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인을 살해한 강 씨의 현장검증이 지난 26일 해운대구 모 주차장에서 진행됐다. 강 씨가 시신을 가방에 담은 뒤 내연녀 최 씨의 차량 트렁크에 옮겨 싣는 것을 재현하고 있다. 뉴시스 |
지난 4월 2일 부산에서 50대 주부 박 아무개 씨가 실종됐다. 자신이 기거하는 부산 북구 화명동 자택을 떠나 택시를 타고 해운대의 한 콘도로 간 뒤 행적이 묘연해진 상태였다. 박 씨가 종적을 감춘 지 4일 만에 남동생은 경찰에 실종신고를 냈지만 도무지 그녀의 행적은 잡히지 않았다. 심지어 현상금 1억 원을 내건 전단을 공고했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그런데 실종 50일 째가 되던 5월 21일, 부산 을숙도에서 박 씨의 사체가 환경정화에 나선 학생들에 의해 우연히 발견됐다. 박 씨의 사체는 커다란 가방에 쇠사슬과 노끈으로 결박된 끔찍한 상태였다. 누군가에 의해 목을 심하게 졸려 살해된 흔적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사건을 맡은 부산북부경찰서는 박 씨를 살해한 유력한 용의자로 남편 강 아무개 씨를 지목했다. 살해된 박 씨는 남편 강 씨와 재혼한 지 채 1년이 안된 터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성격 차이와 금전적 갈등으로 인해 이미 이혼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남편 강 씨는 경남지역의 한 대학 컴퓨터공학부에 재직 중인 교수였다. 그는 1985년 국내 최고 명문대에서 계산통계학 학사와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현재 재직 중인 대학의 교수로 임용됐다. 강 씨는 컴퓨터 네트워크와 데이터 통신 분야에서 뛰어난 논문과 저서를 남긴 권위자였다. 한때는 ‘한국컴퓨터범죄학회’라는 단체에서 학회장직을 맡으며 검찰과 경찰의 수사에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사회에서 인정받는 학자로 알려진 강 씨의 사생활은 그다지 평탄치 못했다. 그는 박 씨와 재혼 전 이미 세 차례나 이혼한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전처와의 사이에 두 자녀를 둔 강 씨는 지난해 박 씨와 결혼하면서 네 번째 가정을 이루게 됐다. 2002년에 만난 두 사람은 평소 지인으로 알고 지내다 지난해 3월 부부의 연을 맺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씨는 강 씨의 세 차례 이혼전력이 마음에 걸렸지만 강 씨의 높은 사회적 명망에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박 씨 역시 이미 한 차례 이혼한 아픔이 있었기에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박 씨의 이러한 기대는 순식간에 깨지고 말았다.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평소 복잡했던 강 씨의 여자문제와 성격 차이, 그리고 금전적인 문제로 잦은 갈등에 시달렸다. 기자와 통화한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박 씨는 강 씨에게 결혼지참금 명목으로 준 4억 원을 돌려달라며 지난해 9월 법원에 협의이혼을 신청했다고 한다. 비록 재판 예정일을 앞두고 둘은 소를 취하했으나 올해 1월 강 씨가 박 씨를 상대로 재산분할을 요구하면서 다시 금전적 갈등을 둘러싼 이혼소송이 진행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강 씨의 소송은 박 씨의 재산을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경찰에 따르면 살해된 부인 박 씨는 부산에서 큰 학원을 운영하던 재력가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강 씨는 결혼 후, 박 씨의 재산으로 자신의 딸에게 아파트를 구입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에도 금전적인 관계로 갈등이 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1월부터 별거에 들어간 부부는 이후 평행선을 내달리게 된다. 한 동안 박 씨가 강 씨를 설득해 이혼소송 취하를 꾀했으나 강 씨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살해당한 4월 2일에도 박 씨는 남편을 설득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남편은 아무도 모르게 검은 속마음을 품고 있었다. 경찰조사 결과 강 씨는 이미 오래 전부터 부인 박 씨를 살해하려고 계획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의 추궁 끝에 자백한 강 씨는 처음에는 ‘우발적 살인’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경찰은 끈질긴 추적과 여러 가지 정황 증거에 미뤄 ‘계획된 살인’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또 경찰조사 결과 강 씨의 범행 뒤에는 내연녀 최 아무개 씨(50)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을 맡은 경찰관계자는 “내연녀 최 씨는 대리 운전기사로 일하던 여성으로 지난 2004년부터 강 씨와 관계를 맺었다. 범행 당시에도 최 씨는 강 씨와 공조했다”라고 밝혔다.
한때 검·경 수사에 도움을 주기까지 했던 강 씨는 전형적인 지능형 범죄자였다. 지난 3월 27일 강 씨는 박 씨의 사체를 처리할 목적으로 부산의 한 아웃도어 매장에서 스포츠 가방을 구매했다. 그리고 내연녀 최 씨와 함께 거가대교 등 인근 범행수행 장소를 물색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던 강 씨는 4월 2일 밤 11시께 부산 해운대구 모 콘도 근처에서 박 씨를 자신의 승용차에 태우고 유유히 사라졌다. 그리고 한 호텔 주차장에서 박 씨의 목을 졸라 살해하기에 이른다. 박 씨의 사체는 강 씨가 준비한 쇠사슬과 노끈, 포대자루로 결박된 채 스포츠 가방에 담겨졌다. 내연녀 최 씨는 해운대 근처에 자신의 차량을 이용해 강 씨와 함께 사체를 옮겼다. 사체는 을숙도대교 부근 제방에 몰래 버려졌다.
강 씨는 범행 이후 자신의 전공 지식을 총동원해 증거인멸에 나서기도 했다. 범죄 하루 전, 강 씨는 최 씨에게 “마음 단단히 먹어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는 범행 이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회사에 직접 찾아가 해당 메시지를 삭제하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또한 자신의 컴퓨터를 포맷하거나 범행 후 휴대전화를 교체하는 등 증거인멸 작업을 꾀하기도 했다.
하지만 완전범죄는 없는 법. 경찰은 갈등관계에 있는 남편 강 씨를 최우선 용의선상에 두고 집중추궁에 나섰고, 사체 발견 이후 결국 자백을 받아냈다. 경찰은 강 씨가 찾아간 소셜 네트워크 회사에 메시지 복구를 의뢰해 단서를 잡아냈고, 계획범죄임을 밝혀냈다.
한편 해외로 도주했던 내연녀 최 씨가 지난 5월 27일 귀국해 경찰에 체포됐다. 최 씨는 “미안하다”며 혐의를 순순히 인정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