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역전 시 국민의힘 김종인 역할론 재부상…역전 실패 시 이해찬 양정철 구원등판 가능성
석 달가량 남은 대선의 판을 바꾸는 백미는 양강 주자의 골든크로스다. 앞서가는 자와 뒤쫓는 자의 희비에 따라 킹메이커 재부상을 비롯해 후보 단일화 등이 백팔십도 달라진다. 각 당의 선거 전략도 전면 수정된다. 시점도 중요하다. 수세 후보가 대선 막판 치고 나갈 땐 판을 뒤집을 물리적 시간이 없다. 2012년 대선 때 민주통합당 후보로 나선 문재인 대통령이 그랬다. 핵심은 첫째도 둘째도 ‘타이밍’이다. 빠른 타이밍이 담보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다.
“최소 두세 차례는 있지 않겠나.”
여의도 한 대표적인 전략통의 말이다. 정치권 관계자들 대부분이 이에 동의했다. 내년 3·9 대선까지 90일가량이 남은 만큼, 판세를 흔들 변곡점이 최소 세 차례는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국면에서 컨벤션효과(정치 이벤트 이후 지지도가 상승하는 현상)의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역컨벤션에 걸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지지도가 역전될 경우 대선 정국은 새 국면을 맞는다. 여당 한 관계자는 “다이내믹한 한국 정치판에선 석 달간 어떤 일도 벌어질 수도 있다”며 “선거에선 반나절도 긴 시간”이라고 했다.
여야 인사들이 꼽은 대선 골든크로스의 대표 격은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예선전으로 불린 ‘이명박(MB) 대 박근혜’의 대결이었던 2007년 한나라당 경선이다. 2004년 총선 때 천막당사를 이끌고 구원투수 역할을 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 내내 대세론을 유지했다. 박 전 대통령은 경선 초반, 당심에서 우위를 보이며 대세론을 끌고 갔다.
이들의 판이 뒤바뀐 것은 2006년 10월 9일 단행된 북한 핵실험. 북풍이 강타한 2007년 대선판엔 ‘강한 리더십’을 요구하는 민심이 파고들었다. 박 전 대통령을 따라가던 MB가 골든크로스를 달성한 것도 이쯤이다. 이후 이들의 격차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최종 결과는 MB(49.6%)의 1.5%포인트(p) 차 승리. 박 전 대통령(48.1%)과의 득표 차는 2452표에 불과했다.
야권 한 관계자는 “2007년 한나라당 경선이 주는 의미는 골든크로스의 타이밍”이라고 했다. 하루라도 빨리 골든크로스를 이뤄야만, 판세를 뒤엎을 수 있다는 의미다. 2012년 대선 땐 후발 주자였던 문 대통령이 뒤늦게 골든크로스를 했지만, 박근혜 대세론을 꺾지는 못했다.
당시 여론조사 공표 데드라인인 2012년 12월 12일 한국일보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14일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문재인 45.3% vs 박근혜 44.9%’였다. 오차범위(95% 신뢰수준에 ±3.1%p, 이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내에 불과, 진정한 의미의 골든크로스는 아니었다. 하지만 추세선만큼은 문 대통령이 치고 올라가는 국면이었다. 대선 최종 득표율은 ‘박근혜 51.6% vs 문재인 48.0%’였다. 문 대통령으로선 시간이 아쉬웠던 순간이었다. ‘이재명 vs 윤석열 골든크로스 시점’에 여의도 관계자들의 시선이 쏠린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관전 포인트는 양강 주자의 골든크로스 여부 및 시점이다. 골든크로스 조짐은 시작됐다. 채널A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12월 1일 공개(조사 11월 27∼29일)한 결과에 따르면 이 후보는 35.5%, 윤 후보는 34.6%였다. 오차범위(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 내 초박빙이지만, 양당 대선 경선 이후 지지도 절대수치가 뒤바뀐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자 연말·연초 양강 주자 골든크로스에 베팅하는 이들이 늘었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 컨벤션효과가 잦아든 11월 말 추세를 이어간다면, 오차범위 내 골든크로스는 ‘연말’, 오차범위 밖 골든크로스는 ‘설 전후’ 각각 단행될 것이란 전망이다. 민주당 선대위 공동총괄본부장인 우상호 민주당 의원은 11월 29일 한 라디오에 출연, “지금은 3~4%p 뒤지고 있는 것이 정확하다”며 “(달리 말하면) 6~7%p를 따라잡은 것”이라고 했다. 현재 지표인 지지도는 열세지만, 미래 지표인 추세만큼은 올라가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민주당 인사들은 이 후보가 대선 최대 60일 전∼최소 30일 전, 오차범위 밖 골든크로스를 달성한다면 승기를 잡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완전한 승리를 위한 골든크로스 데드라인이 대선 D-30인 셈이다.
이 경우 골든크로스의 ‘나비효과’는 대선 정국을 뒤흔들 전망이다. 당장 윤석열 대세론이 붕괴된 야권에선 돌고 돌아 ‘김종인 역할론’이 재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한 인사는 “정치는 생물”이라며 “지지도가 떨어지면 (윤 후보가 김 전 위원장을) 삼고초려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우상호 민주당 의원도 “(윤석열) 위기론이 확산되면 다시 ‘김 전 위원장을 모셔보자’는 얘기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애초 '개문발차'를 한 국민의힘 선대위의 마지막 퍼즐은 김종인, 이름 석 자였다. 경제민주화 상징인 김 전 위원장은 국민의힘의 ‘영남·보수 이미지’를 타파할 해결사로 꼽혔다. 첫발은 순조로웠다. 국민의힘에선 11월 21일까지만 해도 ‘차르(김 전 위원장 별칭)가 돌아왔다’를 외치며 자축했다. 그러나 원톱을 요구한 김 전 위원장과 3김(김종인·김병준·김한길) 체제를 원한 윤 후보가 정면충돌하면서 국민의힘 선대위는 틀어졌다.
그사이 국민의힘은 내홍에 휩싸였다. ‘윤핵관(윤 후보 핵심 관계자)’, ‘장순실(장제원+최순실)’ 등의 비선 실세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정치권에선 윤 후보 측 문고리 권력 3인방으로 장제원·권성동·윤한홍 의원을 콕 집었다. 진보 논객인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장 의원을 향해 “차지철 역할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호실장에 빗대 장 의원의 전횡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반대로 이재명 후보가 골든크로스에 실패할 땐 ‘이해찬·양정철 역할론’부터 ‘단일화 카드’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분출할 전망이다. 한 민주당 의원 보좌관은 “꺼낼 수 있는 카드는 다 나올 것”이라고 했다. 이 후보의 승부수 첫 테이프는 ‘킹메이커’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와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 등의 구원등판이다. 이재명 선대위 개편에도 불구하고 컨트롤타워 부재 현상이 깊어질 경우 이해찬·양정철 역할론 부상이 불가피하다.
전망은 엇갈린다. 친문(친문재인)계인 한 의원은 “결국 나오지 않겠느냐”라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민주당 중진 인사는 “컨트롤타워는 복심이 하는 것”이라고 부정적으로 전망했다. 당 내부에선 “되레 상왕 논란만 일으킬 수 있다”, “중도층 표심에 역행할 것” 등의 우려도 끊이지 않는다.
‘안철수 변수’도 있다. 이 후보는 이해찬·양정철 역할론 효과가 미미하거나, 등판 자체가 무산될 땐 ‘후보 단일화 카드’로 국면전환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진보 단일대오 입구가 민주당과 열린민주당의 통합이라면, 출구는 ‘제3지대 원조’인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의 단일화 시나리오가 유력하다. 안 후보의 경우 홀로 단일화 협상에 나서거나 또는 심상정 정의당 후보‧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과 제3지대 단일화한 뒤 민주당과 딜을 하는 방안 모두 가능하다.
윤석열 후보도 대세론이 붕괴될 땐 수세 국면 타개용으로 안철수 카드를 매개로 보수 통합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야권 한 인사는 “안 후보 입지도 양강 주자 지지도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것”이라면서도 “그래도 제3지대 인사 중에선 가장 공간이 넓지 않겠느냐”라고 반문했다.
다만 안 후보 측 관계자는 “대선 국면에서 떠도는 후보 단일화는 설에 불과하다”며 “최근 불거진 이 후보와 연정도 제3지대를 흔들겠다는 민주당 일부 세력의 주장이 아니냐”라고 했다. 민주당 한 당직자도 “지지도 따라잡는 시점에 뜬금포”라며 “현실 가능성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 이 후보 지지도가 상승 추세로 전환하면서 연정 시나리오는 자취를 감춘 모양새다.
지지도는 상승 추세지만, 민주당이 안고 있는 고질적 문제점은 여전하다. 핵심은 역시 컨트롤타워 부재다. 민주당 중진 의원의 보좌관은 “4년 전 대선에선 양정철 전 원장과 임종석 전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었는데, 지금은 이재명 원맨쇼에만 의존하고 있다. 당내 반명(반이재명) 심리가 큰 상황에서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선거전략”이라고 했다.
당 내부에선 이 후보가 이낙연 캠프에 합류했던 친문 성향 의원들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지 않는다는 불만도 나온다. 다른 관계자도 “이 후보 측의 삼고초려가 없다 보니, 의원들도 어정쩡하게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들은 핵심 원인으로 이 후보 측의 ‘폐쇄적 조직 운영’을 들었다. 측근 정치에 대한 의존도가 원팀 균열로 나타나고 있다는 뜻이다. 여권 복수 인사들은 이재명 리더십을 언급하며 “정권 재창출을 해도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다”라고 했다.
윤지상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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