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양호 대한탁구협회장이 2008년 12월 28일 안양시 호계체육관에서 ‘2008 불우이웃돕기 자선 탁구 축제’를 열고 김경아와 탁구 시범경기를 하고 있다. |
지난 5월 18일 열린 최종 브리핑을 끝으로 2018 동계올림픽 후보 도시들의 공식적인 유치 행사가 막을 내렸다. 평창의 세 번째 도전, 그 성패는 오는 7월 16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최종 결정된다. 조양호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한진그룹 회장)은 투표권을 지닌 IOC 위원들의 막판 표심 잡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평소 스포츠 저변 확대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그다. 대한탁구협회 회장을 맡아 탁구계 갈등을 해소한 조 회장은 대한항공 배구단을 운영하면서 국내 최초 남자 스피드 스케이팅 실업팀을 창단해 주목을 받았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거침없는 행보로 스포츠 외교가로 나선 조 회장. 그의 ‘스포츠애(愛)’ 속으로 들어가 봤다.
대한항공 프로배구팀의 시즌 마지막 경기가 열렸던 지난 3월 10일 저녁 7시. 조양호 회장을 비롯한 한진그룹 오너 일가가 인천 도원실내체육관에 모였다. 이미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지은 대한항공이지만 조 회장 일가는 경기 내내 마음을 졸였다. 이른바 ‘한진가 징크스’ 때문이었다. 함께 경기장을 찾은 조 회장의 막내딸 조현민 상무가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저희 가족이 배구장에 갈 때마다 대한항공이 경기에 지더라고요. 한두 번은 우연이겠거니 했어요. 그런데 그런 일이 계속 반복되는 거예요. 심지어 경기 중계를 보며 응원할 때도 성적이 좋지 않았어요. 마지막 경기 당일, 1세트를 따낸 뒤 2세트를 상대팀에 쉽게 내주고 말았어요. 순간 저희 가족 모두 불안한 마음에 ‘우리가 잠시 경기장 밖으로 나갔다 와야 하지 않을까’라며 고민했다니까요? 다행히 경기에 이겼고, 그 후부턴 징크스를 믿지 않기로 했어요. 이제 경기장에 더 자주 가려고요. 그럼 이기는 경기를 더 많이 보게 되지 않겠어요?”
징크스가 깨졌다는 기쁨 때문이었을까. 긴장한 채로 경기를 지켜보던 조 회장은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박수로 대한항공 정규리그 우승을 축하했다. 대한항공 배구단 관계자는 “우승 직후 배구단에 특별 격려금을 전달하셨고, 이번 주에 감독 및 선수들의 연봉 인상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또 “대한항공의 정규리그 우승은 회장님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 덕분이다. 5년 전까지 인하대학교 배구코트를 빌려 썼는데, 회장님께서 용인 신갈에 전용체육관을 지어주셨다. 든든한 후원 덕분에 선수들도 힘을 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비인기종목에 대한 조 회장의 관심도 대단하다. 2008년 3월, 대한탁구협회 회장에 취임한 그는 ‘한국 탁구 제2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친회장파와 반대파의 갈등으로 협회장이 탄핵되는 등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었던 탁구계는 신임 조 회장의 취임과 동시, 파벌 논쟁을 마무리 지었고 2008 베이징올림픽을 통해 재도약할 수 있었다. 이유성 대한항공스포츠단장은 조 회장이 탁구협회장을 맡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스포츠에 관심을 갖고 지원을 하는 것도 기업의 사회 환원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면서 흔쾌히 수락하셨습니다. ‘상황이 어려울 때 더 도와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한국 탁구의 세계화를 위해 힘껏 뛰어보겠다는 의지를 보이시더군요. 그동안 탁구계는 계속된 내분 탓에 좋은 선수를 육성하지 못했습니다. 3년 동안 투자한 결과 이제 그 싹이 올라오고 있죠. 몇 년 후엔 세계적인 선수들이 나타날 겁니다.”
조 회장은 탁구의 과학화·세계화에 중점을 뒀다. 선수들의 기량 향상을 도울 수 있는 라켓·탁구대 등 장비 도입을 지시하고, 고속카메라를 구입해 중국 선수들의 구질을 연구·응용토록 했다. 2008년 9월엔 러시아탁구협회와 양국 선수 공동훈련·국제탁구협회 상호협의회 구성 등을 골자로 한 탁구발전 교류 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탁구 세계화의 일환으로 선수들에게 영어 공부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대한탁구협회 관계자는 “‘국제 경기에 나가는 선수들에게 영어는 필수가 아니냐’고 하시면서 하루에 한 시간만이라도 선수들의 영어 공부 시간을 확보하고 지원하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학구파로 소문난 조 회장다운 발언이다. 한진그룹 창업주 고 조중훈 회장의 대를 이어 2003년부터 그룹 총수를 맡아온 그는 인하대 공업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남캘리포니아대(USC) 경영학 석사와 인하대 경영학 박사학위를 따는 학구열을 보였다. 대한항공 입사 후에도 항공사 경영에 필수적인 정비·전산·자제·영업·기획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쌓아 항공·물류 전문가로 거듭났다.
조 회장의 탁구사랑은 그가 탁구협회장을 맡기 훨씬 이전부터 계속돼왔다. 조 회장은 20년 전부터 자택 지하에 탁구대를 설치해 지인들과 탁구를 즐겨왔다. 실력도 수준급이다. 이유성 단장은 “출장이 잦아 주로 해외에 계시는 데도 메일을 통해 수시로 선수들 근황, 탁구단 운영을 묻곤 하신다. 때문에 항시 긴장을 늦출 수 없다”고 전했다.
조 회장의 스포츠애는 빙상계로 이어졌다. 대한항공은 지난 3월, 밴쿠버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승훈 모태범 선수를 영입해 국내 최초로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실업팀을 창단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에 선임된 2009년 이후론 싱가포르 아시아올림픽평의회, 코펜하겐 국제올림픽총회, 캐나다 밴쿠버동계올림픽 개최 현장 등을 직접 찾아 평창을 홍보하는 등 성공적인 유치를 위해 국내외를 종횡무진하고 있다. 빙상계 관계자는 “평창 유치 전망이 밝다. 조 위원장도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라’고 지시하면서도 ‘잘 될 것 같다’는 낙관적인 이야길 많이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스포츠 외교가로 떠오른 ‘한국의 날개’, 조 회장의 스포츠애가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활동을 통해 어떤 결실을 맺을지 주목된다.
정유진 기자 kkyy1225@ilyio.co.kr
“스타 마니아인데 방어만 잘해요ㅋ”
▲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스타리그의 여신’, ‘e스포츠계의 장쯔이’. 그녀에게 붙은 또 다른 수식어다. 조 상무는 승부조작, 블리자드와의 협상 난항 등으로 어지럽던 e스포츠를 후원,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특히 리그 결승전 땐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화제를 모았다. 대한항공의 철저한 보안 구역인 격납고를 개방해 결승전을 치르는가하면, 시즌2 땐 중국 상하이의 동방명주 앞 광장에서 결승전을 개최해 전 세계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사실 3년 전부터 e스포츠 후원을 검토해왔어요. 젊은 고객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마케팅 방안을 고심하다보니 아무래도 제가 평소 관심을 갖고 있던 e스포츠 쪽에 끌린 것 같아요.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국내 e스포츠 열기에 정말 놀랐어요. 프로게이머들의 실력은 물론이고 프로게임단, 협회의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더라고요. e스포츠의 진짜 매력은 현장에 있는 것 같아요. 제가 후원을 결정하게 된 것도 경기장에 직접 가본 직후였거든요. 경기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긴박감, 뜨거운 응원열기에 매료됐어요.”
현장의 열기에 놀란 건 그녀뿐만 아니었다. 격납고에서 리그 결승전 때 경기장을 찾은 대한항공 임직원들 모두 현장의 뜨거운 열기에 눈이 휘둥그레졌단다.
“비가 왔는데도 불구하고 1만 명이 넘는 팬들이 몰려왔어요. 스타크래프트에 대해 잘 모르셨던 분들도 그날 이후 e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죠. 해외 지사에 계신 직원 중엔 자기가 e스포츠팬이라면서 ‘대한항공이 스타리그를 후원하는 게 정말 자랑스럽다’는 메일도 보내주셨죠. 정말 힘이 됐습니다.”
실제 실력에 대해 묻자 “자랑할 수준은 절대 못 된다”며 수줍게 웃는다.
“대학생 때 친구들에게 스타크래프트를 처음 배운 뒤로 그 매력에 푹 빠졌어요. 전 일대일로는 못해요. 주로 팀플레이를 하는데 전 지원군 역할을 맡아요. 공격은 잘 못해도 방어만큼은 확실하거든요. 그래도 친구들에게 ‘중간 이상은 된다’고 인정받았어요(웃음). 프로토스 종족이 저한테 제일 잘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주로 프로토스 선수들을 응원하게 되더라고요. 박정석 선수 플레이가 가장 마음에 들어요.”
오빠 조원태, 언니 조현아 전무의 게임 실력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오빠 실력을 따라잡을 순 없죠. 오빠가 건네준 CD로 스타크래프트를 처음 접하게 됐거든요. 오빠도 한때 스타크래프트에 빠져 PC방에 살다시피 한 적이 있죠. 언니는 저보다 늦게 배웠어도 더 잘해요. 요즘엔 제가 가르쳐 준 카페 운영 게임을 주로 하는데 벌써 저를 제치고 랭킹 1위라니까요. 이제 제가 다시 앞질러야죠.”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은 막을 내렸지만 e스포츠를 향한 조 상무의 애정은 여전하다. 지난 1월, 조 상무는 KT 롤스터 프로게이머 우정호 선수가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치료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접한 뒤 대한항공 통합커뮤니케이션실 직원들과 함께 헌혈을 실시한 바 있다.
“함께 헌혈했던 직원들 중에 제가 제일 건강하다는 검사 결과를 받았어요(웃음). 쾌유를 바라는 많은 팬들의 마음이 전달됐으리라 믿어요.”
대한항공과 e스포츠의 인연은 끈끈하게 이어지고 있다. 프로게임단 위메이드 폭스 소속 이윤열 김준호 선수를 광고 모델로 기용하는 등 폭스 선수들의 지원은 물론 스포츠 문화 예술 등 각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인사들을 선정해 후원하는 ‘엑셀런스 프로그램’을 통해 e스포츠 선수들을 챙기고 있다.
“얼마 전엔 폭스 경기에 케이크를 들고 찾아가 선수들을 응원하고 왔어요. 회의 때문에 경기를 끝까지 지켜보질 못해서 아쉬웠는데, 함께 갔던 직원 분들이 문자로 실시간 중계를 해준 덕분에 현장감을 느낄 수 있었죠.”
최근 ‘미국 어디까지 가봤니’, ‘중국, 중원에서 답을 얻다’, ‘지금 나는 호주에 있다’ 등 기존 대한항공 CF의 틀을 깨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광고계 아이콘으로 떠오른 그녀다. 특히 조 상무는 ‘뉴질랜드’ 편에 출연, 직접 번지점프를 하는 열성을 보여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조 상무는 촬영 당시 있었던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실은 생전 처음으로 뛰어 본 번지점프였어요. 감독님께서 한국인이 뛰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을 때 제가 자청했어요. 사실 촬영이 끝난 후에 번지점프를 꼭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처음엔 신나서 뛰었어요. 그런데 제가 경험이 없다보니 똑바로 뛰질 못해 줄이 꼬이고 말았어요. 감독님께서 한 번 더 뛰길 권유하셨죠. 흔쾌히 수락하고 다시 번지점프대에 올랐는데 그때부턴 다리에 힘이 풀리고 겁이 나기 시작했어요. 상체는 앞으로 가는데 다리는 그 자리에 딱 붙어서 안 움직이더라고요. 이상한 포즈로 뛰어 걱정했는데, 감독님께서 영상 편집을 잘 해주셨더라고요(웃음).”
젊은 나이에 임원에 올라 책임이 막중해졌지만 그에 따른 부담감보다는 기대감이 더 크다고.
“물론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제가 잘못 판단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앞서요. 더욱 참신하고 획기적인 광고를 기대하는 분들이 많아져서 매순간 창작의 고통에 시달리기도 하죠. 하지만 전 세계의 아름다운 절경을 한발 앞서 보여드리고 싶다는 신념이 절 끊임없이 생각하고 움직이게 만들어요. 여행을 떠날 때 또는 출장을 갈 때 고객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가 대한항공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제 꿈이에요. 이제 걸음마 단계에 불과해요. 한 계단씩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가야죠. 그래서 ‘조양호 회장의 막내딸’이 아닌 ‘대한항공 조현민 상무’로 당당히 서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