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현 CJ 회장(왼쪽) 집으로 보도된 장충동.110번지 전경(아래 오른쪽 원안과 같은 건물). 이재현 회장측은 이 건물은 이건희 삼성 회장(오른쪽) 소유고 자신은 107번지(아래 왼쪽 원안)에 살고 있다고 밝혔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4월 초 모 신문에서 국내 재벌그룹 총수들이 살고 있는 주택 중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값을 매겼을 때 가장 비싼 집이 이재현 회장의 서울 중구 장충동집이라고 보도했다. 그러자 CJ쪽에서 ‘그 집은 이재현 회장의 집이 아니다’고 적극적으로 해명하며 예민하게 반응하고 나선 것. CJ는 전국에서 가장 비싼 집으로 꼽혔던 장충동 110번지는 이건희 회장의 집이고, 이재현 회장은 그 옆의 한집 건너인 107-1번지에 살고 있다고 밝혔다.
CJ의 적극적인 해명은 그룹 회장의 집이 전국에서 가장 비싼 집이라고 꼽히는데서 오는 부담감에 대한 해명일 수도 있지만 그간 삼성 이건희 회장가와 CJ 이재현 회장가 사이에 잠복해있던 미묘한 관계에 대해 다시 한 번 관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는 장충동 110번지라는 집의 상징적인 의미 때문이기도 하다.
애초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장충동 110번지에 살았다. 그러다 말년에 이태원동 하얏트호텔 아래쪽에 전통 한옥식 가옥인 승지원을 마련해 업무를 겸하는 사적인 공간으로 따로 이용했다.
삼성가의 장손인 이재현 회장은 이 회장이 서울에서 처음으로 터를 잡았던 장충동 110번지에서 이병철 회장의 부인인 박두을 여사와 삼성가의 맏며느리이자 이재현 회장의 어머니인 손복남씨를 모시고 함께 살았다.
문제는 이 집이 누구 소유냐 하는 것이다. 이는 삼성가의 경영권이 장남에서 삼남으로 넘어가면서 조성된 갈등과도 관련이 있다.
삼성가의 장손인 이맹희씨는 한때 삼성가의 촉망받는 차세대 경영인이었다. 하지만 사카린밀수로 비롯된 일련의 사건으로 이병철 회장이 은퇴선언을 하고 물러났다가 다시 롤백하는 과정에서 이병철 회장과 이맹희씨는 불신의 골이 깊어졌다. 맹희씨는 지난 71년 삼성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가족들과도 떨어져서 낭인 생활을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장충동 110번지의 건물 소유권은 71년 3월 삼성문화재단으로 넘어간다. 토지는 이미 65년 5월 삼성문화재단으로 소유권이 바뀐 상태였다. 이병철 회장은 66년 한비사건으로 비롯된 사건을 수습하고자 삼성 경영일선에서 은퇴를 선언하고 한비를 국가에 헌납한다는 발표를 했다. 그 직전에 장충동 자택의 토지 소유권이 삼성문화재단으로 넘어갔다. 이어 71년 이맹희씨가 삼성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삼남인 이건희 회장의 후계구도가 가시화되던 그 해에 건물 소유권마저 삼성문화재단으로 이전된 것이다.
그러다 77년 이건희 회장이 삼성문화재단으로부터 매매 형식으로 이 건물을 사들였다. 그리고 이건희 회장은 79년 장충동 110번지의 토지를 삼성전자가 3백50억원에 근저당 잡히는 것을 허락했다. 이 근저당권은 아직도 살아있다. 즉 이재현 회장쪽에서 할머니를 모시고 그 집에 산다고 해도 그 집의 소유권은 3백50억원에 근저당 잡힌 삼성전자에서 먼저 해결하지 않는 한 장손인 이재현 회장가가 눌러 살 수 없게끔 돼있는 것이다.
삼성가의 2세 경영인 확정 과정의 우여곡절이 건물 소유관계에도 반영돼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때도 이건희 회장은 한남동 740번지에 살고 있었고, 장충동 집은 장손인 이재현 회장이 할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그러다 장충동 집은 또 한번 삼성가의 갈등을 기록하게 된다. 시작은 CJ그룹의 분가 갈등이다.
지난 93년 6월 이재현가와 삼성그룹의 분리작업이 시작됐다. 삼성화재의 대주주였던 이재현가의 삼성화재 주식을 CJ의 주식과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CJ를 중심으로 한 분가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다가 94년 10월 삼성은 이건희 회장의 비서실장이던 이학수 당시 삼성화재 부사장을 CJ 부사장으로 파견했다. 당시 CJ는 이건희 회장의 심복인 이 부사장을 계열분리작업 마무리를 앞둔 CJ에 파견하는 것은 다른 ‘저의’가 있는 것이라고 심한 반발을 했고, 삼성측에선 이재현 회장집을 지켜보는 폐쇄회로 카메라를 설치하는 등 극심한 갈등을 빚었다.
그 와중에 이건희 회장 명의로 되있던 장충동 110번지에 살고 있던 이재현 회장과 건물 소유주인 이건희 회장측 사이에 어떤 얘기가 오고갔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96년 이재현 회장이 할머니인 박두을 여사의 집에서 한집 떨어진 107번지로 이사가 이재현가는 삼성가에 아쉬운 소리를 할 이유가 없어졌다.
재미있는 점은 CJ측이 이재현 회장이 91~96년 연말까지 110번지에 거주했다고 밝힌 것이다.
즉 87년 이병철 회장이 별세한 뒤 박두을 여사는 110번지에서 혼자 살다가 91년부터 이재현 회장이 모시고 살았다는 얘기다. 그러다 삼성과 CJ간의 갈등이 벌어지면서 바로 옆으로 건물을 신축해 이사를 간 것. 그와 거의 동시에 CJ도 삼성 본관에서 95년 4월 남산의 현 사옥으로 이전하고 96년 5월 신축 사옥 로비에 이병철 회장의 흉상제막을 하면서 삼성과 CJ는 공식 분리 선언을 했다.
즉 CJ 입장에서 보면 이건희 회장측과의 ‘분리 독립투쟁’의 아픈 기억이 묻어 있는 곳이 바로 장충동 110번지인 것이다. 그리고 그 집의 소유권에 대해 다시 한 번 적극적인 해명을 할 만큼 CJ에게 장충동 집문제는 예민한 문제라는 게 이번 해명 소동에서 확인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