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행동? “개체별 특징, 유기 여부와 무관” 질병 보유? “펫숍견과 큰 차이 없어” 노견뿐? “1세 미만 수두룩”
#"너무 밝아 유기견인 줄 몰랐다"
A 씨는 지난해 7월 사천유기동물보호소에서 14세 유기견 옥희를 입양했다. 처음엔 낯을 가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누구에게나 꼬리를 흔들고 다가서는 강아지가 됐다. A 씨 “옥희가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잘 안기고 애교를 부리니까 종종 ‘이렇게 순하고 밝은 강아지는 어디서 입양했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보호소에서 데려왔다’는 말에 ‘너무 밝아서 유기견인 줄 몰랐다’는 답이 돌아오면 유기견은 다 우울해야 하나 싶어서 조금 씁쓸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대전유기동물보호소에서 ‘초코’를 입양한 B 씨(33)는 유기견 입양 후 주변에서 “대단하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다고 했다. “네가 불쌍한 개 한 마리의 목숨을 살렸다”는 말도 들었다. 그런데 B 씨는 이 칭찬이 달갑지 않다.
“사실 ‘대단하다’는 말이 칭찬으로 안 들렸어요. 초코가 결함이 있는 강아지라는 뜻으로 느껴졌거든요. 반려견 키우는 집은 굉장히 많은데 왜 유독 유기견 입양자인 제게만 ‘대단하다’고 할까…. 사실 그 앞에는 ‘키우기 힘들 텐데’라는 말이 숨어 있는 것 아닌가요?”
반려동물 보유 인구가 1500만 명을 넘어섰지만 유기동물들은 여전히 사회적 편견의 대상이다. 전 주인에게 버림받은 상처와 트라우마로 문제 행동이 있거나, 건강하지 못 할 것이라는 치우쳐진 인식이 대다수다. 일각에서는 “보호소 동물들은 연령대가 높다”며 유기동물 입양을 아예 선택지에서 미뤄두기도 한다. 모두 사실일까.
유기견을 입양해 키우고 있는 보호자 다수는 세간의 인식에 대해 단호히 “아니”라고 말했다. 유기견이라서 겪은 특별한 어려움도 없다고 했다. A 씨는 “펫숍견과 유기견 모두 키워봤다. 펫숍 출신이라서 배변훈련을 더 빨리 해냈다거나 더 건강하지 않았다. 모두 똑같은 강아지였다. 특히 옥희의 경우 이미 사람과 함께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사회화가 되어 있었고 오히려 배변훈련을 따로 시키지 않아도 됐었다”며 “반려동물의 문제 행동으로 어려움을 겪는다면 그건 키우는 동물이 유기동물이라서가 아니라 반려동물을 키우는 모든 보호자가 겪는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B 씨는 유기견은 과거의 상처 때문에 새로운 주인에게 적응하기 힘든 존재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초코는 이틀 만에 새로운 집에 적응했다. 반면 초코의 동생은 일주일의 시간이 필요했다. 사람마다 타인과 친해지는 데 필요한 시간이 제각각이듯 동물도 각자의 성격이 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속도는 유기 여부와는 무관한 개체 각각의 특징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유기동물의 경우 입양절차가 까다롭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책임감을 강조했다. B 씨는 “통상적으로 이름과 나이, 주소, 직업, 거주환경 등을 써서 낸다. 이 동물의 남은 평생을 책임져야 하는데 이 정도가 까다롭다고 생각한다면 아직 반려동물을 키울 준비가 덜 된 보호자라고 생각한다. 생명은 단기간에 충동적으로 데려올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생후 15일 된 새끼부터 14세까지
한편, 농림축산식품부가 만 20~64세 전국 성인 남녀 5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2020년 4월 발표한 ‘2020년 동물보호에 대한 국민의식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반려동물 입양 경로 순위는 ‘지인에게 무료로 분양받음’ 항목이 4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펫숍에서 구입함’ 항목은 2019년보다 다소 감소했으나 여전히 2위를 차지했다. 뒤이어 ‘지인에게 유료 분양’과 ‘개인 브리더 분양’이 3, 4위를 차지했고 ‘지자체동물보호소에서 입양함’은 5위로 거의 마지막 순위에 머무른 것으로 나타났다.
유기동물 보호소에서의 입양비율이 낮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유기견 입양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이다. 실제로 설문조사의 전체 응답자 가운데 55.1%는 ‘유기 동물 입양 시 가장 걱정되는 점’으로 ‘질병, 행동 문제 등이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특히 ‘질병, 행동 문제 등이 있을 것 같다’는 응답은 2019년 응답비율인 43.1%보다 12.0%포인트(p)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뒤로는 ‘입양 방법이나 절차 등을 잘 모른다’가 17.3%,‘어린 동물을 키우고 싶은데, 유기 동물은 보통 성견이나 연령이 높은 경우가 많다’가 13.8%를 차지했다.
그러나 유기동물 보호소에도 건강하고 어린 동물들이 많다. 11월 10일 기준, 전국 보호소에서 입양을 기다리는 한 살 미만의 유기견‧묘는 무려 7024마리(개 4766, 고양이 2258)다. 태어난 지 2주일을 갓 넘겨 눈도 제대로 뜨지 못 한 믹스견부터 아직 유치를 달고 있는 8개월의 토이푸들까지 그 연령과 품종도 다양하다. 대부분 모견이 구조되면서 함께 보호소로 옮겨진 경우로 간혹 임신 중인 모견이 구조된 뒤 보호소에서 출산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태어난 새끼들도 마찬가지로 기간 내에 입양이 되어야 한다.
평생을 함께해야 할 존재이기에 건강이나 질병 이력을 따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유기동물 보호소에 있는 동물들은 건강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역시 하나의 편견에 불과하다. 경북의 한 유기동물보호소 전 직원은 “오랜 거리 생활로 심장 사상충에 감염된 아이들도 있지만 보호소 동물들이 앓는 질병 가운데 가장 많았던 것은 영양 결핍과 피부병이다. 탈수는 충분한 영양 섭취로 빠른 회복이 가능하고 피부병은 유기견이 아닌 가정분양견이나 펫숍견도 흔히 가지고 있는 질병이다. 특별히 유기견만 앓는 병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유기동물 입양 활성화를 위해 유기동물 보호소의 환경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광주광역시보건환경연구원이 시보호소 입양 대상 유기견의 호흡기 질병 실태를 조사한 결과, 보호소의 시설과 환경 차이에 따른 동물의 스트레스가 바이러스 감염 유발 및 전파를 촉진시켰다. 또한 환경 차이에 따른 호흡기 바이러스 검출률에 변화가 있는지 조사한 브라질의 보고에 따르면 유기견 보호소의 불량한 영양과 위생상태 및 빈약한 시설의 보호소에서 바이러스 검출률은 78%인 반면, 군집 밀도가 낮고 위생 상태가 좋은 보호소에서의 바이러스 검출률은 9~14%로 조사됐다.
이에 대해 연구팀은 “보호소는 시민에게 유기견 분양 시 동물의 질병상태를 반드시 제공하고, 건강한 동물이 시민에게 분양될 수 있는 효율적인 질병관리체계가 도입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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