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열렸던 2011 태영배 한국여자 오픈 둘째 날이었다. 생방송 한 시간 전 갑자기 중계차 안으로 대한골프협회 부회장께서 불쑥 찾아오셨다. “꼭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일부러 왔습니다. 방송하시다가 갤러리한테 제발 매너 좀 지켜달라고 얘기해주세요. 우리나라는 선수는 일류인데, 갤러리들은 삼류가 많아요!”
그런데, 말이 정말 씨가 되었다! 한창 중계준비를 하고 있는데, 이상한 화면이 잡혔다. ‘스테파니 나’라는 호주 선수였다. 외국에서 온 한국계 선수라 특별히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 선수가 페어웨이 세컨샷 지점에서 곧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서 있는 게 아닌가!
잠시 후 상황을 파악한 PD가 이어폰으로 설명을 해줬다. “스테파니 나가 티샷을 했는데, 그 공을 어떤 갤러리가 가져가 버렸대요. OB구역도 아니었대요. 들어가지 말라고 줄쳐 놓은 라인을 넘어서 페어웨이로 진입해선 공을 가지고 도망갔대요.”
기가 막혔다. 김송희 선수가 티샷 할 때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 사람은 차라리 양반이었다. 최경주 선수가 퍼팅할 때 끝나기도 전에 다른 홀로 이동한 사람한테는 절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갤러리는 대회의 격을 높이고 선수들의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조력자들이다. ‘선수가 일류이면 갤러리도 일류여야 한다’가 아니라 ‘갤러리가 일류여서 선수들도 일류다’가 됐으면 좋겠다.
나는 지금 골프 대회장 어딘가에서 필드에 떨어진 휴지 한 조각을 주울 줄 아는 갤러리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 우연히 방송 카메라에 그런 그림이 잡힌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분이 한국 골프를 이끌고 있는 진정한 갤러리입니다!”
SBS 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