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홍명보 감독,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 이회택 위원장, 조광래 감독. |
올림픽팀에게는 유감스럽지만 대표팀 선수(엔트리) 선발은 전 세계 어느 곳에서든 대표팀 사령탑의 고유 권한이다. 기본적인 권리조차 갖지 못한 느낌을 받게 된 조 감독이 진노한 것도 당연지사. K리그 현장에서 취재진을 접할 때마다 “기술위가 제대로 업무를 숙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불만을 표출해온 조 감독은 결국 5월 23일 협회에서 열린 6월 A 매치를 위한 대표팀 명단 발표 기자회견에서 이회택 기술위원장을 향해 참았던 분노를 폭발했다.
익명을 요구한 K리그의 한 감독은 “오해를 풀지 않고 이처럼 최악의 사태로 치달을 때까지 대체 뭘 했는지 모르겠다”고 기술위를 강하게 질타했다. 기술위원 출신의 또 다른 감독은 “확언할 수 없지만 예전에는 월드컵 예선과 올림픽 예선이 거의 동시에 겹치는 경우가 없어 큰 오해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주 특수한 케이스가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진짜 블랙 코미디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생했다. 구자철의 소속 팀 볼프스부르크 펠릭스 마가트 감독이 제자의 올림픽 예선전 출격에 제동을 걸었던 것이다. 마가트 감독은 “절대 휴식을 취해야 한다. 작년부터 거의 쉬지 못해 제 페이스를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 여름은 무조건 푹 쉬고 돌아오라”고 구자철에게 주문했다.
구자철은 “(대표팀, 올림픽팀 동시 출전이) 괜찮다”는 입장을 마가트 감독에 전달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절대 불가’였다. 김보경도 J리그 오사카 구단의 반대로 같은 상황에 처했다.
A 매치를 위한 대표 선발은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에 의거해 차출이 가능하지만 올림픽과 청소년월드컵 등 연령별 대표팀의 경우는 뚜렷한 선발 규정이 없다. 결국 해결 아닌 해결을 했다고 자위하던 기술위는 국제적인 망신거리와 웃음거리를 제공한 꼴이었다.
해외파 구자철과 김보경의 경우는 그렇다손 쳐도, 국내 구단들 역시 추후 ‘규정 없는 차출에는 응하지 않겠다’고 나설 경우 기술위는 뚜렷한 대비책이 없는 게 사실이다. 실례로 양 대표팀 중복 차출이 우려됐던 지동원에 대해 전남 구단이 협회로 공문을 통해 동시 차출 거부 의사를 전달했다. 전남 정해성 감독은 “지동원이 한쪽 대표팀에만 전념했으면 한다. 젊은 선수가 혹사당하면 장기적인 발전을 꾀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여기에 ‘힘들다’는 선수들과 ‘이도저도 못 하겠다’는 그들을 보유한 프로 구단 지도자들의 불평에 대한 위로랍시고 “우린 현역 때 연중 내내 실전에 나서도 주변에 피곤하다고 말한 적 없다”는 말을 협회 한 고위 관계자가 한 것으로 밝혀져 또 하나의 논란을 촉발시켰다.
더욱이 이회택 위원장은 모 스포츠지와의 인터뷰에서 “조 감독이 축구계 주류가 아닌 ‘야당’에 속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했다”는 굳이 할 필요 없는 실언까지 했다.
이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 없는 한, 기술위는 애초부터 조 감독이 마음에 없었는데, 마땅한 대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뽑아줬다는 인상을 남기게끔 하는 대목이다. 반대로 홍 감독이 축구계 여당의 대표 주자라서 소위 ‘밀어준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다.
사실 대표팀 감독을 선발하고, 해당 감독이 최적의 선수들을 뽑아 최상의 성적을 내도록 뒤에서 보좌하고 책임지는 게 그간의 관례이자 기술위의 역할이었지만 현 시점에서 봤을 때 ‘선수 선발’ 권한을 운운한 이 위원장은 번지수를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은 꼴이었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