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한자-항문침 전문가-천공스승 연이어 도마 위에…“유력 정치인들 역술인 자문 공공연”
‘손바닥 임금 왕(王) 자’ 논란을 비롯해 ‘항문침 전문가 이병환’과 ‘천공스승’이라는 인물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우선 ‘임금 왕 자’가 왜 윤 전 총장 손바닥에 그려져 있었는지가 쟁점이었다. 일각에서 무속인이 그려준 부적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제기됐다. 몇몇 무속인은 손바닥에 ‘王’ 자를 새기는 것은 언변이 부족하거나 가기 싫은 자리에 가야 할 때 운을 증폭시키기 위해서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윤 전 총장 측은 “근처에 사는 노인이 토론회 날(10월 1일) 만나 적어준 것”이라면서 “이전 토론회에선 (손바닥에 ‘王’ 자가) 없었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이두아 윤석열 캠프 대변인은 “후보 손금을 따라 그은 것인데 처음에 물티슈로 닦았지만 지워지지 않았고, 알코올 성분이 있는 세정제로 다시 닦아도 지워지지 않았다”고 했다.
일회성 해프닝으로 일단락될 것으로 보였던 ‘王 자 논란’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 커졌다. 캠프 해명과 달리 3~4차 토론회에서도 윤 전 총장 왼 손바닥에 이 한자를 쓴 것으로 보이는 사진들이 나오면서다.
윤희석 윤석열 캠프 대변인은 “윤 후보와 같은 동네 사는 연세 높은 지지자 한 분이 토론회를 할 때마다 써준 것”이라고 해명했다. 윤 대변인에 따르면 이 지지자는 윤 전 총장 가사도우미와 잘 아는 사이여서 윤 전 총장이 집에서 나와 방송국으로 출발하는 때를 파악해 ‘王’이란 글자를 여러 차례 써줄 수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캠프 해명 뉘앙스가 달라진 것을 두고 정치권에선 더 많은 말이 돌았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윤석열 캠프는 “(글자 쓴 사람을) 특정할 수 없다”, “지나가는 분들(이 써줬다)”이라는 등의 추가 해명을 냈다. 지속해서 말이 바뀌는 상황에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항문침 전문가 이병환 씨’와 ‘천공스승’도 윤석열 주술 논란에 소환됐다. 자칭 ‘항문침 전문가’로 알려진 이병환 씨는 자신의 침술로 기를 불어 넣어준다는 주장을 펼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는 전문가가 윤 전 총장과 함께 이름이 거론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 씨가 6월 9일 우당 이회영 선생 기념관 개관식 당시 윤 전 총장을 밀착 수행하는 장면이 회자된 까닭이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 2차 컷오프 전 마지막 열린 10월 5일 6차 토론회에서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이 씨를 모르느냐”고 질문했고 윤 전 총장은 “만난 적이 없다. 모른다”고 일축했다.
‘항문침 전문가’와 윤 전 총장 사이 관계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유 전 의원은 ‘천공스승’으로 알려진 유튜버 이름도 꺼냈다. 천공스승은 유튜브 채널 ‘정법시대’를 운영하고 있는 사상가 혹은 도인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17년간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고 주장하며 정치·사회 평론, 고전 강의, 천부경 해석 등 콘텐츠를 제작한다.
유 전 의원은 윤 전 총장을 향해 “천공스승을 아느냐”면서 “언론인이 인터뷰했는데 본인 스스로 윤석열의 멘토고, 지도자 수업을 한다고 했다”고 물었다. 윤 전 총장은 “뵌 적이 있다”면서 “멘토라는 말은 과장된 것”이라고 답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유 전 의원은 ‘항문침 전문가’와 ‘천공스승’ 등 카드를 꺼내며 주술 논란에 불을 붙였다.
이날 토론회를 마친 뒤 윤 전 총장과 유 전 의원 사이 설전이 오갔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복수 국민의힘 관계자들의 목격담을 종합하면 토론회를 마친 뒤 윤 전 총장이 유 전 의원과 악수를 하는 상황에서 설전이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총장은 “정법(천공스승)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면서 “유튜브를 보라. 따르는 사람이 많다. 그렇게 얘기하면 명예훼손이 될 수도 있다”는 취지로 유 전 의원에게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유 전 의원이 불쾌감을 표시했다는 후문이다. 국민의힘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유 전 의원은 “확인되지 않은 걸 왜 이렇게 하느냐”고 항의하면서 “언론에도 나온 것을 당신이 왜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며 신경전을 펼친 것으로 전해졌다.
김병민 윤석열 캠프 대변인은 “경제 정책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미래를 논하는 장으로 마련된 방송 토론회를 역술인 퀴즈대회로 만든 것도 모자라 거짓을 유포하며 윤 후보 흠집내기를 하는 모습이 치졸하기 짝이 없다”는 논평을 발표했다. 토론회서 ‘주술 논란’에 불을 붙인 유 전 의원을 겨냥한 논평으로 풀이됐다.
사실 대선 정국에서 역술이 등장한 것은 그리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과거 3차례 대선에서 캠프 활동을 한 경력이 있는 정치권 관계자는 “유력 정치인들이 그간 역술인들의 자문을 구한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대선주자들이 가장 관심을 보이는 것은 사주라고 불리는 명리학이다. 명리학에서 자신이 대통령이 될 운인지에 대해 묻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풍수지리적으로 조상의 묘를 더 좋은 곳에 이장하는 것도 정치권에서 흔치 않게 볼 수 있다. 그 다음으로는 무속신앙인데, 몇몇 정치인들이 살풀이 등 굿을 하는 경우에 대해서도 들은 적이 있다. 영화 ‘더킹’에서 정치 검사들이 ‘대통령 누가 되게 해달라’며 굿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현실에서 분명 존재한 적이 있는 장면이다.”
일요신문이 취재를 위해 접촉한 명리학자나 풍수가, 무속인 등은 취재에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한 명리학자는 통화에서 “대선이 다가온 시점에서 개인적으로 명리학을 풀이하는 것이 ‘천기누설’이 될 수도 있고, ‘대중이 다 아는 정보를 조합해서 짜깁기하는 것 아니냐’는 눈초리를 받을 수 있어 어떤 말을 하기가 굉장히 조심스럽다”고 했다. 그는 “그러나 사주를 해석하는 명리학자라면 대선 주자들의 사주를 구해서 분석하는 것은 거의 다 한번쯤은 해봤을 것”이라고 했다.
주역과 사주 해석에 능통한 한 역술인은 “정치인들 가운데 사주를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다. 호적상 사주와 실제 사주가 다를 수 있다”면서 “출생 연·월·일·시로 운세를 점치는 사주에서 몇몇 정치인들은 더 좋은 해석을 받으려 시주(태어난 시간)를 변경해서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 역술인은 “(정치인) 보좌진이 사주를 들고 와 상담을 하는 경우, 전화 상담을 하는 경우, 직접 찾아오는 경우 등 여러 경로가 존재한다”고 했다. 그는 “다만, 대선 시즌엔 대선 주자를 직접 만나는 역술인이 많지 않을 것”이라면서 “총선이나 지방선거 때는 정치인들이 직접 찾아와 상담을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했다.
또 다른 명리학자는 “몇 년간의 운을 점칠 수 있는 대운이라는 것이 있고, 찰나의 운을 가늠하는 해석도 가능하다”면서 “이런 모든 것을 종합했을 때는 해석마다 다른 의견이 나올 수 있다”면서 해석의 다양성에 대한 여지를 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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