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이은 공직 비리에 대한 특단의 조치로 정부가 고강도 감찰에 나섰다. 사진은 정부 과천청사 전경으로 기사 특정 사실과 관련없음. |
최근 저축은행 사태 등으로 인해 공직기강 확립에 대한 질타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결국 이명박 대통령이 칼을 빼들었다. 이 대통령은 공직기강 강화를 강조하며 사정기관에 공직 비리 감찰 활동과 기강확립 강화를 수차례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지난 4년간 공무원 비리는 눈에 띄게 급증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직자비리 척결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국가의 사정기능 대수술론도 탄력을 받고 있는 형국이다. 이 대통령이 직접 ‘한계론’을 피력할 정도로 위험 수위에 다다른 ‘비리 공화국’의 현주소를 조명해봤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공직사회의 기강 해이가 도를 넘어섰다는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공무원들의 부패는 일상화·일반화된 분위기다. 저축은행 비리에 청와대와 감사원 등 고위 공직자가 다수 연루된 것을 시작으로 각 정부부처의 각종 비리가 봇물처럼 터지고 있는 형국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비리 공화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최근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정권 4년차에 들어선 현재 정권 핵심부가 포함된 총체적 비리가 터져나온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실제로 저축은행 사태와 관련해 은진수 전 감사위원과 권재진 청와대 민정수석, 백용호 청와대 정책실장, 정진석 전 청와대 정무수석, 현 정부 초기 청와대 정무비서관을 지냈던 김해수 한국건설관리공사 사장, 친이계 실세인 공성진 전 의원 등 이 대통령의 최측근들이 줄줄이 비리 의혹에 휩싸인 실정이다. 공정사회를 모토로 내세운 정부로서는 얼굴을 들 수 없을 지경이다.
권력의 정점인 청와대는 물론이고 국가 최고 감찰기관인 감사원과 금융검찰로 불리는 금융감독원도 비리에 일제히 구멍이 뚫렸다. 감시·감독 기능이 연결되고 얽히고설킨 공생적 유착관계를 특징으로 하는 관료사회에서 로비스트와 브로커, 유관기관 공무원들이 유착해 생성해내는 부패스캔들은 나라를 좀먹이는 암세포나 다름없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공무를 집행하는 이들의 비리·부패 행각은 국민들을 참담하게 만들고 있다.
이에 국무총리실 산하 정부합동공직복무점검단과 각 부처 감사실은 7월부터 합동으로 공직사회 전반에 대한 대대적인 감찰을 예고했다.
실제로 최근 4년 동안 뇌물로 징계를 받은 공무원 수가 급증한 것으로 드러났다. 6월 19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금품수수로 파면 또는 해임 등의 징계를 받은 공무원은 총 624명이었다. 금품수수로 징계를 받은 공무원은 2006년 114명, 2007년 130명, 2008년 146명, 2009년 282명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는데 4년 새 무려5.5배나 급증했다.
또 지난해 금품수수로 징계대상이 된 공무원(국가공무원 419명, 지방공무원 205명) 중 파면된 이는 110명이었고 해임 56명, 정직 140명, 감봉 165명, 견책 152명으로 나타났다. 금품수수가 아닌 다른 이유로 징계를 당한 공무원도 급증했는데 지난해 품위손상이나 직무태만, 공금 횡령 등으로 징계를 받은 이들은 5800여 명에 달했다. 2006년에 비해 공금유용은 3배, 공금횡령은 2.3배, 공문서 위·변조는 3.3배, 품위손상은 2.6배가 증가한 수치를 보였다.
우리사회에서 발생한 공직자 비위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기가 막힐 지경이다. 윗물 아랫물 할 것 없이 온통 진흙탕이다. 검찰과 국무총리실 산하 정부합동공직복무점검단이 올해 들어 적발한 공무원의 뇌물수수와 향응접대만해도 수십 건에 달하는데 국가의 녹을 받아먹고 사는 공무원의 행동이라 하기엔 너무 파렴치하고 간이 커도 너무 크다.
국토해양부 직원 17명은 지난 3월 제주도에서 열린 ‘자연친화적 하천관리 연찬회’ 이후 수자원공사, 용역업체 직원들과 어울려 나이트클럽과 룸살롱 등에서 향응을 제공받은 것이 적발돼 경고를 받았다. 국토부의 한 과장은 부통산신탁회사 관리감독 과정에서 편의를 봐주기로 한 대가로 500만 원 상당의 산삼과 현금 32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환경부의 한 국장은 제주도에서 열린 민관합동 워크숍 참석 후 묵었던 호텔에서 이틀을 더 지내고 이 비용을 한국환경공단에 대납토록 했다. 부산지방국세청 조사국 직원은 부산저축은행 세무조사 편의를 봐주고 수천만 원을 받은 혐의로 체포됐다. 또 구제역 관련 감사를 진행한 감사원 감사관들이 피감기관 직원들에게 향응을 제공받은 것이 적발되기도 했다.
경기도 본오~오목천 간 도로 확장·포장공사 현장감독을 맡았던 경기도 건설본부의 6급 공무원은 지위를 이용해 공사현장 소장에게 향응을 요구한 것이 적발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마신 술값을 대신 내게 하는가 하면 갖은 명목으로 현금을 받아 챙겼다. 수도권의 한 지자체 과장급 공무원은 허위로 출장 처리를 하거나 직원 출장비 중 일부를 환수하고 관련업체 등에서 받은 금품으로 공통 경비를 조성, 과 회식비 등으로 사용하다 꼬리가 잡혔다.
농업진흥청 4급 간부는 축산 관련 업체들로부터 생활비 명목으로 돈을 받아왔다. 업체들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100만 원에서 1000만 원까지 간부 부인의 통장으로 입금시켰는데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입금된 금액은 무려 8000만 원에 달했다. 한 국립대 교수는 다른 사람의 사업자 명의를 도용해 허위로 물품계약, 용역을 하는 것처럼 장부를 조작해 상당액의 비자금을 조성, 사용한 의혹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거래소의 상장법인 대상 연찬회도 금품과 향응 등 각종 지저분한 비리로 얼룩진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거래소가 연찬회에 참석한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 감독기구 관계자 6명을 유흥주점 등에서 접대하는 과정에서 특정 회사에게 접대비와 골프비, 항공료, 호텔숙박비 등을 대납케 한 사실이 적발된 것이다.
일선 직원들의 기강해이도 도를 넘었다. 모 국립기관의 경북지역 소재 직원은 타 기관 공무원들과 청사 사무실에서 카드 도박을 하다가 적발됐다. 또 평일 근무시간 중 출장 핑계를 대고 골프를 치다가 걸린 공무원도 있었다. 취업 알선을 미끼로 구직자들의 부모로부터 금품을 받아 가로챈 보훈처 6급 공무원이 덜미를 잡히는가 하면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소 간부와 군 기무사 요원이 ‘출입국 관련 청탁’과 함께 수천만 원대의 금품을 받은 정황도 포착됐다.
6월 21일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표한 공공기관의 법인카드 사용 실태도 충격적이다. 권익위가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8개 공공기관의 클린카드(법인카드) 사용 실태에 대해 조사한 결과, 6개 기관에서 법인카드를 개인 쌈짓돈처럼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 공기업은 8개월간 노래방과 골프장, 유흥주점 등에서 1억 2000만 원 상당을 법인카드로 결제했고 업무 관련 증빙 없이 주말과 공휴일에 사용한 경우도 989건에 달했다.
‘비리 공화국’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 요즘 국민들은 공직부패 문제를 범국가적으로 해결해야 할 때가 왔음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정부차원의 고강도 감찰 활동이 과연 얼마나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각에서는 정권 말 레임덕 현상을 차단하기 위해 ‘공직사회 기강 잡기’라는 고단수 꼼수를 부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또 대대적인 공직사정 칼날에 공직사회 사기가 크게 저하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고강도 감찰의 내막을 두고 구설이 나오자 정부에서는 “현 정부의 각종 치부를 스스로 찾아내 엄단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모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현 정부에 부패가 만연됐다기보다 숨어있는 것을 찾아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기내 공직비리 척결 의지를 밝힌 이 대통령 역시 “사정과 관계없고 사회를 새로운 기준으로 올려놓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표현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청렴도와 도덕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현 정부 입장에서는 비위 공직자에 대한 단죄만이 그나마 남아있는 자존심을 지키고 레임덕을 차단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임이 너무도 자명하기 때문이다.
강도 높은 감찰 소식에 관가는 꽁꽁 얼어붙었다. 공직사회 일각에서는 몸을 사리고 있지만 정작 정부의 속이 편하지만은 않다. 연일 공직자 비리가 터져나올 경우 ‘공정사회’를 부르짖었던 현 정부의 ‘검은 자화상’이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대적인 사정작업에 착수하겠다고 공표한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의 남모를 고민이 깊어가고 있는 이유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