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14일 최영주 아나운서와 임진한 프로가 함께 진행했던 타이거 우즈 골프 레슨 클리닉. |
SBS ‘골프 아카데미’를 진행한 지 3년이 넘었다. 그동안 많은 선생님들을 방송에서 만났다. 한국에 올 때마다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빠지지 않고 찾아서 레슨을 해주는 최경주 선수부터 올해 PGA 루키로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는 김비오 선수까지 다양한 프로들과 방송을 했다.
“넌 좋겠다. 최고 선생들한테 배우니까 이제 싱글 됐지?”
“부럽다. 주옥같은 레슨만 들으니 얼마나 좋아. 누가 제일 잘 가르치니?”
골프를 치는 지인들을 만나면 꼭 듣게 되는 말이다.
하기야 일주일에 한 시간씩 3년을 귀동냥했으면 이제 풍월을 읊어도 3D로 읊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싱글은커녕 아카데미 엠씨가 된 이후, 나의 스윙은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원인은 알고 있었다. 너무 많은 약이 독이 되듯이, 너무 많은 이론은 혼란을 준다.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최고의 프로들이 각자 쌓아온 스윙의 메커니즘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옆에서 3년간 들었다. 열심히 들었다. 그런데 머리로 들었다. 아무리 좋은 스윙이론도 몸으로 체득하지 않으면, 몸과 머리가 따로 노는 자세가 만들어진다. 머리로는 이해가 가는데 몸이 따라주질 않는 것이다.
아마추어의 몸 상태를 가지고 자꾸 프로의 이론을 머릿속으로 생각한다. 한번 스윙을 하려면 머릿속에 그 이론들이 떠올랐다.
‘아! 지난번 아카데미에 나온 프로가 백스윙을 바로 들라고 했지’ ‘이번 주에 나온 프로는 길게 빼라고 했는데…’ ‘다운스윙은 몸에 붙이라고 했고, 척추각은 유지하라고 했어’ ‘임팩트 순간은 예각으로 맞아야 다운블로가 된다고 했는데…’ ‘릴리스는 왼손이 주도하지만 오른손은 쭉 펴라고 듣긴 했는데 잘 안 되네.’ 이렇듯 온갖 스윙이론들이 머릿속을 뛰어다녔다.
게다가 ‘아카데미 진행자’는 어떻게 스윙을 하는지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쳐다보는 동반자들까지 있다. 부담백배다. 점점 라운드 제안이 별로 달갑지 않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딜레마였다. 골프 진행자가 골프 치기가 점점 싫어지다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작년에 임진한 프로님을 찾아갔다. 레슨계의 거장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워낙 온화한 성품을 갖고 있는 분이시라, ‘망가진 아마추어’의 심정을 잘 이해해 주실 것 같았다. 귀한 시간을 뺏는 거라 죄송했지만, 절박한 심정이 더 강했다.
임 프로님은 아이언을 몇 번 치게 하셨다. 그리고 바로 스윙을 하지 말라고 하셨다. 스윙을 바꾸려고 찾아간 사람에게 스윙을 못하게 하니까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만 말씀하셨다. 당분간 풀스윙은 아예 하지 말고 피니시 자세만 100번씩 취하라고 하셨다. 그 외에는 더 이상의 레슨은 없었다.
답답했다. 필드만 나가면 오른쪽 어깨가 떨어지는 게 너무 고민이 돼서 찾아갔는데, 왜 피니시 자세만 취하게 하실까? 그것도 반스윙으로만 하는 피니시 자세를….
며칠이 지나고 혼자 차분히 연습을 하다가 불현듯 깨달았다. 나는 직장을 다니는 아마추어 골퍼다. 일주일 내내 일에 지친 몸을 이끌고 채 한 번 안 잡아본 상태로 주말 골프를 가끔 치러간다. 연습을 안했으면 마음을 비워야 정상이다. 그런데 머리는 프로다.
그동안 기본을 잊은 채 머리로만 골프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곡차곡 몸으로 쌓은 골프가 아닌 말로만 하는 골프를 하면서 볼이 안 맞는다고 속상해 했던 것이다. 임 프로님은 너무 많은 스윙 이론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것을 아시고 스스로 되돌아 볼 시간을 주신 것이다. 더불어 ‘피니시만 보면 그 사람의 스윙을 알 수 있다’ 는 골프계의 정설을 직접 체험하게 해주셨다. 제대로 된 피니시를 하기 위해서는 그 전의 모든 과정이 간결하게 이뤄져야 한다. 바로 그 점을 느끼게 해주셨다.
그게 벌써 1년 전의 일이다. 그동안 나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예전보다는 덜하지만, 아직도 스윙할 때 오른쪽 어깨가 떨어져서 ‘폴라 크리머’ 같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연습도 많이 못한다. 라운드 직전에 한 번 연습하러 갈까 말까 할 정도로 여전히 시간에 쫓겨 산다. 그렇지만 다행히 확실히 변한 게 있다. 예전보다 골프장의 꽃들을 더 많이 보게 됐다. 동반자가 잘 칠 때 ‘굿 샷!’을 엄청 크게 외쳐줘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든다.^^ 공이 잘 맞으면 감사하고, 못 맞으면 못 맞은 대로 감사하게 생각된다. 연습 못하는 나를 인정하게 된 것이다. 요행을 바라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필드에서는 딱 한 가지만 생각한다. ‘피니시!’
5월은 선생님을 찾아뵙는 달이다. 골프를 하는 사람에게 선생님은 정말 중요하다. 골프를 하는 사람들은 좋은 선생님을 만나면 골프 인생이 달라진다. 많은 선생님이 계시지만, 골프에 있어서 좋은 선생님을 나는 감히 이렇게 정의한다.
기술보다는 기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선생님!
머리가 아닌 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선생님! 그리고 그것들을 단순하게 전달할 줄 아는 선생님! 그런 선생님을 찾은 나는 행복한 아마추어 골퍼다.
SBS 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