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0년 800억대 매출에 그쳤던 범한판토스는 LG그룹의 ‘일감 몰아주기’에 힘입어 지난해 1조 4775억원 매출을 달성했다. 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r |
LG그룹 계열사를 겨냥한 국세청의 전 방위적인 세무조사는 지난해 중순부터 시작됐다. 국세청은 지난해 5월 중순 서울국세청 조사1국 요원들을 서울 영등포구에 소재한 LG이노텍 본사에 투입, 세무조사를 실시한 데 이어 7월 초에는 LG화학을 대상으로 세무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이후 국세청은 LG유플러스(11월)와 경북 구미에 소재한 LG실트론(12월 말)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단행했다. LG 계열사에 대한 잇따른 세무조사와 관련해 국세청과 LG 측은 일반적인 세무조사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최근 국세청이 LG그룹 계열의 비상장 물류회사인 범한판토스에 대한 특별세무조사에 돌입한 것으로 확인돼 LG그룹을 긴장시키고 있다. <일요신문> 취재결과 서울지방국세청은 지난 4월 14일 서울 여의도에 소재한 범한판토스를 방문해 내부자료를 압수하는 등 특별세무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세무조사에는 ‘국세청의 중수부’로 통하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이 직접 투입된 것으로 확인됐다.
범한판토스는 국내외 운송·물류업체로 글로비스, 대한통운, CJ GLS와 함께 국내 물류업계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이 회사는 3000여 명의 임직원(해외직원 포함)이 1조 4000억 원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종합물류기업이다. 이 회사는 구본호 씨의 부친인 구자헌 씨(작고)가 지난 1977년에 설립했다. LG그룹 구본무 회장의 6촌 동생이자 LG가 방계 3세인 구본호 씨와 구 씨의 어머니 조금숙 씨가 각각 46.14%와 50.86%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고, 전문경영인 여 아무개 씨가 대표로 재직 중이다.
국세청은 범한판토스가 해외영업점을 이용해 수백억대의 역외소득 탈루 및 국내 거래과정에서의 탈세, 여기서 축적된 자금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을 포착하고 특별세무조사에 돌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실제로 범한판토스는 국내 종합물류회사로는 최대 규모인 전 세계 34개국, 103개 지역, 125개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2005년 당시 총 매출의 20% 수준이던 해외매출이 2008년엔 50%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크게 증가했다는 사실은 범한판토스가 해외매출에 역점을 두고 있다는 점을 방증하고 있다. 문제는 이 회사가 해외에서 벌어들인 소득을 신고하지 않거나 고의로 누락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국세청은 올해 들어 대기업의 역외소득 탈루를 막기 위해 ‘현지세정전문요원’ 15명을 순차적으로 현지에 파견하고 있다. 홍콩 등 국제금융 중심지나 중국 상하이같이 한국기업이 많이 진출한 지역이나 해외 한인 밀집지역 등은 국내 대기업 및 기업주들의 역외탈세 경유지 및 목적지로 빈번히 활용되고 있다는 의혹이 끊이질 않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곳에 주재관을 파견함으로써 역외탈세 정보수집 및 적발을 위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강화하겠다는 것이 국세청의 전략이다. 그 결과 국세청은 이미 동국제강 등 몇몇 기업의 역외탈세 혐의를 잡고 은밀히 조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세무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범한판토스의 역외탈루 혐의 또한 국세청의 글로벌 네크워크 정보수집 결과물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번 범한판토스에 대한 특별세무조사 배경에는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과세 방침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지난 3월 말 정부는 국세청에서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2차 공정사회 추진회의에서 ‘공정사회 구현을 위한 조세정의 실천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국세청은 이날 세금 없는 변칙 상속·증여 방지를 위해 대기업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대대적인 과세 방침을 강조한 바 있다.
범한판토스는 2000년까지만 해도 매출액이 800억 원대에 불과했으나 작년에는 1조 4775억 원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급성장했다. 범한판토스가 이렇게 급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LG그룹의 일감 몰아주기가 자리잡고 있었다. 실제로 이 회사의 연 매출액 중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화학 등 LG 계열사들의 해외물류 아웃소싱 물량이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LG그룹의 일감 몰아주기가 없었다면 범한판토스가 이만큼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대기업으로부터 일감을 받아서 매출이 증가하면 그 수익은 대부분 최대주주에게 고스란히 흘러들어간다는 사실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실제로 금융감독원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범한판토스는 지난해 매출 기준으로 올해 736억 원의 순이익을 달성했다. 배당 성향은 34%로 배당 총액은 250억 원에 달했다.
특이한 점은 배당금이 순이익보다 많은 적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2008년에는 2007년 순이익 111억 원보다 많은 150억 원(배당 성향 135.1%)을, 2007년엔 2006년 순이익 184억 원보다 많은 185억 원(배당 성향 100.6%)을 배당했다. 작년에는 배당 성향이 58.9%에 달했다. 결과적으로 구 씨 모자는 회사실적과 무관하게 매년 많은 배당을 챙긴 셈이다. 2006년부터 5년간 이들 모자가 확보한 배당은 1000억 원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때문에 재계 일각에서는 국내 거래과정에서 탈세 및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고 있는 범한판토스의 불법 과정에 구 씨 일가를 비롯한 LG 방계가 연루된 것이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일감 몰아주기’로 범한판토스에 들어간 거액의 돈이 결국 고스란히 구 씨 일가의 주머니로 유입됐다는 사실은 이러한 추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국세청의 칼날이 범한판토스에 대한 단일 조사 차원을 넘어 LG그룹 전체로 확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다.
이와 관련 세정당국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번 세무조사는 LG그룹 계열사와의 거래내역 과정에서 범한판토스의 탈세 및 비자금 조성 의혹이 포착됐기 때문”이라며 범한판토스에 대한 특별세무조사를 시인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LG그룹에 대한 확대 조사 방안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기자는 특별세무조사건과 관련해 범한판토스 측에 사실관계를 문의했지만 ‘사실무근’이라는 입장만 반복하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이훈철 인턴기자 boaz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