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모의 집에 놓인 성모상 뒤로 성모상이 피눈물을 흘린 장면을 찍은 사진이 대형 액자에 걸려 있다(왼쪽). 오른쪽 위에서부터 지난 4월 22일 윤율리아 씨가 가시관 고통을 받고 머리에서 선혈이 흘러내렸다는 장면을 증명하는 사진, 허름한 예배당과 식당이 있는 성모동산, 성모의 집을 방문한 외국인 체험객. |
전남 나주시 교동에 위치한 ‘나주 성모의 집’을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정도의 좁은 도로 바로 옆에는 나주천이 흐르고 있었다.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받아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기자는 이곳이 ‘성모의 집’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외관상으로는 그냥 일반 시골 가정집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당에 위치한 사람 키만큼 정도의 대형 성모상을 보고서야 이곳이 ‘성모의 집’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기자가 찾아간 성모의 집이란 곳은 성당이 아닌 경당이다. 경당은 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예배소를 말한다. 경당 안에는 여신자 한 명이 무릎 꿇고 조용히 기도를 드리고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 우선 경당 앞쪽의 성모상이 눈에 띄었다. 피눈물을 흘렸다던 그 성모상이었다. 성모상은 50㎝가량 높이의 비교적 자그마한 크기로 밝은 조명이 비춰진 상태로 제단 위에 놓여 있었다.
성모상 오른쪽에는 성모상이 피눈물 흘린 장면을 찍어놓은 사진이 대형 액자에 걸려 있었고, 왼쪽엔 예수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성모상 위로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상이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벌어진 ‘나주 현상’에 관련된 방대한 사진 자료들이 경당 벽면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다. 잠시 뒤 기자는 ‘성모의 집’ 총무로 있는 김동명 씨(57)를 만나 ‘나주 현상’을 둘러싼 자세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성모의 집’이 들어선 곳은 원래 나주천변의 쓰레기장이었다. 이 일대 1300여㎡(400여 평)을 매립해 ‘성모의 집’을 지은 사람은 ‘성체 기적’을 행하고 있다는 윤 율리아 씨(65·여·본명 윤홍선)다. 윤 씨는 초등학교를 겨우 마치고 미용사 기술을 익혀 생활을 헤쳐 나갔다고 한다. 그러던 중 윤 씨는 30대 초반에 불치의 병인 암에 걸렸다고 한다. 죽음을 앞둔 그녀는 남편의 설득으로 나주 성당을 찾았다. 윤 씨는 당시 나주 성당의 신부로부터 ‘지금의 고통은 은혜받고 있는 증거다’는 소리를 듣고 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고 한다. 그 뒤 윤 씨는 성당 성물방에서 성모상을 사서 기도를 시작했다. 그런데 성당에 나간 지 3일 만에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불치의 병이 기적적으로 완치됐다고 한다.
김 씨에 따르면 윤 씨는 이후 1982년부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됐고 그 해 3, 4월경에는 치유의 은사를 얻어 병자를 낫게 하는 등의 기적을 행하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1985년 6월 30일 윤 씨가 가지고 있던 성모상이 눈물을 흘리는 ‘성체 기적’이 발생했다. 이듬해 (1986년) 10월 19일부터는 성모상이 눈물 대신에 피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성모상은 윤 씨가 운영하는 미용실에 있었다. 1980년 당시 윤 씨는 나주시 중앙동에서 ‘정미용실’이라는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기자는 당시 미용실이 있던 그 자리를 찾아갔지만 현재 모텔이 들어서는 등 주변 일대가 개발돼 정확한 위치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
‘성모의 집’ 측은 이곳에서 행해진 윤 씨의 기적을 기리기 위해 추후 이곳을 보존할 계획도 있다고 밝혔다. 성모상의 기적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사람들이 모여들자 윤 씨는 이 성모상을 나주 천주교회 사제관으로 옮겼다. 그 후 나주천변의 쓰레기장을 매입, 지금의 ‘성모의 집’을 지어 화제의 성모상을 모셔왔다고 한다. 성모상에서 눈물과 피눈물이 흘러내리는 현상은 1992년 1월 4일을 기해 그쳤다. 문제의 성모상을 나주 천주교회에 모셔 놓은 1986년부터 피눈물을 그친 1992년 사이에 나주를 방문한 사제, 수도자, 평신도 등의 수는 무려 13만여 명에 달했다고 ‘성모의 집’은 밝혔다. 외국인 방문객도 1500명에 달했다고 한다.
‘성모의 집’ 측에서 밝힌 ‘기적’ 현상들은 더 있었다고 한다. 1991년 5월 16일, 나주 천주교회에서 ‘성체 기적’ 이란 것이 일어났다고 한다. ‘성체 기적’이란 가톨릭 신자들이 미사 때 먹는 밀로 만든 떡 모양의 성체가 살과 피로 변하는 현상을 말한다.
나주의 첫 번째 ‘성체 기적’은 필리핀에서 온 제리 오르보스 신부가 미사를 집전할 때 일어났다. 제리 신부는 <은총은 강물처럼>이란 책에 목격담을 적었다. 이 책은 ‘성모의 집’에서 발행하는 책으로 이곳에서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의 체험수기를 적은 것이다. 500페이지 분량의 이 책은 ‘성모의 집’에서 1만 원에 판매하고 있다. 이 첫 번째 기적 이후 1997년 8월27일까지 모두 19차례의 기적 현상이 일어났다고 ‘성모의 집’은 밝혔다. 윤 씨를 통한 성체 기적이 행해지고 있는 가운데 나주 성모상은 1992년 11월 24일부터 장미꽃 향과 비슷한 짙은 향기를 풍기는 향유를 흘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향유를 흘리는 현상도 1994년 10월 23일까지 2년간 계속되었다고 한다.
‘성모의 집’과 윤 씨를 둘러싼 이 같은 각종 ‘기적’들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주한 교황청 대사가 이를 교황청에 보고한 1994년 11월 말부터다. 그때까지 매년 1000명 안팎이던 나주 방문 해외 순례단은 이를 계기로 급증하기 시작해 1995년 3068명, 1996년 4314명을 기록했다.
‘성모의 집’을 관장하는 천주교 광주 대교구청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대교구청은 1994년 12월 30일 ‘나주 본당 윤 율리아와 그의 성모상에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과 메시지에 대한 조사위원회’(약칭 나주조사위원회)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조사를 마친 후 대교구에서는 1998년 1월 1일 윤공회 대주교 이름의 첫 번째 공지문을 발표했다.
‘나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신앙적으로 참된 초자연적인 현상이라고 증명할 수 있는 근거가 없고, 오히려 어떤 초능력에 의한 현상일 수도 있다’며 일종의 미신이란 결론을 내렸다.
이후 광주대교구에서는 2005년 5월 5일자 최창무 대주교 공지문을 통해 소위 ‘나주의 기적’이라고 알려진 나주 윤 율리아와 관련된 사건들이 참된 그리스도교 신심과는 연관성이 없음을 다시 한 번 밝혔다. 또 2008년 1월 21일에는 최창무 대주교 교령을 통해 사적인 장소에서 윤 씨의 미사, 전례, 성사 집전 등을 금지했다. 이를 어길 시에는 자동파면된다는 강경한 입장도 취했다. 이 후 27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주 ‘성모의 집’에 대한 성지 인준을 둘러싼 광주대교구와 나주 ‘성모의 집’ 사이에 지루한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광주대교구 측이 ‘성모의 집’에서 일어난 현상을 부정하면서 의혹을 제기했던 부분은 윤 씨 부부의 재산 은닉과 종교활동으로 금전적 이익을 거둬들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기자는 김 씨와 함께 ‘부동산 은닉’ 현장으로 지목됐던 ‘신광지구 한옥마을단지’를 동행했다. 나주시 다시면 신광리에 조성되고 있는 한옥마을은 산으로 둘러싸인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한참을 들어가야 다다를 수 있었다.
2005년 11월부터 착공해 올해 말에 완공을 목표로 1만 9000여㎡(6000여 평) 대지에 총 30여 세대가 들어설 계획이다. ‘한옥마을추진위원회’ 총무도 맡고 있는 김 씨는 “마을에서 2㎞ 남짓 떨어진 ‘성모동산’에 순례를 오는 사람들 중에 전원마을에 살기를 희망하는 사람들끼리 의기투합해 조성하게 됐다”고 밝혔다. 일부 완공된 가옥에는 사람이 살기도 했지만 아직 대부분의 가옥들은 공사가 한창이었다.
신광지구 전통한옥마을 조성사업에는 전남도의 행정·재정적 지원도 동시에 이뤄졌다. 우선 재정적 지원이 컸다. 상하수도와 안길 포장 등 마을 기반조성에 필요한 15억 원의 예산지원이 이뤄졌다. 또 한옥 건립 보조금과 융자금도 절반에 달해 개인들의 부담도 크게 줄었다고 한다. <PD수첩>은 이 지역 부동산 매입과 관련해 윤 씨의 남편이자 신광지구추진위원장인 김만복 씨(70·율리오)의 부동산 축적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확인 결과 김 씨도 이곳에 분양 받을 가옥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기자는 한옥마을을 뒤로한 채 최근 또 다시 기적이 행해졌다는 ‘성모동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산속 한적한 곳에 위치한 성모동산은 생각보다 휑한 느낌이었다. 2000년 봄 김만복 씨가 산 한 쪽 벽면을 깎아 조성한 꽃밭만이 유일한 볼거리였다. 동산에 건물이라고는 각종 시설물이 쌓여 있는 허름한 조립식 건물 한 채와 비닐하우스로 된 예배당과 그 옆에 위치한 식당이 전부였다. ‘성모동산’에서는 한 달에 두 번 기도회가 열린다고 한다. 첫 번째 토요일과 기적이 행해진 날을 기념일로 삼았다고 한다. 성모동산 측은 기도회가 열릴 때는 전국 각지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몰려드는 인파가 1200~1500명에 달했다고 설명했다. 이 숫자는 광주대교구의 공지문 발표로 인해 줄어든 숫자라고 밝혔다.
기자는 김 총무와 함께 성금요일에 기적이 나타났다는 ‘십자가의 길’을 따라 올라가 봤다. 올라가는 길 바닥에는 시장에서 수박을 받칠 때 쓰는 둥그런 플라스틱 원형 고리들이 널려 있었다. 이 고리는 과거 성모동산에 기적이 나타날 때 성혈이 하늘에서 떨어진 자리를 표시해 둔 곳이라고 한다.
김 씨의 말에 따르면 성모동산의 기적은 현재 진행 중이었다. 지난 4월 22일(성금요일 지칭) ‘십자가의 길’을 걸어 올라가던 윤 씨가 비틀거리더니 그 순간 가시관 고통을 받고 머리에서 새빨간 선혈이 윤 씨의 얼굴로 흘러내렸다고 한다. 길을 오르는 곳곳에는 그때의 장면을 증명하는 사진들이 전시돼 있었다. 이후 윤 씨는 ‘십자가의 길’ 정상 부분에 다다르자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고 한다. 김 씨에 따르면 당시 윤 씨는 숨이 멎은 상태로 죽어서 하느님의 메시지를 받았다고 한다. 잠시 뒤 윤 씨가 다시 살아나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그 자리에 모인 순례자들에게 전했다고 한다.
‘십자가의 길’을 내려오는 길에 기자는 ‘기적수’를 마시고 있는 외국인 순례자들을 볼 수 있었다. 기적수는 치유의 능력이 있는 ‘기적의 샘물’이라고 성모동산 측은 주장하고 있다. 과거 방송에서 이 물의 수질검사를 한 결과 마실 수 없는 물이라 밝혀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성모동산 측은 자신들이 직접 수질 검사를 실시했다. 성모동산 측은 목포시 상하수도사업소로부터 ‘이상이 없다’는 검사결과 보고서를 기적수 옆에 전시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기자는 예배당으로 향했다. 큰 비닐하우스로 된 예배당 안도 역시 허름했다. 바닥엔 장판이 깔려있고 단상 좌우에는 ‘성모의 집’에서와 마찬가지로 피눈물을 흘리는 성모상 사진과 예수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예배당 바닥에는 꽃바구니들이 모여 있었다. 이 꽃바구니는 성모상에 봉헌하는 꽃으로 이곳에서 순례자들에게 1만 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이 외에도 동산에서는 찾아오는 순례자들을 대상으로 각종 상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피눈물 흘리는 성모상의 기적을 담은 인쇄물은 1000원에 판매되고, 영상물은 5000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또 ‘성모의 집’ 성물방에서는 율신액 무늬를 새긴 2m 길이의 스카프를 5만 5000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율신액은 윤 씨의 소변으로 장미향이 나고 금빛 가루가 섞여 있어 병을 치유하는 효능이 있다고 성모동산 측은 설명했다.
2011년 5월 1일 광주대교구에서는 김희중 대주교 명의로 ‘나주 현상’에 대해 다시 한 번 공지문을 발표했다. 공지문은 광주대교구가 ‘나주 현상’에 대해 교황청의 신앙교리성에 문의한 결과를 담고 있었다. 광주대교구 측은 “율리아의 추종자들이 기적의 사례들이라고 신앙교리성에 보내온 것들은 참된 그리스도교 신심과는 거의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고 밝히며 “나주의 기적이라고 알려진 사건들에 대해 교황청이 그 입장을 바꿀 계획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교황청의 입장이 광주대교구의 입장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성모의 집’ 측의 입장은 달랐다. 교황청 신앙교리성에서 보내온 서신이라며 광주대교구가 공개한 문서 중에 ‘non constat de supernaturalitate’ 부분을 놓고 해석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성모의 집’에 따르면 신앙교리성의 성지 인준 발표 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 ‘Constat de supernaturalitate’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확정한다는 뜻이고, 두 번째 ‘Constat de non supernaturalitate’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아님을 확정한다는 뜻이고, 마지막 으로 ‘Non constat de supernaturalitate’는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확정되지 않았다는 뜻으로 반대가 아닌 ‘판단유보’로 풀이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교황청에서 보내온 하나의 문구를 놓고 광주대교구 측과 ‘성모의 집’ 양측이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는 형국이다. 다만 ‘성모의 집’ 측에서 광주대교구를 거치지 않고 교회로부터 직접 성지 인준을 받기 위해 교황청에 따로 문서를 보냈지만 아직까지 답장은 없었다고 한다. ‘성모의 집’ 측은 성지로 인준을 받게 되면 더 많은 순례자들이 나주를 찾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훈철 기자 boaz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