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선출 땐 ‘3지대’ 안철수와 연대 문 활짝…윤석열 선출 땐 ‘김종인 선거 좌장론’ 부상
안철수 대표와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의 향후 행보를 관통하는 변수는 ‘제3지대 공간’ 창출 여부다. 이 공간의 터줏대감인 안 대표는 남은 대선 과정에서 제3지대 공간이 열리지 않으면 사실상 뒷방으로 밀려난다. 안 대표로선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싸움이다.
안 대표를 둘러싼 정치적 환경이 나쁘지는 않다. 범진보와 범보수 지지층이 총결집하는 대선은 51 대 49 게임이다. 3% 안팎의 지지도를 받는 안 대표가 캐스팅보트를 쥘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누가 국민의힘 최종 후보가 되든, 안 대표와의 후보 단일화 논의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뜻이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합당 논의를 막판에 걷어찬 안 대표의 선택도 ‘캐스팅보트’ 역할을 노린 미필적 고의에 가깝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여권 선거 전략통은 “안 대표도 그 공간을 노린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다만 정치권 인사들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보다는 홍준표 의원이 국민의힘 최종 대선 후보가 돼야, 제3지대 공간이 확실히 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홍 의원도 그간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단일화 전망에 “걱정 안 한다”며 ‘홍준표-안철수’ 연대를 수차례 언급했다.
야권 관계자에 따르면 홍 대표는 자신의 복당과 보수 대통합이 지지부진하던 당시 안 대표에게 대선 후보 단일화를 고리로 러브콜을 했다고 한다. 여기엔 당 밖에서 무소속 연대 전선을 만든 뒤 대선 막판 제1야당과 단일화에 나서겠다는 전략이 깔렸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민의당 한 관계자는 “안 대표가 대선 후보 출마 선언도 안 했는데, 무슨 단일화 약속이냐”며 일축했다.
국민의당과 달리 홍 의원 측 인사들의 기대감은 크다. 홍 의원 측 핵심 관계자는 “홍 의원 스타일상 단일화는 물론, 통합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며 “(대선에서 승리하면) 협치를 명분으로 내각에도 함께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보수진영 안팎에선 ‘홍준표 대통령·안철수 국무총리’ 시나리오가 심심치 않게 거론된다. 홍준표 캠프 ‘섀도캐비닛(예비내각)’ 구상에 안 대표가 포함됐다는 것이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김종필(JP) 전 자유민주연합 총재와 구성한 연합정부의 보수 버전인 셈이다. DJ는 국민의정부 초대 국무총리에 JP를 발탁했다. 홍 의원과 안 대표가 후보 단일화에 그치더라도, 연립정부 구성을 매개로 손을 맞잡을 수 있다는 얘기다. 여권 한 전략가도 “국민의힘 경선 이후 안 대표는 ‘독자 완주냐, 연대·통합이냐’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라며 “여당도 안 대표가 후자를 택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전략을 짜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 의원이 단기필마로 뛰는 점도 ‘홍준표-안철수’ 단일대오를 추동한다. 홍 의원을 돕는 현역 의원은 조경태(5선) 하영제(초선)뿐이다. 연대·통합 과정에서 미니 캠프는 되레 강점으로 작용한다. ‘감 놔라 배 놔라’하는 사공이 없어서다. 보수진영 한 관계자도 “홍 의원만 결단하면 가능한 일이 아니냐”고 했다. 홍 의원만 결단하면 의외로 연대·통합의 속도가 빨라질 수도 있다는 의미다. 다만 이 경우 ‘책사’ 김종인 전 위원장이 낄 자리는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윤석열 전 총장의 ‘별의 순간’을 언급했던 김종인 전 위원장은 ‘홍준표·안철수’와 악연이다.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시절, 김 전 위원장은 홍 의원의 복당을 반대했다. 그러자 홍 의원은 자신이 검사 당시 김 전 위원장을 수사한 점을 거론, “1993년 4월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 때 20분 만에 뇌물 사건을 자백 받았다”고 폭로했다.
한때 멘토로 묶였던 안 대표와 김 전 위원장도 루비콘강을 건넌 지 오래다. 이들이 연을 맺은 것은 2011년쯤이다. 그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안 대표는 김 전 위원장의 ‘출마 조언’을 외면하고 독자 행보에 나섰다. 50%의 지지도를 받았지만,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게 결국 후보직을 양보했다.
이어 2012년 대선 과정에선 안 대표가 김 전 위원장에 “그분이 내 멘토라면, 내 멘토는 300명쯤 된다”고 말했다. 지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땐 김 전 위원장이 후보로 나선 안 대표를 향해 “정신이 좀 이상한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안 대표가 후보 단일화가 지지부진한 이유로 ‘김종인 상왕론’을 펴자, 응수한 것. 이에 국민의힘 일부 인사들은 “홍준표·안철수·김종인·이준석이 함께하는 그림은 잘 그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 대선 최종 후보로 선출될 경우 다른 그림이 그려질 수 있다. 외곽에 있는 김 전 위원장의 구심력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위원장은 9월 16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대선 도전 공식선언 한 달 만에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한 윤 전 총장에 대해 “‘입당 서두르지 말라’고 했는데 (그로부터) 두 시간 만에 입당했더라”라고 비판했다. 다만 그는 ‘선거대책위원장 역할론’과 관련해선 “대통령 후보감을 보고 판단할 수가 있다”고 말했다. 홍 의원이 아닌 윤 전 총장이 본선에 오르는 전제로, ‘선거 좌장 역할론’에 여지를 남긴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캠프 내 ‘반김종인 기류’는 윤 전 총장이 넘어야 할 산이다. 윤석열 캠프에 합류했다가 최근 물러난 장제원 의원이 대표적인 반김종인계였다. 앞서 장 의원은 4월 20일 김 전 위원장이 자신을 ‘홍준표 꼬붕’이라고 하자 “김종인 꼬붕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맞받아쳤다. 일각에선 장 의원의 캠프 총괄실장직 사퇴로, 김 전 위원장의 공간이 열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문제는 안 대표의 포지션이다. 김 전 위원장이 윤 전 총장의 뒷배 역할을 할 경우 안 대표의 입지는 축소된다. 경제민주화를 만든 김 전 위원장이 개혁 정책을 통해 보수일색인 윤 전 총장의 색 빼기에 나선다면, 안 대표의 역할은 사실상 없어진다. 안철수 역할론의 핵심인 중도 강화를 선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준석 변수’도 최대 난관이다. 이준석 대표와 안철수 대표의 앙금도 여전히 깊다. 내년 3·9 서울 종로 보궐선거에서 이준석 카드가 현실화할 경우, 안 대표가 없어도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종로 보궐선거 후보 간 시너지효과는 극대화된다. 범야권 대선 전략 선택지에서 ‘안철수 역할론’은 아예 빠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윤석열-이준석-김종인’ 조합에 안 대표까지 끼면 4자 권력다툼이 극에 달할 수도 있다. 그럼 시너지효과는 되레 반감된다.
여당 일부 인사들은 “보수 통합 과정에서 안철수 대표의 역할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홍준표 의원이 본선에 직행하면 이준석 대표가 반대하고, 윤 전 총장이 최종 후보가 되면 김 전 위원장이 강하게 블로킹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안 대표에게 최악의 시나리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선 막판 여야 구도가 51 대 49로 초박빙 승부를 펼친다면, 제1야당 내부에서 자강론은 수그러들고 연대·통합론이 다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여권 수뇌부는 ‘이낙연 의원직 사퇴안’ 통과 직후 야권의 ‘대선·종로·서초’ 3자 후보 러닝메이트 시뮬레이션 분석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당분간 양당 지도부 간 수싸움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지상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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