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G가 좌완 투수 오상민을 시즌 중 갑작스럽게 방출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사진제공=LG트윈스 |
#경기 중 사라진 오상민
지난 4월 24일 잠실구장에서 기자들과 만난 LG 박종훈 감독은 “오상민은 아프지 않지만 이제 구위가 많이 떨어진 것 같다. 이제는 한계가 온 게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 LG 투수진 상태를 설명하다가 나온 느닷없는 발언이었다. 그도 그럴 게 오상민은 올 시즌 11경기에 등판해 평균자책 1.80을 기록 중이던 불펜 필승조였다. 박 감독은 ‘구위가 떨어졌다’고 평가했지만 성적으로 봤을 땐 지난해보다 구위가 훨씬 뛰어났다. 9이닝당 삼진은 지난해보다 늘었고 피안타율은 고작 2할2푼2리밖에 되지 않았다. 상대 타자들이 “오상민의 공이 확실히 좋아졌다”며 “겨우내 놀지 않고 훈련한 모양”이라고 농담을 던질 정도였다.
그래서 당시만 해도 박 감독의 발언은 오상민의 자만을 막고 긴장을 유도하기 위한 자극제로 들렸다. 그로부터 이틀이 지나고서 LG는 언론사에 보도 자료를 배포했다. “오상민에 대해 한국야구위원회(KBO)에 웨이버 공시를 요청했다”는 내용이었다. 그제야 기자들은 박 감독의 발언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알아차렸다. 하지만 의문은 여전했다. 구위가 떨어진 투수라면, 2군으로 보내 몸을 만들도록 유도하는 게 상식이었다. 의문에 대한 답은 LG 관계자가 대신했다.
“22일 잠실 KIA전을 앞두고 오상민이 갑자기 팀을 무단이탈했다. 사안이 중대해 ‘웨이버 공시’라는 강수를 빼들 수밖에 없었다.”
내막은 이랬다. 22일 KIA전에서 LG는 2 대 1로 앞선 가운데 7회 초를 맞았다. LG 코칭스태프는 6회까지 1실점으로 호투한 선발 김광삼 대신 불펜 필승조를 가동시키려 했다. 그런데 불펜의 핵인 오상민이 보이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그날 경기에서 LG는 2 대 1로 이겼다. 그러나 경기가 끝나서도 오상민은 나타나지 않았다. 당시 오상민은 사적인 문제로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 중이었다. 오상민은 구단 관계자에 “급히 경찰서로 오느라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며 사과의 뜻을 나타냈다.
구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오상민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듣고선 한숨이 탄식으로 변했다.
“구단이 힘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난처한 사적 문제에 얽혀 있었다. 어설프게 오상민을 보호하려 했다간 구단도 문제에 휘말릴 수 있었다. 구단 고위층과 코칭스태프의 회의에서 ‘오상민 문제에서 발을 빼자’고 결론 내렸다.”
항간에는 ‘오상민과 교제 중이었던 여성이 금전 문제로 자살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경찰 확인 결과 자살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정확한 자살 사유는 알려줄 수 없다”며 더 이상은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자살한 여성의 지인이 트위터를 통해 “오상민에 책임이 있다”고 밝힌 내용이 인터넷에 삽시간에 퍼지며 구체적 정황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도박 문제로 끊임없이 구설
군산상고와 성균관대를 졸업한오상민은 1997년 쌍방울에 입단하며 계약금 1억 8000만 원을 받았다. 당시 쌍방울의 재정 상태를 고려하면 대단한 액수였다. 오상민은 구단의 기대대로 데뷔 첫해부터 1군에서 뛰며 팀의 주축 불펜투수가 됐고 1997년부터 2001년까지 6년 연속 60경기 이상에 등판했다. 여기다 2004년 34경기에 출전하며 8년 연속 34경기 이상 등판의 대기록을 세웠다. 기록만 보자면 오상민은 ‘성실의 대명사’지만 그를 ‘성실한 선수’로 기억하는 야구인은 거의 없다. 한 투수코치는 오상민을 “천재 투수”라고 평가했다. 이유는 색달랐다.
“데뷔 이래 한 시즌도 쉬지 않고 개인 통산 736경기 등판을 기록했다. 타고난 몸과 체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여기다 데뷔 때부터 15년 동안 별다른 구종 개발 없이 속구와 슬라이더만으로 타자들과 승부했다. 저렇게 열심히 훈련하지 않고 단순한 구종으로 15년 동안 마운드에 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천재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같은 팀에서 뛰었던 한 선수는 “2005년 병역법 위반으로 징역을 산 이후 오상민이 천재에서 평범한 선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선수는 “오상민을 결정적으로 망친 건 도박이었다”고 귀띔했다.
2007년 삼성이 오상민을 방출한 이유도 도박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LG 유니폼을 입고서도 오상민은 끊임없이 도박에 연루됐다. 2008년엔 상습도박혐의로 불구속 입건돼 벌금형에 처했고 2009년에도 인터넷 도박혐의로 5경기 출전정지 징계를 받았다. 한 술 더 떠 그해 6월엔 사채업자로부터 2000만 원의 도박 자금을 빌렸다가 이를 되갚지 못해 법정에 섰다. 당시 담당판사는 “누범 기간(3년)에 다시 죄를 저지르고 이유 없이 채무불이행을 지속했다”며 이례적으로 법정 구속을 지시했다.
이때 오상민을 구해준 이가 LG였다. LG의 노력으로 오상민은 그라운드로 복귀했다. LG는 다음해 오상민과 재계약하는 대신 연봉을 직접 떼 도박 빚 등 여타 채무를 해결해줬다. 그러나 이후로도 오상민은 도박과 관련한 구설에 끊임없이 올랐다.
오상민은 아직 새로운 소속팀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 구단 관계자는 “좌완 투수 품귀 현상이 아무리 심해도 오상민을 영입할 팀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