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그를 다시 보게 된 계기가 있었다. PGA 투어의 메이저 대회! 메이저중의 메이저! 2009년 마스터스 대회였다. 대회가 열리기 전 연습라운드 이틀째 날이었다. 필 미컬슨, 아담 스캇, 마이크 위어, 이안 폴터, 잭 존슨, 케니 페리에 이르기까지, 화면이 아닌 내 눈 앞의 그들은 눈이 부셨다.
갑자기 두 명의 동양 선수가 16번 홀에 나타났다. 최경주와 양용은! 그들이 오거스타에서 나란히 연습을 하고 있는 현장이었다. “K! J!”를 외치는 금발 패트런들(갤러리)과 함께 그들의 연습라운드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두 선수의 연습라운드 분위기는 다른 선수들과 달라보였다. 뭔가 비장했다. 웃으면서 농담도 주고받으며 연습 자체를 즐기는 다른 외국 선수들한테 나타나는 여유가 없어 보였다. 좀 속이 상했다. ‘왜 저렇게 심각한거야?’
세 홀쯤 지나고 나서야 이유를 깨달았다. 최경주는 양용은 선수를 살뜰히 챙기고 있었다. 오거스타의 그린은 빠르기로 악명이 높다. 경험 없는 후배를 위해 그린의 빠르기, 경사, 스피드, 지형의 특징, 잔디 결 하나하나를 세세하게 짚어주고 있었다. 농담을 주고받을 때가 아니었던 것이다.
연습라운드를 막 끝내고 클럽하우스로 걸어가던 도중 최경주 프로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바로 옆 홀에서 미국 아마추어 대회 우승으로 참가 자격을 얻은 한국계 대니 리가 막 홀아웃을 하고 있었다. 그는 가는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어린 후배가 연습 끝내는 것을 기다려줬다. 그리고 대니가 다가오자 아무 말 없이 등을 두드려 줬다.
이틀 뒤 대회는 시작됐고 최경주는 컷을 통과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미 내 마음 속에는 우승컵을 번쩍 들어올리는 K! J!, 레슨 전문가의 모습이 아닌 ‘형’ 최경주가 존재했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동생을(후배를) 물끄러미 바라볼 줄 아는 형’이다.
SBS 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