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에서 설마했던 ‘승부조작’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그 파장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혐의가 인정된 몇몇 선수들은 법의 심판 앞에 서게 됐고, 혐의를 의심받고 있는 선수들은 줄줄이 소환돼 조사를 받고 있다. K리그로 불어 닥친 승부조작 쓰나미는 이제 다른 종목으로까지 덮칠 기세다. 이러한 일련의 논란 속에는 아직까지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시장규모가 3조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되는 ‘불법 스포츠 베팅 시장’의 개입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베팅 상한액이 없으면서도 고배당이 보장되는 불법 스포츠 베팅의 특성상 시장 규모는 점차 확대되고 있는 실정이다. 승부조작 논란 속에서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는 불법 스포츠 베팅의 세계를 자세히 파헤쳐봤다. [프로축구 승부조작 총력취재 60~65면]
국내 스포츠 베팅의 역사는 지난 2001년 농구와 축구 토토 발매가 개시된 이래 올해로 10년째에 이른다. 그 동안 국내 스포츠 베팅 시장은 엄청난 성장세를 이어왔다. 지난해 국내 유일의 합법 스포츠 베팅 업체인 스포츠토토의 연매출액은 2조 원에 육박한다. 바야흐로 스포츠 베팅이 국민적인 여가 오락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 합법적인 스포츠 베팅 성장이 가속화될수록 불법 스포츠 베팅도 나날이 성장하고 있다. 2008년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의(사감위)의 불법 도박사이트 현황 자료를 토대로 볼 때 현재 불법 스포츠 베팅 시장은 3조 4000억 원에서 3조 7000억 원 사이로 추산되고 있다. 개설 사이트 수로 따지면 적게는 500개에서 많게는 3500개까지 추산된다. 단순하게 계산해봐도 합법 스포츠베팅 시장보다 1.5배 이상의 시장규모를 자랑한다.
일각에서는 최근 벌어진 K리그 승부조작 파문에 불법 스포츠 베팅 시장이 개입했는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아직까지 적발된 브로커와 선수들이 불법 스포츠 베팅과 연관이 있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막대한 시장규모를 감안할 때, 직간접적인 연관 가능성은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불법 스포츠 베팅은 어떻게 지금과 같은 거대 시장을 형성할 수 있었을까. 대다수 스포츠 베터들은 가장 먼저 불법 스포츠 베팅의 무상한액 제도와 높은 배당률을 꼽는다. 지난 3년간 한 주도 빠짐없이 스포츠 베팅을 해왔다는 골수 스포츠 베터 심 아무개 씨(28)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스포츠베터들이 불법 스포츠 베팅의 유혹에 넘어가기 쉬운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물론 스포츠토토에서도 상한액을 초과해 베팅하는 불법행위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불법 스포츠 베팅 사이트에는 아예 상한액 자체가 없다. 또 불법 스포츠 베팅은 상대적으로 배당금액도 많다”고 말했다. 기금조성의무 탓에 배당 환급률이 50~70%에 불과한 스포츠토토와 비교해 불법 스포츠 베팅의 환급률은 최대 9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골수 스포츠 베터들에게는 솔깃한 유혹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불법 베팅 사이트들은 스포츠토토보다 다양한 종목과 리그에서 베팅게임을 진행하고 있는 동시에, 파생상품도 다양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 씨는 “불법 베팅 사이트에서는 스포츠토토에는 없는 남미 프로축구리그와 같은 흥미로운 베팅게임들이 다수 존재한다. 이러한 다양한 베팅게임들은 ‘아프리카’나 ‘다음팟’과 같은 동영상 사이트를 통해 생중계되며 정보공유도 쉽게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단순한 승패나 점수를 알아맞히는 스포츠토토와 달리 불법 베팅 사이트는 베터들의 구미를 당기는 다양한 파생상품을 기획한다. 예를 들어 농구에서 첫 자유투 득점선수를 알아맞힌다든지, 야구에서 선발투수의 초구가 볼인지 스트라이크인지를 알아맞힌다든지 하는 스페셜게임이 많다. 또 양팀 득점의 합을 알아맞히는 언더/오버 게임도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외에도 불법 베팅사이트에는 스포츠토토에는 없는 다양한 파생상품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베터들의 흥미를 끌 만한 게임의 다양성 측면에서 볼 때 불법 베팅 사이트들이 우위에 있다는 해석이다.
이외에도 불법 베팅 사이트는 경기 진행 중 실시간으로 돈을 걸 수 있는 ‘라이브베팅’ 제도나 일괄 마감시간이 있는 스포츠토토와 달리 경기 직전 스타팅 멤버 등 당일 스쿼드를 살필 수 있는 ‘순차마감’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여러모로 베터들에게 편리한 게임제도가 구비되어 있는 셈이다. 또 최근에는 스팸메일은 물론 SNS를 통한 공격적인 홍보수단을 강구하면서 베터들을 유혹하고 있다.
근래 들어 불법 베팅 사이트는 여러 차례 파문을 일으키면서 사회악으로까지 성장했지만 단속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불법 베팅사이트들은 점점 지능화, 조직화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폭력조직과도 연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기 때문에 해당 국가의 협조가 없는 한 수사에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베팅금을 관리하는 통장으로 해외계좌가 이용되는 경우가 늘고 있어 단속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또 사이트 운영자가 적발됐다하더라도 처벌규정은 3년 이하의 징역,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불과하다. 이러한 솜방망이 처벌로 불법 베팅 사이트 근절은 사실상 어렵다는 시각이 많다.
기자와 통화한 스포츠토토 관계자는 “현재 우리도 불법 스포츠 베팅에 대한 대응방안을 마련하고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미 오랫동안 이들 사이트에 대한 현황조사와 대응방안 강구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스포츠토토 측에서 <일요신문>에 제공한 ‘불법 스포츠 베팅 현황 및 대응방안’ 문서를 살펴보면 스포츠 베팅 근절을 위한 몇 가지 대응방안이 제시되어 있다. 스포츠토토 측은 문서를 통해 법·제도적 문제점 개선 방안, 관계기관 공조 강화, 합법시장의 경쟁력 강화 등을 제시했다.
그 중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히는 것은 합법시장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안이다. 예를 들어 리그와 종목 확대, 파생상품 다각화 등 상품의 다양성을 꾀하거나 베터들을 배려한 순차마감 제도를 도입하는 방법 등이다. 또 턱없이 낮은 고정배당률을 상향 조정해 베터들의 배당금을 높이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합법시장의 경쟁력을 강화해 불법 베팅 사이트의 유혹에 빠지는 베터들을 붙잡겠다는 심산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지난 2010년 6월 스위스 로잔에서 ‘스포츠 베팅’을 ‘도박’과 다른 스포츠의 일부분이라고 공식선언했다. 스포츠 종목과 선수들에게 관심을 표하는 건전한 대중문화라는 의미에서다. 전문가들은 IOC가 의도한 건전한 스포츠 베팅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제도 밖에서 무분별하게 운영되고 있는 사행성 불법 베팅을 근절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규제 강화로 ‘풍선 효과’
2006년 ‘바다이야기’ 파동 이후 사행산업 감독업무를 위해 탄생한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가 무용론에 휩싸였다. 실제 사감위가 탄생한 이래 국내 불법도박 시장은 줄어들기는커녕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실정이다.
도박근절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한 NGO간사는 “사감위는 뭐 하는지 모르겠다. 합법 시장 규제에만 신경을 쓰지, 뒤에서 발생하고 있는 불법 도박의 풍선효과를 제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눈에 보이는 합법 시장에 대한 형식적 규제만 이루어지고 있을 뿐, 정작 파이가 큰 불법 시장에 대한 규제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설명이었다.
또 불법도박 시장을 줄이기 위해서는 그들을 제도권으로 불러들이는 노력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대표적으로 인터넷 경마중계와 베팅을 부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감위가 그동안 인터넷 중계와 베팅을 폐지시킴으로써 인터넷 이용자들을 불법도박시장으로 옮겨가게 만들어 ‘맞대기’(사설경마) 시장만 키웠다는 지적이 많았다.
사감위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도박문제해결범국민운동 김규호 사무총장 역시 최근 한 방송을 통해 “사감위법은 현재 유명무실한 법이 됐다. 정작 감독기관이 도박시장의 감독권과 인허가권은 없고, 단순 권고만 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행산업의 제대로 된 감독과 통제활동을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홍콩 걸리면 철퇴 스웨덴 ‘합법’ 경쟁력 업
사실 불법 스포츠 베팅 문제는 국내만의 문제는 아니다. 프로스포츠가 존재하는 대다수 국가에서 불법 베팅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각 해당 국가들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불법 스포츠베팅을 근절하고자 각종 대응 방안을 내 놓고 있다.
그중 우리에게 귀감이 될 만한 사례는 홍콩과 스웨덴의 경우다. 홍콩은 불법도박 근절을 위해 강력한 법적제재안은 마련해 놓고 있다. 불법사업자가 발각될 경우 최대 7년 이하의 징역, 7억 원 이하의 벌금형이 선고된다. 국내의 솜방망이 처벌과 크게 비교되는 대목이다. 뿐만 아니라 홍콩은 사업자는 물론 참여자에게도 법적 책임을 물음으로써 불법 스포츠 베팅 근절 의지를 보이고 있다.
스포츠베팅 분야에 있어서 10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스웨덴의 경우 합법 스포츠베팅의 상품경쟁력을 강화함으로써 불법 베팅근절에 힘쓰고 있다. 80%에 육박하는 제시 환급률은 물론 ‘라이브베팅’제도 도입이나 파생상품기획 등으로 경쟁력 강화를 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