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지금 우리 학교는’ 등 차기 라인업 기대감…내년엔 1000억대 투자 초대작 등장 가능성도
한창 ‘오징어 게임’이 전세계적인 흥행에 성공할 무렵 한 중견 연예기획사 임원이 들려준 얘기다. 그는 보다 명확한 분기점으로 ‘마이 네임’ 흥행 여부를 지목했다.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K-드라마인 ‘마이 네임’은 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찾기 위해 조직에 들어간 ‘지우’가 새로운 이름으로 경찰에 잠입한 뒤 마주하는 냉혹한 진실과 복수를 그린 작품이다. 바로 ‘무간도’가 떠오르는 언더커버 장르물이다. 너무 흔한 언더커버 장르로 과연 ‘무간도’를 넘어설 수 있을까 싶은 우려의 시선도 있었지만, 역시 흔한 서바이벌 장르였던 ‘오징어 게임’처럼 대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관측도 분명 존재했다.
10월 15일, 드디어 ‘마이 네임’이 공개됐다. 10월 20일 기준 글로벌 OTT 콘텐츠 순위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 패트롤의 넷플릭스 ‘TV 프로그램(쇼) 부문’ 월드와이드 1위는 여전히 ‘오징어 게임’이며 ‘마이 네임’이 3위에 올라 있다. tvN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도 7위에 올라 선전하고 있지만 ‘마이 네임’은 압도적이다. 금요일인 15일에 공개됐음에도 41째 주(10월 11일~17일) 주간 순위 10위에 올랐으며 42째 주 주간순위 중간 집계에서는 4위에 올랐다.
무려 83개국에서 ‘TV 프로그램(쇼) 부문’ 톱10 안에 들었으며 아시아권에서는 대부분 상위권에 올랐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구권 국가들에서도 톱10 안에 이름을 올렸으며 미국에서는 5, 6위를 오가고 있다. 여전히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오징어 게임’에 가려 있을 뿐 ‘오징어 게임’ 이전 상황이라면 역대급 흥행으로 화제가 됐을 수준이다. ‘마이 네임’ 자체도 경쟁력 있는 K-드라마지만 ‘오징어 게임’으로 인한 한국 문화와 K-드라마에 대한 전세계인의 관심이 자연스레 후속작 ‘마이 네임’으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당연히 다음 관심사는 이후 공개될 넷플릭스 오리지널 K-드라마 라인업이다. 이제는 한국 방송가를 뛰어 넘어 전세계 엔터테인먼트 업계 전반의 관심사가 됐다. 넷플릭스가 발표한 라인업에 따르면 다음 작품은 11월 19일에 공개되는 ‘지옥’이다.
‘지옥’은 ‘연상호 작품’이라는 표현으로 모든 설명이 가능하다. ‘부산행’ ‘반도’ 등의 영화로 유명한 연상호 감독은 자신만의 세계관을 가미한 ‘연상호 유니버스’를 구축하고 있다. 드라마 ‘방법’의 대본을 쓰며 드라마 작가로 변신한 연 감독은 올여름 개봉한 ‘방법: 재차의’의 시나리오도 썼다. 드라마 첫 연출작 ‘지옥’ 대본도 본인이 직접 썼다. 예고 없이 등장한 지옥의 사자들에게 사람들이 지옥행 선고를 받는 초자연적 현상이 발생하고, 이 혼란을 틈타 부흥한 종교단체 새진리회와 사건의 실체를 밝히려는 이들이 얽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지옥’은 대략의 설명만 접해도 ‘연상호 유니버스’ 작품이라는 느낌이 전달된다. 유아인, 김현주, 박정민, 원진아 등 출연진도 탄탄하다. 과연 ‘연상호 유니버스’를 전세계 시청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2월에는 ‘고요의 바다’가 공개된다. 필수 자원 고갈로 황폐해진 미래의 지구를 배경으로 달에 버려진 연구기지에 의문의 샘플을 회수하러 가는 정예 대원들의 이야기를 다룬 ‘고요의 바다’는 K-드라마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SF물이다. 넷플릭스의 대대적인 투자가 있었기에 가능한 한국 드라마의 새로운 도전이다. 배두나, 공유, 이준 등 톱스타 출연진도 눈에 띄지만 더 눈길을 끄는 대목은 정우성이 제작을 맡았다는 점이다. 절친 이정재가 최고의 연기를 통해 불 피운 전세계적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K-드라마 열풍을 제작자 정우성이 이어갈지 관심이 집중된다. ‘지옥’이 다소 마니아층을 겨냥한 드라마라면 ‘고요의 바다’는 전세계 시청자를 겨냥한 야심작이다.
그리고 2022년 1월에는 ‘소년심판’, ‘지금 우리 학교는’이 공개되고 2월에는 ‘모럴센스’가 공개될 예정이다. 김혜수, 김무열, 이성민, 이정은 등이 출연하는 ‘소년심판’은 소년범을 혐오하는 판사가 한 지방법원 소년부에 새로 부임하면서 벌어지는 휴먼 법정 드라마로 탄탄한 연기력의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기대감이 크다.
사실 가장 기대감이 큰 작품은 ‘지금 우리 학교는’이다. 윤찬영, 박지후, 조이현, 로몬, 유인수 등이 출연하는데 앞서의 작품들과 비교하면 출연진의 유명세는 상당히 떨어지는 편이다. 그렇지만 넷플릭스를 통해 월드와이드로 공개되는 상황에서 배우들의 한국 내 유명세는 그리 큰 의미가 없다. 스타급 배우의 경우 연기력이 검증됐다는 점에서 신뢰감이 더 클 뿐이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한 고등학교에 고립된 이들과 그들을 구하려는 자들이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극한의 상황을 겪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좀비물이다. 좀비물이자 학원물인데 미국 등 서구권에서 인기가 높은 장르다. 게다가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해 스토리가 탄탄하고 이재규 감독이 연출을 맡아 기대감이 더욱 커졌다. 이재규 감독은 ‘다모’ ‘베토벤 바이러스’ 등으로 유명한 실력파 PD다.
이미 ‘오징어 게임’을 통해 K-드라마의 경쟁력은 충분히 입증됐고 그 여세를 ‘마이 네임’이 이어가면서 넷플릭스의 한국 투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넷플릭스는 ‘오징어 게임’에 1등 상금 456억 원의 절반이 조금 넘는 254억 원을 투자해 1조 원 이상의 수익을 벌어들였다. 이제 제작비 500억~600억 원대 드라마가 여럿 등장하고 1000억 원대 제작비의 초대작도 가능해질 수 있다. 그만큼 2022년 라인업은 더욱 화려해질 전망이다.
문제는 실력파 감독과 작가, 그리고 유명 배우들의 넷플릭스 쏠림 현상이 두드러질 수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경쟁 관계인 디즈니 플러스도 11월부터 국내 서비스를 시작하며 K-드라마 등 한국 콘텐츠 제작에 대대적인 투자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런 글로벌 업체들의 엄청난 자금력과 영향력으로 인해 K-드라마의 근간인 지상파와 종합편성 및 케이블 채널의 드라마의 경쟁력이 흔들릴 수 있다. 또한 국내 OTT 업체들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은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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