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경영포럼’ 정필완씨는 “김우중 회장이 아무 잘못이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며 “잘잘못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내려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른쪽은 김우중 전 대우 회장. | ||
모임을 주최한 이들은 지난 1995년 김우중 회장이 뽑은 운동권 출신 직원들이었다. 앞서 언론에는 “386 운동권 출신들이 김우중 회장의 구명에 나섰다”는 보도가 나와 이 모임에 대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최근 김 회장의 사면설이 나도는 것과 관련해 김 회장이 본격적으로 귀국을 위한 수순을 밟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지 않느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들이 지금에 와서 이런 모임을 결성한 배경은 무엇일까. 또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일까. 지난 4일 이 같은 궁금증을 풀어보기 위해 모임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정필완씨(40)를 만나 얘기를 들어보았다.
―가장 궁금한 것이 이 모임의 배경이다. 어떻게 결성하게 되었는가.
▲1995년 당시 입사한 운동권 출신들은 김 회장에게 일종의 마음의 빚이 있다. 나는 당시 노동상담소에 상근하면서 생계를 위해 신문사 배달지국을 운영하고 있었다. 어느 날 대우그룹 홍보팀에서 일하는 친구가 보자고 해 갔는데 그날 바로 김 회장과 면담을 했다.
당시 나를 비롯한 운동권 출신들에게 대우그룹 내에 원하는 회사와 부서에 입사를 시켜주었는가 하면 증명이 가능한 운동권 경력도 인정해 주었다. 나는 상담소 상근을 한 것이 경력으로 인정받아 6년차 경력사원으로 입사할 수 있었다.
당시 김 회장은 우리들에게 “기업이 30년 이상 되면 보수화돼 고인 물처럼 썩는다. 너희들이 대우 어디든 가서 개혁을 좀 해달라. 운동권 방식으로 싸우면서 문제제기를 해라”며 기업혁신을 맡겼다. 우리의 잠재능력을 인정해주고 또 기회를 줬다. 이 때문에 일종의 마음의 빚을 진 셈이다.
이후 대우 사태로 2000년 대부분이 퇴사를 했지만 계속 비정기적인 모임을 가지며 연락을 주고받았다. 대우 계열사의 워크아웃도 마무리되고 법원 판결도 끝나가고 또 경제인들에 대한 대사면 분위기도 있어 지금의 모임을 결성하게 되었다.
―아직 사회적인 분위기가 김 회장에 대해 좋지 않은데, 내부에서도 의견이 분분하지 않았나.
▲활동을 비난하기보다는 운동권이라는 것이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것에 대한 반발이 더 컸다. 4월29일 <동아일보>에서 첫 보도가 나갔을 때, 대우 출신의 모든 386 운동권들이 김 회장을 구하기 위해 나선 것처럼 보도되어 반발이 좀 있었다. 1백명 중 모임에 동의의 뜻을 밝힌 사람은 30명가량이다. 이후에는 386 운동권 ‘일부’라고 명확하게 보도되었다.
―모임의 실질적 리더는 누구인가.
▲당시 입사한 이들 중에서도 81에서 83학번들이 주축 멤버였다. 이번에도 주로 그 학번대에서 많은 지지를 얻었다. 지금까지는 내가 술자리 등 모이는 자리를 주로 만들었고 구체적 제안도 내가 맡았었다.
우리 중 가장 선배격인 김윤 선배(서울대 서양사학과 81학번, 현 경영발전연구센터 대표)에게 리더를 맡아주십사 하고 추대했다. 김 선배는 보도가 나간 이후 부담을 느껴서인지 지금까지는 언론에 직접 노출되기를 주저하고 있는 편이다.
―운동권이 구명운동을 한다고 해 더 비난을 받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김 회장이 아무 잘못이 없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잘한 점과 못한 점을 가려내 정확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분식회계라는 것은 장부상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마치 대단한 개인적 축재를 한 것처럼 여겨지는 것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 분식회계를 통해 잘되는 회사처럼 꾸며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은 것도 당시엔 일종의 관행이었고, 그 돈을 갚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인데, 당시 ‘IMF’를 맞아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갚지를 못해 문제가 불거진 측면이 크다.
사법절차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법적 처벌을 받은 뒤 사면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운동권이 그런 일도 하냐’라는 비난이 있지만, 운동권 출신이니 더 객관적 판단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김 회장이 주창한 세계경영이 현지에서는 반응이 그다지 호의적이지는 않았다고 한다.
▲인정한다. 대우가 들어가는 곳에는 대우법(法)이 생길 정도였다. 공장을 짓는 조건으로 자동차, 가전 등 대우제품이 세금혜택을 받아 현지에 싼 값에 공급됐다. 현지시장을 싹쓸이한 것이다. 그래서 대우가 간 곳에는 대우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물건만 잔뜩 팔아놓은 상태에서 대우가 쓰러져 공장건립이 물건너갔다. 당연히 대우에 대해 반감을 가질 것이다. 반대로 김 회장을 신화적 인물로 평가하는 곳도 있다.
―김 회장의 아들 김선협씨가 배후에 있다는 소문도 있다.
▲우리 모임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리고 김 회장이 가족들과도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가족들은 김 회장의 구명을 위한 노력을 보이지는 않고 있다.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김 회장은 “가족들에게 회사를 물려주지 않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했다. 이 때문에 가족들과의 갈등이 좀 있었던 것으로 안다. 가족들이 개입한다고 해도 우리가 받아들일 사람이 아니다. 돈을 바라고 하는 일은 더더욱 아니다. 이 모임을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말았으면 한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 활동을 해나갈 계획인가.
▲우선 김 회장이 주창한 세계경영이라는 것에 대한 평가가 진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름도 ‘세계경영포럼’으로 지었다. 세미나를 하거나 저명인사를 초청해 강연회를 할 계획이다. 아직은 아무런 조직적 플랜 없이 얘기만 나누고 있다. 정식모임이 결성되면 개인적으로는 직책을 맡아 제대로 일해 볼 생각이다.
정필완씨는?
정씨는 서울대 철학과 83학번으로 1993년까지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해오다 95년 대우그룹에 입사한 뒤 2000년 퇴사했다. 정씨는 ‘정인주’라는 필명으로 <마침내 하나됨을 위하여>라는 소설로 통일문학상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대우에서는 주로 그룹구조조정본부에서 기업혁신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참여했다. 현재는 인터넷 쇼핑몰 업체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