원을 받으면서 삼화저축은행의 각종 이권사업에 깊숙이 개입한 정황을 잡고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 왼쪽부터 박지만 씨, 은진수 전 감사위원, 정진석 전 정무수석, 공성진 전 의원, 임종석 전 의원 |
검찰은 부산저축은행 측에서 로비스트 박태규 씨를 내세워 청와대 수석급인 K 씨에게 퇴출저지 등 구명 청탁을 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 또 권재진 수석은 부산저축은행 고문 변호사이자 연수원 동기인 박종록 변호사로부터 구명 청탁을 받은 의혹을 받고 있고, 백용호 정책실장은 이 은행 계열사인 서울신용평가정보에서 고문으로 재직하며 14개월간 4500여만 원의 급여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파문을 확산시키고 있다.
검찰은 부산저축은행 브로커 박태규 씨가 20억 원 이상을 정관계 로비자금 명목으로 받아갔다는 관련자들의 진술을 확보하고 정관계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검찰은 박 씨의 통화내역 등을 확보해 지난해 6월 이후 박 씨가 집중적으로 접촉한 정관계 인사들이 박 씨에게 금품을 받았는지 여부를 추적하고 있다. 검찰은 박 씨가 이 시기에 여야 현역의원 4~5명과 청와대 인사 2~3명과 집중적으로 통화한 사실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또 구속된 부산저축은행 2대 주주 박형선 해동건설 회장을 상대로 정관계 로비 여부를 집중적으로 캐묻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박 회장은 부산저축은행그룹 박연호 전 회장의 광주일고 2년 후배이자 김양 부회장과는 동기 동창이다. 검찰은 특히 해동건설의 사세가 구 정권 때 급성장한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검찰은 박 회장을 상대로 부산저축은행이 120개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해 각종 부동산 사업을 벌이는 과정에서 과거 정권 유력인사들을 상대로 로비를 했는지 여부를 집중 추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부산저축은행 핵심 임원들이 광주일고 출신이라는 점에서 호남권 일부 유력 정치인들이 부산은행 사태 및 구명로비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됐을 가능성에 힘을 싣고 있다. 실제로 검찰은 야권의 차기주자 중 한 사람인 A 씨를 비롯해 호남권 현역의원 4~5명을 리스트에 올려 놓고 수사망을 좁히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검찰은 또 부산저축은행이 퇴출 위기에 몰리자 정관계 로비스트 역할을 맡긴 당사자로 지목받고 있는 윤여성 씨(구속)의 입을 여는 데도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검찰은 부산저축은행 고위 임원들이 윤 씨를 통해 청와대 실세를 비롯한 정관계 유력인사들을 두루 접촉해 구명로비를 펼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참여정부 실세였던 B 씨와 민주당 K 의원은 부산저축은행 PF대출에 개입해 거액의 정치자금을 수수한 의혹을 받고 있다. 또 민주당 중진인 C 의원, 한나라당 K P H 의원 등은 특혜인출 리스트에 올라 있다.
이밖에 상당수 현역의원들은 전국 저축은행으로부터 지속적으로 후원금을 수수한 것으로 드러나 대가성이 확인될 경우 상당한 정치적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중앙선관위가 공개한 2004~ 2010년 고액 후원자 명단에 따르면 신삼길 회장은 이 기간에 한나라당 공성진 전 의원과 김학용 의원, 민주당 김영춘 의원에게 각각 500만 원을 후원했다. 2000년 삼화저축은행 이사로 재직했던 유 아무개 씨는 한나라당 이사철 의원에게 2008년 500만 원을 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4년 9월 삼화저축은행의 지분을 100% 사들이며 대주주로 등극한 IBC& 이사인 최 아무개 씨는 박근혜 전 대표와 우원식 민주당 의원에게 2007년과 2009년에 각각 300만 원과 500만 원을 후원했다.
영업정지된 보해상호저축은행의 모회사인 보해양조의 임건우 회장도 국회의원 12명에게 고액의 후원금을 낸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지역 국회의원들은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지속적으로 후원을 받고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지원 전 민주당 원내대표는 6월 6일 언론인들과의 간담회에서 “부산저축은행 퇴출저지 로비 의혹 과정에 한나라당 부산 출신 의원들이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형오·김무성·정의화 등 부산지역 한나라당 의원 17명은 8일 박 전 대표를 검찰에 고소하는 한편 의원직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저축은행의 정치인 후원 논란이 급기야 법정 공방전으로 비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저축은행을 겨냥한 수사 칼날이 서서히 청와대와 정치권을 향하면서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을 상대로 정면승부를 펼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검찰 일각에서는 ‘중수부 폐지’라는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마지막 승부수인 ‘정관계 리스트’ 카드를 꺼내들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검찰이 맞짱 승부수를 띄울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청와대 또한 여권 실세들이 대거 포함된 리스트가 공개될 경우 조기 레임덕에 직면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그동안 ‘중수부 폐지’ 문제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던 청와대가 갑자기 반대 입장을 피력한 배경에는 이러한 위기감이 투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야권이 검찰과 청와대 간의 빅딜 의혹을 제기하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과연 검찰이 성역없는 수사로 ‘국민의 검찰’로 거듭날지 아니면 중수부를 사수하기 위해 ‘권력의 시녀’로 전락할지 본 궤도에 진입한 ‘저축은행 리스트’ 수사 추이에 국민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