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두환 전 대통령이 프로야구 원년 개막경기에서 시구를 하고 있다. |
잘 알려진 것처럼 프로야구는 제5공화국 시절 탄생했다. 지금도 많은 이가 전 대통령의 지시로 프로야구가 출범한 지 안다. 일부 야구역사가는 전 대통령이 국민의 눈과 귀를 정치가 아닌 다른 곳에 돌리려고 프로야구를 기획하고, 탄생시켰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업적으로 프로야구 출범을 꼽아왔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프로야구의 기획자가 전 대통령이 아니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근래까지 야구계에선 대한야구협회 운영부장 출신의 이호헌 씨가 프로야구 창설을 계획하던 차에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청와대 관계자와 선이 닿아 프로야구 출범이 본격화됐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이호헌 씨가 청와대 관계자와 만나 프로야구 출범을 주도적으로 이끈 것이 아니다”라며 “프로야구 창설을 기획·주도한 실체는 따로 있다”고 말했다.
실체는 MBC였다. 1981년 5월 MBC는 창사 20주년 기념으로 독립기념관 건립과 프로야구단 창단을 구상했다. 외부적으론 독립기념관 건립에 집중하는 듯했지만, 실제론 프로야구단 창단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이호헌 씨는 “경쟁심과 상품성 때문이었다”고 분석했다. “당시 MBC 이진희 사장과 KBS 이원홍 사장은 소문난 라이벌이었다.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얻어내려고 치열한 충성 경쟁을 벌였다.” 그러니까 이진희 사장이 프로야구단을 이용해 정권의 관심을 불러 모으려 했다는 것이다.
MBC에서 프로야구단 창단 작업을 담당했던 위호인 씨는 “KBS와 시청률 싸움을 벌이는 MBC로서는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을 새로운 콘텐츠가 절실했다”며 “조사결과 프로야구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MBC 이진희 사장은 프로야구단의 운영원리와 상품성을 파악할 요량으로 일본과 미국에서 대량의 야구관련 서적을 반입했다. 이 사장은 직접 책을 완독하며 야구에 대한 이해를 넓혔다.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은 이 사장은 사내 인재를 뽑아 ‘프로야구 창단 준비단’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이 사장은 프로축구 할렐루야처럼 우수 선수만을 모아 1개의 프로팀을 구성, 프로야구 리그의 단초 역할만을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준비단의 보고서는 그 이상의 내용을 담았다. ‘프로야구 1개 팀만으론 여론의 관심을 끌 수 없으며, 최소 4개 팀 이상이 참여하는 리그 체제를 갖춰야 실효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 사장은 자사 야구 해설을 맡던 이호헌 씨를 호출했다. 평소 ‘야구의 프로화’를 주창했던 이호헌 씨는 이 사장의 “도와 달라”는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때부터 MBC는 프로야구단 창단을 넘어 프로리그 창설에 매달린다.
정부에 협조를 구한 것도 이 사장이었다. 이 사장은 청와대에서 전 대통령을 독대한 자리에서 MBC가 프로스포츠 리그를 추진하고 있음을 알렸다. 전 대통령은 이 사장에게 “필요한 게 있으면 이상주 교육문화수석비서관의 도움을 받으라”고 했다.
전 대통령의 승낙을 받은 준비단은 곧바로 ‘한국프로야구창설계획서’라는 18쪽짜리 보고서를 완성했다. 이 보고서를 들고 다시 청와대에 들어간 이도 이 사장이었다. 이 사장은 전 대통령에게 “프로스포츠 출범이 거의 막바지에 다다랐다”며 보고서를 내밀었다. 전 대통령은 보고서를 읽다가 깜짝 놀라며 “어, 이게 뭐야. 프로야구였어?”하며 이 사장을 바라봤다. 그랬다. 전 대통령은 이 사장이 준비한다던 프로스포츠 리그를 ‘프로축구’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문난 축구광이었던 전 대통령은 내심 프로축구 리그가 출범하길 바랐던 것이다.
이 사장은 “대통령의 표정을 보고 ‘아차’싶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전 대통령은 이 사장에게 “프로야구도 괜찮구먼”하며 “이왕 진행하는 거 끝을 보라”고 격려했다.
MBC는 함께 프로야구리그에 참여할 구단들도 직접 물색했다. 국내 대기업을 찾아다니며 프로야구 참여를 유도한 것도 MBC의 몫이었다. ‘준비단’ 소속이었던 위호인 씨는 삼성, OB, 현대, 금호, 롯데 등을 차례로 돌며 프로야구단 창단을 권유했고, 마침내 삼성, 롯데, OB의 협조를 받아냈다.
MBC의 역할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구장도 물색했다. 애초 이 사장은 경남 남해에 대규모 야구타운을 조성하려 했다. 실무진에 “30만 평의 부지를 사들여 그곳에 만들 수 있을 만큼의 많은 야구장을 지을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30만 평을 3만 평으로 오인한 실무진의 착오로 결국 3만 평만 구입했다. 이 사장이 진노했지만 갑자기 주변 땅값이 상승하며 MBC의 야구타운 조성은 물 건너가고 말았다.
프로야구 기획부터 출범까지 궂은 일을 도맡은 MBC는 KBO가 조직되자 준비단을 해체했다. MBC가 받은 유일한 혜택은 서울 연고지뿐이었다.
이 사장은 프로야구가 출범하고서 문공부 장관으로 영전했다. 이어 서울시장을 역임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2002년 프랑스에서 음주운전자가 몰던 차량에 치여 중태에 빠졌다. 지금은 상태가 호전돼 평범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이호헌 씨는 KBO 초대 사무차장을 역임하고, MBC에서 해설가 생활을 하다가 1990년대 중반부터 야구계를 떠났다. 현재는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다. ‘준비단’의 살림꾼이던 위호인 씨는 자신이 만든 MBC 청룡에서 사장을 지내고서 MBC 애드컴 사장을 역임한 뒤 지금은 개인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