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순국 메이저리그 사진전문기자 |
다른 날도 그렇지만 이렇게 개막 때부터 게임이 안 풀리면 배가 고파도 배고픈 줄을 모릅니다. 오늘 경기에선 삼진을 5개도 먹을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첫 타석에서 포볼로 나간 것도 충분히 삼진될 수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경기를 마치고 ‘이게 뭔가’ 싶기도 하고, 기분이 완전 엉망이라 선수들 얼굴 보기가 민망할 정도였어요.
사실 시범경기 때까지만 해도 컨디션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너무 좋아서 걱정이 될 정도였죠. 그러다 애리조나를 떠나 오랫만에 클리블랜드로 돌아왔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드는 거예요. 우선 캠프 때는 그리 잘 보이던 공이 막상 개막을 하고 나니까 잘 안보이더라고요. 타격 밸런스가 무너지고 잘해야 한다는 의욕이 앞선 바람에 몸에 너무 힘이 들어간 것 같기도 하고요. 제일 미치는 게 이런 걸 다 잘 알면서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팀도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이런저런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습니다. 나이 어린 선수들이 많은 팀은 한 번 좋을 때 확 올라가거나 안 좋을 때는 한없이 무너지는 경향이 있거든요. 앞으로 경기가 많이 남아 있으니까 내일 경기 때는 선수들을 모아 놓고 잠깐이라도 얘길 해볼 생각이에요. 가라앉은 분위기를 추스르고 다시 시작해보자고 격려도 하고 파이팅도 외쳐보려고요.
사실 개막전이 열리기 전, 개인적으로 엄청난 선물을 받았습니다. 지난 번 일기에 아내 뱃속에 있는 태아의 성별이 곧 밝혀진다고 말했었잖아요. 애리조나를 떠나기 전 아내와 함께 병원에 갔다가 셋째가 드디어, 마침내, 급기야…(또 다른 적당한 표현이 없을까요?) 공주님이란 사실을 담당 의사로부터 전해 듣게 됐습니다. 아내는 의사의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을 흘렸고, 전 마치 만루홈런으로 팀을 역전승시킨 주인공인 양 두 팔을 벌려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정말 감개무량이었어요. 그토록 딸을 소원했는데 마침내 그 소원이 이뤄진 거잖아요. 자랑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려 혼났습니다. 선수들도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진심으로 축하를 해주더라고요. 마치 결혼해서 처음 아기를 가진 것처럼 말이죠.
큰아들 무빈이는 처음에 엄마 뱃속에 베이비가 있는 게 너무 싫다고 하다가 그 아기가 여동생이라는 걸 알고 나서부턴 행동이 180도 달라졌습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남동생 건우로 인해 내심 많이 부대꼈던 무빈이가 여동생이 생긴다는 사실에 절로 기분이 좋아진 거죠.
이제 아내는 든든한 ‘편’을 갖게 됐어요. 두 아들 녀석이 엄마 편이 아닌 건 아니지만, 아내와 같은 성의 딸이 생김으로써 앞으로 제가 해주지 못하는 다른 부분에서 딸과 유대감을 갖는 일이 많아질 것 같아요.
오늘 집으로 돌아오면서 신은 항상 모든 걸 다 주지 않고 행복과 불행, 두 가지를 공유할 수 있게끔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딸이 생긴다는 사실에 며칠 동안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행복하게 지냈던 생활이 개막 후 ‘불’이 아닌 ‘물’ 방망이가 된 듯한 기분에 우울 모드로 바뀌었으니까요. 일주일 후엔 또 다른 반전이 기다리고 있겠죠? 분명히 그럴 거라고 기대하면서 오늘 하루를 마감합니다.
클리블랜드에서 추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