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고 서글픈 하루입니다
제가 경기에 나서지 않으면, 또 다시 ‘음주파문 후유증’ 이런 내용의 기사들이 나오겠죠? 인터넷을 안 보고, 댓글을 읽지 않고 살다가, 가끔 들어가서 제 기사들이나 댓글을 보면 정말 할 말을 잃게 됩니다. 미국에서 나온 기사들을 보고 쓴 한국의 기사들이 또 다시 재구성되면서 그 글들에 달린 입에 담지 못할 댓글들까지…, 제가 공인이고, 한국을 대표해서 메이저리그를 뛰고 있기 때문에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 너무 잘 압니다. 더욱이 음주 운전은 어떤 변명으로도 설명이 안 되는 것이었죠.
하지만, 저도 사람이고, 아프고 쓰라린 마음에 자꾸 채찍을 가하시면, 자꾸 이상한 쪽으로 생각이 쏠립니다. 무조건 칭찬과 격려만을 바라는 건 아닙니다. 비난과 비판을 하시더라도, 굳이 막말을 해야만 되는 걸까요?
아내가 며칠 전에 이런 기사를 읽었다고 하네요. 한국의 어느 교수님께서 ‘아시안게임을 통해 군복무 면제 혜택을 받은 추신수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게 사회정의에 어긋나지 않아 보인다’라고요. 물론 그 교수님께서는 군복무가산점제의 부활과 관련된 글을 쓰면서 ‘제대군인에게 혜택을 줄 것이 아니라 군복무를 이행하지 않은 모든 국민에게 이에 상응하는 부담, 곧 세금을 부과하는 것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절 예로 드셨더라고요. 제가 만약 음주 운전으로 지탄을 받지 않았더라면 굳이 제 이름을 제목으로 거론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국제대회를 통해 병역면제 혜택을 받은 사람이 저밖에 없는 건 아니니까요.
많이 힘드네요. 팀을 위해, 제 자신을 위해, 또 절 지켜보는 팬들을 위해, 하루하루 이 지긋지긋한 슬럼프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는데, 전 자꾸 우스운 사람이 되는 것만 같습니다.
미국 선수들, 아니 여기서 뛰고 있는 외국 선수들은 야구를 잘하든, 못하든 여유가 넘칩니다. 저도 그들의 낙천적인 성격을 배우려고 노력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몸에 밴 생각들은 쉽게 바뀌질 않네요. 제가 야구를 배울 때는 야구만 했습니다. 야구로 성공하고 싶었기 때문에 야구에 목숨을 걸어야 했었죠. 그래서 야구 외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야구를 하지 않는다면 사회에 나가서 할 일이 없습니다. 공부를 버리고 야구만 했기 때문입니다.
메이저리그의 선수들은 야구도 잘 하지만, 농구, 축구, 수영, 심지어 악기도 잘 다룹니다. 야구를 취미로 배웠지, 저처럼 목숨 걸고 직업처럼 배우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슬럼프를 겪을 땐 다른 취미 생활로 잠시 야구를 잊기도 합니다. 그런데 전, 그게 잘 안 돼요. 아무리 야구를 잊고 아이들과 놀아주고, 명상을 하고, 책을 읽으려 해도, 곧 야구 생각에 빠져 있습니다.
여기 선수들은 부모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오로지 자기 아내와 아이들만 신경 씁니다. 1000달러를 받든, 1만 달러를 받든, 야구를 즐기고 야구장을 나오면 잊어버립니다. 전 제가 책임져야 할 가족들이 많아요. 부모님의 노후도 신경 써야 하고, 동생, 친척들, 절 바라보고 있는 가족들이 많습니다. 야구가 안 될 때, 그런 생각에까지 미치면 온 몸에 힘이 쭉 빠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석에 들어설 때, 제 얼굴에서 복잡함이 느껴지는지도 모릅니다. 얼굴이 복잡하고, 눈빛이 달라진 타자가 투수 입장에선 얼마나 만만하게 보일까요?
오늘 퇴근 후 집에 들어서니 무빈이가 달려와선 제 품에 안기네요. 많이 속상했던 제가 무빈이한테 해선 안 될 말을 했습니다. “무빈아, 아빠 야구 그만할까?”했더니 무빈이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아빠, 지금은 방망이가 힘들지만, 대신에 아빠는 수비도 잘하고 달리기도 잘하잖아. 그리고 공이 가까이 왔을 때 쳐야지, 미리 방망이를 휘두르니까 스윙이 되는 거야.”
오늘은 리틀야구에서 뛰는 무빈이가 메이저리거인 저보다 더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
클리블랜드에서
-
‘바둑여제’ 최정 vs ‘천재소녀’ 스미레, 여자기성전 결승 관전포인트
온라인 기사 ( 2024.11.26 14:51 )
-
UFC 챔피언 알렉스 페레이라 방한…‘페레이라 웃기면 1000만원’, VIP 디너 행사로 한국팬들 만난다
온라인 기사 ( 2024.10.17 05:34 )
-
[인터뷰] 스포츠 아나운서 곽민선 "관전부터 e게임까지 축구에 푹 빠졌어요"
온라인 기사 ( 2024.11.14 17: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