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더 독>의 한 장면. |
지난 4월 4일 <조선일보>는 정부당국자의 말을 빌려 북한의 장관급 인사 세 명이 지난해 연이어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지난해 3~4월께 화폐개혁 실패를 책임지고 처형된 것으로 알려진 박남기 전 노동당 계획재정부장과 함께 문일봉 전 재정상과 김용삼 전 철도상이 지난해 6월쯤 처형됐다는 설명이었다. 이와 함께 신문은 군수공업부와 제2 경제위원회(군수경제 담당) 산하 간부 20명 역시 지난해 말 횡령 등의 혐의로 숙청됐다고 덧붙였다.
문일봉 전 재정상의 경우, 앞서 박남기 부장과 함께 화폐개혁 실패를 구실삼아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다. 비슷한 시기에 처형당한 것으로 알려진 김용삼 전 철도상은 2004년 김정일 특별열차를 노린 것으로 추측되는 평북 용천역 폭발사고의 책임을 진 것으로 전해진다. 사실 김용삼 전 철도상의 경우 지난해 7월 대북방송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의해 처형설이 최초로 제기된 바 있었다.
이에 대한 해석 역시 전문가에 따라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김정은 3대 후계세습 구축 및 안정화를 위한 숙청작업이 시작된 것이라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4월 6일 기자와 만난 북한 호위사령부 출신 탈북자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이윤걸 대표는 “우리의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조선일보가 주장한 것처럼 실제 간부 3인이 처형된 것은 아닌 것 같다. 다만 정치적으로 숙청이 된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숙청작업은 역시 김정은 3대 세습 구축과 연관성이 높다. 분명 김정일이 직접 나섰을 것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숙청되었다고 전해지는 3명의 죄목은 덮어씌운 명목에 불과하다. 북한에서 주머니 털어 건수 안 나올 간부는 없다. 박남기의 경우 화폐개혁 실패가 죄목이었지만, 화폐개혁 상당부분이 김정일-김정은 부자에 의해 계획되었기 때문에 이는 명목에 불과하다.
또 철도상 김용삼의 죄목인 용천역 폭발사고는 숙청되기 한참 전인 2004년의 일이다. 시기적으로도 너무 동떨어져 있고, 실제 김정일 전용열차 운행은 철도상과는 무관하게 호위사령부에서 비밀리에 기획되기 때문에 실질적인 죄목이라 보기 어렵다. 재정상 문일봉도 마찬가지다. 겉으로 보이는 죄목보다는 김정은 시대를 맞아 구세력 축출을 위한 작업이라고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김정은 후계체제 구축과 안정화를 위한 필연적인 인사 조치라는 것이다.
군수공업부와 제2 경제위원회 간부 20여 명의 숙청에 대해서도 이 대표는 “숙청이라 하면 다소 과장된 표현일 수도 있지만, 역시 인사 조치의 일환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북한 내부에서 인사이동이 잦다. 4월 7일 최고인민회의 이후 이러한 인사이동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다. 아무래도 이러한 숙청작업이나 인사 조치는 김정은에 다 맞춰질 것이다. 그의 사람으로 채워지고 맞춰질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최근 핵심간부들의 처형설과 주요기관 간부들의 숙청설을 김정은의 3대 세습 구축과 연결 짓기는 다소 무리가 있다는 의견도 없지 않다.
기자와 만난 대북매체 <데일리NK> 박인호 대표는 “최근 전해진 간부들의 처형소식은 신빙성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를 3대 세습과 연관 짓는 것은 다소 무리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처형설이 제기된 간부 3인의 죄목이 사실이라면 이는 중죄에 속한다. 충분히 다른 이유를 불문하고 처형될 수 있는 죄목이다. 박남기와 문일봉의 죄목인 화폐개혁 실패는 북한사회에 유례 없는 혼란을 가져왔다. 시기적으로 다소 의문이 들긴 하지만 철도책임자로서 김용삼의 죄목도 가볍지는 않은 것이다. 또 김정은이 현시점에서 무리수를 띄워가며 아버지가 세팅해 놓은 기반을 일부러 흔들 리도 없다. 김정은이 조선시대 세조처럼 아버지를 거역해 왕좌에 오르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앞으로 인사교체 가능성은 있을 수 있지만 그 경우에도 대대적인 숙청 수준은 아닐 것이다”고 지적했다.
아직까지 처형설이 제기된 박남기 등 간부 3인이 김정은의 후계세습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는 명확한 증거는 전해지지 않았다. 다만 북한사회가 현재 3대 세습에 따른 변화의 과정에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보통 정권 시스템 변화의 가장 큰 형태는 인사 변화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북한이 김정은 세습체제 구축에 맞춰 대규모 숙청작업을 단행할지는 앞으로 좀 더 지켜볼 대목이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유럽서 기업 사냥 ‘김정일 돈줄’ 소문
지난해 3월 국내 언론에 의해 처음 보도된 이래 박남기 전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의 처형설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당시 국내 언론은 박 전 부장이 평양 순안구역에 위치한 서산사격장에서 총살을 당했다는 자세한 설명과 함께 이를 알린 바 있다.
하지만 최근 박 전 부장의 생존설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현재 북한 고위급 인맥들과 접선하고 있는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이윤걸 대표는 “박남기는 분명 생존해 있다. 국내에 처형설이 나돌았지만 이는 분명 위장처형일 것이다. 직위에서 숙청된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보위부 쪽에서 건너온 정보기 때문에 틀리지 않을 것이다”고 주장했다.
센터는 앞서 지난 2월 박 전 부장의 생존설과 관련한 보도를 낸 바 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박 전 부장은 직에서 책임을 지고 물러난 뒤 유럽에서 김정일의 자금을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대표는 “소식통에 따르면 현재 박남기는 금융위기에 처해 있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오가며 기업사냥꾼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한다. 김정일은 개인 자금을 가지고 해외에서 돈벌이를 하는 경우가 꽤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