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정아 씨가 3월 22일 오전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자전에세이 <4001>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r |
가장 눈길을 끄는 내용은 연인이었던 변양균 전 실장과의 연애담이다. 신 씨는 2003년 2월 언론사 기자와의 저녁식사자리에서 변 전 실장과 처음 만났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그해 10월 신 씨는 삼성문화재단의 ‘월간미술대상’ 기획부문에 선정됐는데 변 전 실장이 축하의 의미로 저녁식사를 제의했다. 두 사람은 10월 13일 남산 서울클럽에서 처음으로 단 둘이 만났고, 이후 급속도로 가까워졌다고 한다.
“똥아저씨는 유익종의 ‘사랑의 눈동자’라는 노래를 부르다 말고 무턱대고 키스를 해왔는데 저녁 9시부터 새벽 1시까지 장장 4시간 동안 키스를 나누었다. 그때부터 전화로 이메일로 사랑고백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신 씨는 2003년 11월 초 여행을 가서 첫 관계를 가졌다고 고백했는데 ‘그날 밤 일’에 대해서는 변 전 실장이 법정에 제출한 진술서로 대신했다. 이후 신 씨는 관계를 정리하고자 했으나 매일 저녁 7시부터 자정까지 집 앞으로 찾아와 기다리는 변 전 실장을 보고 “끝이 보일 때까지 가보기로 했다”고 결심했다고 회고했다. ‘부적절한 관계’인 터라 갈등을 겪고 다툰 얘기도 있다. “화엄사 근처 산장에서 하룻밤을 잘 때는 대판 싸웠다. 똥아저씨가 데스크에 있는 남자에게 ‘우리 집사람’ 이름으로 숙박계를 쓸거라며 나를 보고 ‘여보, 이리와서 체크인해요’하는 것이었다. 누가봐도 부부라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뿐더러 내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 언행이었다. 자기 신분 노출되는 것은 꺼리면서 나는 괜찮은가 싶었다.”
하지만 신 씨는 사건이 터진 후에도 변 전 실장과 접촉하며 아슬아슬한 관계를 지속했다. 신 씨는 사건이 터진 후인 2007년 7월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날 밤에도 변 전 실장과 ‘절박한 사랑’을 나눴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절박한 상황에서도 우리가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내내 가슴이 아려왔다. 함께 할 시간은 몇 시간 없었다. 똥아저씨가 안쓰러워서, 그렇게 절박하게 헤어지는 것이 안타까워서, 결국 우리는 눈물이 뒤범벅이 된 채로 서로를 뜨겁게 안았다. 지난 5년간의 우리 사랑이 스틸 사진처럼 머릿속을 지나갔다.”
신 씨는 변 전 실장에 대해 “실망도 컸지만 아껴주고 돌봐준 것에 대해서만큼은 진심으로 감사한다. 똥아저씨가 내내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정운찬 전 총리에 대한 내용이다. 2005년 초여름 ‘갤러리 인’의 양인 사장의 소개로 정 전 총리를 처음 만났다는 신 씨는 그가 사심을 갖고 지분거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정 전 총장이 젊은 큐레이터로 각광받고 있던 자신에게 서울대 교수 임용과 동시에 미술관장을 제안했으며 소개자인 양 사장에게는 자신과 연락을 주고받는 것에 대해 얘기하지 말라고 했다고도 기술했다. 주로 팔레스호텔의 바에서 정 전 총리를 만났다는 신 씨는 “정 총장은 나를 밤늦게 술자리에서 봐야 하는 이유에 대해 ‘나중에 큰 일을 하려면 인맥을 많이 넓혀야 하는데 내가 그 역할을 해주겠다’고 했다”고 구체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정 총장은 처음부터 나를 단순히 일 때문에 만나는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만나려고 일을 핑계로 대는 것 같았다. 나를 만나자는 때는 늘 밤 10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겉으로만 고상할 뿐 도덕관념은 제로였다. 정 총장은 안주 겸 식사를 시켜놓고서 필요한 자문을 하는 동안 처음에는 슬쩍슬쩍 내 어깨를 치거나 팔을 건드렸다. 훤히 오픈되어 있는 바에서 시중드는 사람들이 수시로 오가는 마당에 그 정도를 성희롱이라고 할 수도 없었고 불쾌한 표정을 짓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신 씨는 또 “한국은행 사람들이나 서울대 교수들, 신기남 국회의원까지 동석을 한 적이 있었다. 정 총장은 사람들과 어울리다가 다른 일정이 있다면서 먼저 자리를 떠난 뒤 곧장 밖에서 다시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고 폭로했다. 특히 신 씨는 자신이 서울대 교수직과 미술관장 제의를 거절한 이후 정 전 총리가 노골적으로 사심을 드러냈다고 적었다.
“내가 서울대 자리를 거절하고 정형민 교수가 관장으로 내정된 다음부터는 나를 불러낼 명분이 없어졌다. 그 때문인지 다음 번에 팔레스호텔에서 만났을 때는 아예 대놓고 내가 좋다고 했다. 앞으로 자주 만나고 싶다고 했고 심지어 사랑하고 싶은 여자라는 얘기까지 했다. 그날 정 총장은 차마 표현하기 어려운 돌발행동을 보여줬는데 서빙하는 아가씨들의 눈치를 봐가며 한 행동이었으니 술에 취해 실수하는 것이라 볼 수도 없었다.”
신 씨는 이후에도 정 전 총리가 지인들을 동원해 끈질기게 자신과의 인연을 이어가려 했다며 “내가 출세하려고 마음먹었다면 정 총장만큼은 충분히 활용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신 씨는 1999년 당시 <조선일보> 기자였던 C 의원의 노골적인 성추행 행각도 까발렸다. 신 씨는 도윤희 선생의 전시를 계기로 당시 C 기자를 비롯한 미술계 인사들과 자리를 하게 됐다고 한다. 사건이 발생한 곳은 하얏트호텔 헬리콘 바였다. “함께 일어나 노래를 부르다보니 몸이 부딪히는 일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C 기자는 내게 아주 글래머라는 소리를 했다. C 기자는 춤을 추는 게 아니라 아예 더듬기로 한 모양이었다. 허리를 잡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지만 손이 다른 곳으로 오자 나는 도저히 구역질을 참을 수 없어서 화장실로 피해버렸다.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C 기자는 나를 껴안으려 했다. C 기자는 택시가 출발하자마자 달려들어 나를 껴안으면서 운전기사가 있건 없건 윗옷 단추를 풀려고 난리를 피웠다. C 기자는 왜 그렇게 답답하게 단추를 꼭꼭 잠그고 있냐고 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에 대해서도 밝혔다. 자신의 외할머니로부터 ‘눈여겨봐 달라’는 얘기를 들은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을 만나자고 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내게 ‘어린 친구가 묘하게 사람을 끄는 데가 있다’고 하시면서 더 큰 일을 하기 위해 한번 세상에 나서보지 않겠냐고 물어오셨다. 신정아가 세상을 흔들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인지 한 번 지켜보겠다고 하셨다. 대통령을 뵌 후부터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나 기자회견을 하실 때마다 가끔씩은 내게 크고 작은 코멘트를 들으려고 하셨다. 몇 번 나의 코멘트를 들어본 대통령은 홍보나 대변인 같은 일을 해도 잘하겠다고 하셨다. 또 한번은 연락이 와서는 <웨스트 윙>이라는 미국 드라마를 구해보라고 하셨다. 대통령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렇게나마 알아두라고 권하신 것 같았다. 대통령이 그렇게 이모저모로 내게 관심을 쏟은 것은 사실이지만 직접 도움을 준 것은 없었다. 내가 미술계 밖의 일에는 도무지 관심을 보이지 않자 심지어 대통령은 측근인 아무개 의원을 소개해주셨다. 소개받은 분을 만나고 나서 대통령께 내가 느낀 인물평을 말씀드리자 대통령은 ‘역시 신정아’라고 하셨다.”
신 씨는 또 “사건이 터진 후 대통령이 나의 귀국을 한사코 말렸다. 이미 추락할 만큼 추락해 바닥까지 온 터에 굳이 귀국해서 더 다칠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그래도 어른인 똥아저씨가 책임을 지는 쪽이 낫다는 것이 대통령 생각이었다”는 얘기도 실었다.
재계 인사들 중에서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고 박성용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과의 인연이 눈길을 끈다.
신 씨는 2000년 9월 무렵 전시를 위해 프랑스 니스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김 전 회장과 처음 만났다고 적었다. 먼저 김 전 회장이 신 씨를 건드리면서 “Are you Japanese?”라고 물어왔고 옆으로 와서 이야기나 나누자고 했다는 것. 신 씨는 김 전 회장이 “부모님이 딸을 반듯하게 잘 키운 것 같다” “나를 만난 얘기를 누구에게도 하지 말라” “우리 며느리도 금호 일가에서 들였다”는 얘기를 했다고 적었다.
“다음날 저녁 일을 마치고 호텔에 들어왔더니 회장님이 전화를 주셨다. 회장님은 묵고 있는 집 주소를 불러주며 저녁이나 먹자고 했다. 회장님은 여행 중인 나를 위해 일식 스키야키로 저녁을 준비하셨다고 했다. 일일이 김치와 반찬을 권해줬는데 돌아가신 아빠와 저녁을 먹을 때처럼 편안했다. 회장님은 내가 가진 매력을 세상을 움직이는 데 활용하라고 했다. 회장님은 내가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똑똑하고 당찬 매력이 숨어있는 아가씨라고 칭찬했다. 와인을 계속 마시다보니 몹시 졸렸고 시간도 많이 늦어서 호텔로 돌아가야 했다. 회장님은 못내 아쉬운 듯 다음날 저녁에는 니스 바로 옆인 모나코에 가서 한 번 더 식사를 하자고 제의하셨다.”
신 씨는 고 박성용 명예회장과의 친밀한 인연도 소개했다.
“금호미술관 근무 당시 박성용 명예회장이 나를 얼마나 아꼈는지는 누구나 알 정도였다. 정식 큐레이터가 되기 전부터 유명인사나 귀빈들과 식사 자리를 가질 때면 항상 나를 동석시켰다. 큐레이터가 무엇을 하는 사람이기에 늘 회장 옆자리에 앉는지 어리둥절 쳐다보는 경우도 많았다.”
이외에도 신 씨는 박 회장이 아들생일에 자신을 불러 소개하며 식사를 했던 일화와 박 회장의 어머니가 자신을 ‘우리 아기’라고 불렀다는 얘기, 박 회장 딸과의 인연, 박 회장의 방배동 자택에 갔다가 부인 마거릿 여사에게 잡혀 몇 시간 수다를 떨었던 기억 등 소소한 얘기도 담았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