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시 마을, 경기용 베개 갖추고 매년 대회 개최…“선생님 온다”고 외치면 ‘자는 척’ 규칙도
매년 2월, 일본 시즈오카현 이토시 마을에는 어린이부터 60대 노장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몰려든다. 다름 아니라, 일본 최고의 베개싸움 팀을 가리는 선수권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상금은 10만 엔(약 106만 원). 그리 높은 금액이라 할 순 없지만, 모두들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대결에 임한다.
일본에서 베개싸움 대회가 처음 개최된 것은 2013년. 유럽 매체 ‘유로뉴스’에 의하면 “도시 관광객을 유치하고자 이토시가 기획한 아이디어로 수학여행 시 학생들이 벌이는 베개싸움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매체는 “일본식 돗자리인 다다미와 전통의상을 재미있게 홍보할 수 있는 이벤트”라면서 “현재는 매년 400명 이상의 선수들이 참석하는 전국대회로 성장했다”고 평가했다.
고작 베개싸움이라고 얕봐선 안 된다. 꽤 세세하게 규칙이 정해져 있으며, 공식 경기용 베개까지 출시돼 있으니 말이다. 우선 5명으로 구성된 두 팀이 전통의상 유카타를 입고 이불 위에서 자는 시늉을 한다. 심판이 호루라기를 불면 벌떡 일어나 상대 팀을 향해 베개를 던지고, 반대로 베개에 맞은 팀원은 탈락하는 방식이다. 그 중에서 ‘왕’의 권한을 가진 팀원이 베개에 맞으면 팀 전체가 패배한다.
언뜻 피구와 경기규칙이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이불을 이용해서 상대편이 던지는 베개를 막을 수 있다는 점, 아울러 “선생님이 온다”고 외치면 ‘자는 척해야 한다’는 등의 색다른 규칙들이 재미를 더한다.
실제로 경기를 관람하면 베개가 날아가는 속도에 놀라게 된다. 놀이가 아닌 치열한 경기이기 때문에 다들 전력을 다해 던진다. 아무리 베개라고는 하나 맞았을 때 혹시 아프진 않을까. 이에 대해 참가자들은 “전혀 아프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상상 이상으로 베개 촉감이 폭신폭신하다는 것.
대회용 공식 베개는 2014년 일본 베개회사 ‘마쿠라’가 개발했다. ‘던지기 쉽고, 맞아도 아프지 않으며, 눈에 잘 띄는 베개’가 콘셉트. 탄력 있는 라텍스 소재를 사용해 부드러울 뿐 아니라 가볍고 멀리 날아가는 것이 특징이다. 게다가 부딪혀도 충격을 완화해 부상당할 염려가 없다. 다만 엄청난 기세로 던지다 보니 베갯속이 터져 시합이 중단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그만큼 참가 선수들은 베개싸움에 진심이다.
일본 매체 ‘네토라보’가 몇몇 팀에 출전 동기를 묻자 “왠지 재미있을 것 같아서” “동아리의 유대감을 강화하고 싶어서 참가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5년 이상 연속으로 참가하고 있다”는 팀도 적지 않았다. 어린이부 대회에서는 초등학생들도 씩씩하게 베개를 던지고 피한다. “현지 마을회관에 모여 틈틈이 연습을 해오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금까지 기록된 최연소 선수는 9세, 최고령자는 75세라고 한다.
이른바 ‘베개싸움의 성지’로서 마을 부흥을 꾀하고 있는 이토시. 시 관계자는 “향후에도 지방 예선전을 포함해 베개싸움 대회를 지속해 나가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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