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뜸사랑 회원들의 불법 국회봉사 관련 여권 실세 A 씨가 해결사 역할을 했다는 인터넷 게시글(왼쪽)과 민주당 B 의원에 대한 후원금 납부를 독려하는 구당 김남수 씨의 글. 작은 사진은 구당 김남수 씨. |
과연 전직 대통령 불법 시술 논란으로 재점화되고 있는 ‘구당 리스트’ 뇌관이 이번 검찰 수사를 통해 폭발할 수 있을까.
불법 시술 논란의 발단은 지난 4월 18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슴 통증으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노 전 대통령의 폐에서 길이 7㎝의 한방용 침이 기관지를 관통한 것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은 침 제거 수술을 받고 퇴원했지만 파장은 일파만파로 번졌다.
노 전 대통령 측은 침묵으로 일관했지만 침이 기관지에 들어간 경위 및 시술자가 누구인지를 놓고 뜨거운 논쟁이 시작됐다. 이런 와중에 SBS는 5월 10일 침을 놓은 당사자가 ‘뜸사랑’으로 유명한 김남수 씨의 여제자라고 보도해 파문을 확산시켰다. SBS는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을 인용해 4월 초까지 김 씨의 여제자가 사고를 일으킨 침을 놓았다고 보도했다.
보도가 나가자 김 씨가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뜸사랑 측은 즉각 반박했다. 노 전 대통령 같은 거물을 김 씨가 아닌 제자가 침을 놓았다는 자체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설령 김 씨의 제자가 침을 놓았을지라도 수천명의 여제자 중에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입장도 내놓았다.
김 씨의 여제자가 시술자로 지목받자 뜸사랑 측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한의협은 대대적인 공세를 펼쳤다. 한의협은 11일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노 전 대통령의 생명을 위협했던 기관지 내 침이 무자격자에 의한 불법시술 때문으로 밝혀진 것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며 검찰 수사를 촉구하는 ‘진정서 제출’이라는 초강수를 들고 나왔다. 노 전 대통령의 폐에서 발견된 침은 일반 한의사들이 많이 쓰는 것이 아니라 뜸사랑에서 주로 쓰는 것이며, 김 씨가 아끼는 3~4명의 여제자 중 한 명이 이 침을 사용해 노 전 대통령에게 시술했다는 것이 한의협 측의 주장이다. 또한 한의협 측은 면허 없이 노 전 대통령에 침을 놓은 사실이 밝혀지면 불법 의료행위에 대해서도 형사 대응에 나서겠다는 방침도 천명했다.
진정서가 접수되고 논란이 확산될 조짐이 일자 검찰은 12일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에 사건을 배당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진정서 내용을 바탕으로 기초적인 사실관계를 파악한 뒤 관련자를 소환해 불법 시술 여부를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검찰은 진정서 내용을 확인하는 선에서 수사가 진행될 것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하지만 사정당국 주변에서는 그동안 김 씨와 뜸사랑을 둘러싼 숱한 논란과 의혹이 끊이질 않았던 만큼 검찰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김 씨와 관련한 의혹 사건 전반으로 수사를 확대할 것이란 관측이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다.
실제로 김 씨는 2009년 말 쯤 수백억 원대 교육비 유용 혐의로 사정당국으로부터 은밀히 내사를 받은 적이 있고, 유명인 마케팅 논란에 정관계 로비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이른바 ‘구당 X파일’이 한의업계를 중심으로 확산된 바 있다. <일요신문>도 지난해 3월(929호) 여권 핵심 실세인 A 씨를 비롯한 여야 정치인과 각계각층의 유명인들이 대거 포함된 이른바 ‘구당 리스트’ 실체를 공개하기도 했다.
당시 <일요신문>이 단독입수해 공개한 ‘구당 뜸사랑 X파일’ 문건에는 김 씨와 관련한 각종 의혹들이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었다. A4 용지 48매 분량의 이 문건에는 김 씨의 자격증·나이 위조 및 침술원 개원 연도 조작, 친일과거 은폐 의혹, 정·관계 등을 통한 전방위 로비 정황, 유명인 치료사례 조작, 피라미드식 학원사업 실태 등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었다.
이 중 김 씨의 정관계 로비 의혹은 이른바 ‘구당 리스트’로 확대·재생산되면서 한동안 정치권을 초긴장 모드로 몰아 넣기도 했다. 실제로 문건에는 정·관계를 포함한 각계각층의 유명인사 20여 명이 리스트에 올라 있었다. 여권 핵심실세인 A 씨와 민주당 중진 B 의원, 참여정부 시절 최고위직을 역임한 C 씨 등도 리스트에 포함됐다. 특히 김 씨의 든든한 후원자로 알려진 A 씨의 경우 김 씨와 뜸사랑이 곤란한 상황에 처할 때마다 현장에 직접 나타나 해결사 역할을 자임하는 등 김 씨와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사실 유무에 따라 상당한 정치적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B 의원의 경우 뜸사랑 측으로부터 정기적으로 정치 후원금을 제공받으면서 김 씨와 뜸사랑 측의 입장을 옹호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로 <일요신문> 취재 결과 김 씨는 뜸사랑 회원들을 상대로 B 의원에게 정치 후원금 납부할 것을 독려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일요신문>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김 씨는 2005년 12월 뜸사랑 홈페이지를 통해 “B 의원을 도와야 한다. 많은 고민 끝에 후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우리 회원 300명의 명의로 1인 10만 원씩 3000만 원을 나 혼자 우선 기부하기로 했다. 후원금 10만 원을 뜸사랑 계좌로 넣어 주면 영수증을 보내겠다”며 회원들에게 후원금 납부를 독려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30~40대 소장파 한의사들이 주축이 된 ‘참의료실천연합회’(참실련) 측은 거짓과 정ㆍ관계 로비 등으로 포장된 ‘구당 X파일’의 검은 실체는 반드시 드러날 것이라며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기자와 수차례 접촉한 참실련 관계자들은 “김 씨는 로비와 마케팅의 달인이다. 그와 뜸사랑의 성장 배경에는 막강 인맥과 전방위 로비가 자리잡고 있다. 김 씨의 200억대 교육비와 맞물린 정·관계 로비 정황을 뒷받침할 수 있는 각종 근거 자료가 취합되고 있는 만큼 조만간 ‘구당 신화’의 베일이 벗겨질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불법 시술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이 김 씨와 관련한 각종 의혹 사건에 대해서도 메스를 들이댈지 여부도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그동안 수사당국은 김 씨의 200억대 교육비 유용 혐의에 대해 은밀히 내사를 진행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실제로 김 씨 제자들로 구성된 뜸사랑의 회원은 3000~3500명으로 월 200만 원가량의 교육비를 내고 침뜸 기술을 배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한의사 면허가 없는 무면허업자로 이들의 침과 뜸 시술은 모두 불법 의료행위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교육비 200억 유용건은 2009년 말께 서울 중랑경찰서에서 처음 사건을 인지하고 내사에 착수했고, 이후 검찰에 이첩됐으나 김 씨가 제기한 헌법 소원 등 복잡한 법률적 문제에 봉착해 현재 ‘시한부 기소중지’ 상태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와 관련 검찰의 한 고위관계자는 “수사당국이 그동안 김 씨와 관련된 각종 의혹 사건에 대해 은밀히 내사를 벌여 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하지만 어떤 이유인지 김 씨에 대한 내사가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아 검찰 내부에서도 의아해 하는 시각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노 전 대통령 불법 시술 논란으로 국민적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만큼 검찰이 이번에는 불법 시술 건 외에 김 씨와 관련된 각종 의혹 사건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수사를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의 불법 시술 논란이 검찰 수사로 확전되고 있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꺼내든 검찰의 칼날이 베일에 가려진 ‘구당 X파일’ 및 ‘구당 리스트’의 실체까지 파헤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