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보였던 백건우는 1956년 만 9살에 국립교향악단과 함께 그리그의 협주곡을 연주하며 데뷔했다. 지금은 보편적 연주곡이 된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을 우리나라에서 초연한 사람도 11살의 백건우였다.
다양한 연주 활동을 선보이던 백건우는 15살 어린 나이에 홀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진지하고 학구적인 자세로 연주에 임하며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했고 1967년 나움버그 콩쿠르 우승과 1969년 부조니 콩쿠르에 입상하며 입지를 다졌다.
한국에서 성사된 협연 무대를 위해 음악 여행을 온 백건우가 꾸밈없는 일상을 보여줬다. 그는 "연주를 위해 여행을 떠날 때면, 늘 그리웠던 자연에서 힐링을 얻는다"면서 조용한 시골 마을의 그림 같은 펜션에서 지내고 있었다.
관록의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아닌 음악을 뺀 소소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귀여운 그의 매력이 눈길을 끌었다. 날아다니는 나비 한 마리와 숲길을 지나는 작은 냇가의 속삭임에도 귀 기울이는 세계적 거장의 순수한 모습이 여운을 남겼다.
영화배우 아내 윤정희에 대한 이야기도 언급했다. 백건우는 윤정희가 알츠하이머 투병 중인 사실을 알린 이유에 대해 "사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는 게 그렇게 좋은 뉴스는 아니지 않나. 그런데 이제는 더 숨길 수 없는 단계까지 왔고 윤정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 같았다. 사실 다시 화면에 나올 수도 없는 거고 해서 알릴 때가 됐다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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