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에서 분리독립한 현대차그룹과 LG그룹에서 분리독립한 GS그룹 계열의 새로운 광고대행사가 등장하거나 등장할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9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삼성그룹에는 제일기획, 현대그룹에는 금강기획, LG그룹에는 LG애드, 롯데그룹의 대홍기획, 두산그룹의 오리콤, 해태그룹의 코래드 등 규모가 큰 국내 재벌그룹들은 계열사로 광고대행사를 하나 정도는 갖고 있었다. 그룹 계열사 물량만으로도 이익을 남길 정도가 됐기 때문이다. 때문에 모그룹 사세에 따라 광고업계 매출 순위가 결정되는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계기로 외국계 광고사들이 국내 광고사들을 대거 인수하며 외국계가 대세를 이루게됐다. 다섯손가락 안에 들던 코래드도 외국계에 팔리고 영국계 광고회사인 WPP그룹이 금강기획과 LG애드를 쇼핑해 제일기획 정도를 남기고 대형사들이 거의 외국계로 탈바꿈했다. 특히 WPP그룹은 에이블리, JWT 어드벤처, 한국오길비앤머더, 덴츠영루비컴 등에 지분투자하거나 인수해 국내에만 6개의 광고회사를 거느리는 광고그룹을 국내에 일구었다.
SK그룹의 경우 TBWA코리아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배주주가 외국계인 TBWA코리아는 SK그룹의 지분이 확인되고 있지는 않지만, 사실상 TBWA가 SK텔레콤 등 SK의 물량을 싹쓸이하면서 단기간 내에 국내 광고업계 5위권으로 떠올랐다.
광고회사에서는 거대광고주 영입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에 재벌계열의 광고회사가 경쟁에서 유리한 것이다.
때문에 현대차그룹이 현대그룹에서 분리해 나갈 때, GS그룹이 LG에서 분리해 나갈 때, 광고업계의 관심은 두 그룹의 광고물량을 독점하던 금강기획이나 LG애드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여부에 관심이 쏠렸고 주식시장에서도 ‘그렇다, 아니다’라는 전망이 나올 때마다 주가가 춤을 추었다.
금강기획은 현대그룹이 외국계로 경영권을 넘길 때 5년간 그룹 물량을 유지한다는 이면계약 사항에 따라 지난 2004년까지 금강기획이 사실상 모든 물량을 도맡았었다. 하지만 그 옵션이 이미 풀린 것. 또 LG그룹이 WPP에 LG애드의 경영권을 넘길 때도 유사한 조항이 있었을 것이라는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때문에 현대차그룹이 옵션이 풀리면 광고대행사를 세울 것이라는 예측이 심심찮게 나돌았었다. 실제로 지난 2001년 SBS와 현대차그룹이 합작으로 광고회사를 세울 것이라는 얘기가 구체적으로 나돌기도 했지만 막판에 불발됐다.
하지만 이번엔 오너 일가와 계열사들이 주요주주로 참가하는 단독 계열사를 세울 것으로 알려져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그간 현대그룹에서 계열분리된 이후 사세확장에 의욕을 보이고 있는 데다,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사장 등 오너들의 현금 비축액이 상당하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실현가능성이 높다. 현대차그룹의 주력인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지난해 광고선전비로 각각 1천2백20억원과 9백11억원을 썼다. 또 현대차의 지주회사격인 현대모비스나 정의선 사장이 대주주인 건설회사 엠코 등은 광고비를 많이 쓸 수 밖에 없는 회사들이다.
삼성 계열인 제일기획은 지난해 매출액 5천1백30억원에 당기순이익 4백27억원을 올렸다. 삼성이 현대차그룹보다 사세가 긴 하지만 삼성 계열사의 물량을 하쿠호도제일이나 휘닉스커뮤니케이션즈와 나눠갖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현대차 오너들이 이런 정도의 이익을 내는 광고대행사 설립을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GS그룹의 움직임도 새로운 대형광고사 출현을 예고하고 있다. GS그룹의 허창수 회장이 오너이고, LG와 분리 독립하면서 계열사에 광고대행사가 없다.
하지만 GS는 LG그룹보다 더 소비재 위주로 짜여져 있기에 다른 어느그룹보다도 광고 선전비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룹의 기둥격인 GS칼텍스정유는 물론이고, GS건설, GS리테일, GS홈쇼핑 등 주요 계열사가 모두 소비재를 다루는 회사들이다.
LG애드에서 지난해 취급고가 7천억원대라면 이중 GS 관련 물량이 1천억원대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GS그룹이 분리독립하자마자 7위로 올라섰는데, 광고회사를 세워도 10위권 안에 들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실제로 GS그룹 계열사들은 분리독립 이전인 지난해 초부터 광고 제작은 실버불렛이라는 대행사가, 집행은 LG애드가 맡는 이원화된 체제로 움직이고 있다. 공식 분리 이전부터 허씨 계열사들이 실버불렛에 대한 ‘애정표현’을 했던 것이다. 독립 뒤 새로 만들어진 GS그룹의 로고나 기업슬로건 등의 CI에 대한 광고나 GS칼텍스의 광고 등도 모두 실버불렛에서 작업하고 있다.
실버불렛은 허창수 회장의 삼촌인 허승표 회장이 대표로 있는 미디아트의 관계사로 LG애드 출신 광고인들이 주축이다. GS계열의 신문 방송 등 4대 매체 광고물은 실버불렛에서, 옥외매체나 프로모션은 미디아트의 또다른 관계사인 모투스에스피에서 제작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실버불렛에서 조만간 광고 대행업무도 시작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큰 돈은 광고제작보다, 광고 대행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국내 광고시장에서 외국계 광고회사들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재벌 계열사를 인수하면서 손쉽게 시장을 장악했다. 하지만 분가한 국내 재벌들이 광고계열사를 새롭게 차리면서 이들이 다시 상위권 판도를 바꿔놓을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