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아현동 SK허브 건설현장의 타워크레인에 올라가 농성을 벌이고 있는 노조원들. | ||
이 와중에 SK(주)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울산 플랜트 설비의 80% 이상을 SK(주)가 차지할 정도라 SK(주)가 타깃이 되고 있는 것. 울산건설플랜트 노조원들은 SK(주)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요구하지만 정작 SK(주)는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노조원들은 울산지역의 건설플랜트 수주업체가 대부분 SK(주)로부터 하청받고 있기 때문에 하청업체 개별협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SK(주)가 나서지 않고서는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 와중에 울산에서는 SK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번지고, 서울 서린동 SK(주) 본사에서도 건설 일용직 노조원들의 시위가 이어지고, 본사 유리창이 깨지고, SK건설이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아현동의 주상복합건물 현장 타워크레인도 노조의 점거농성이 이어지고 있다.
SK쪽에선 울산지역건설플랜트 노조의 파업이 엉뚱하게 자신들에게 옮겨 붙고 있다며 불만을 표하고 있다.
이런 일련의 상황이 SK(주)의 경영성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국민적 여론이 등을 돌릴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SK가 선뜻 나서지 못하는 까닭은 섣불리 나섰다가는 문제가 더욱 악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SK는 최근 휴대폰 단말기를 제조하는 SK텔레텍을 팬택에 매각한 데서 보듯이 정부와 긴장관계를 빚을 만한 사업은 손도 안대고 있다. 최태원 회장이 향후 그룹 경영권을 유지하는 데 최대 고비가 될 2심 선고공판일(6월10일)을 앞두고 있는 등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SK가 이 농성에 대해 마냥 모른 체할 수도 없다. 이미 서울지역 SK건설 현장에까지 이들에 동조하는 점거농성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위를 벌이고 있는 울산지역 노조원들은 플랜트 설비의 건설과 보수를 담당하고 있는 건설 일용직 노동자들이다. 이들의 요구사항은 크게 네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근로기준법 준수. 여기에는 하루 8시간 노동, 유급휴일 인정 등이 포함된다. 둘째, 안전장비 지급과 안전시설 마련, 안전교육 실시. 셋째, 식당 휴게실 화장실을 지어줄 것. 넷째, 노조원들에 대한 구속·수배 해제다.
그렇다면 지금에 와서 이 문제가 불거진 이유는 무엇일까. 일용직 노동자들은 지난해 1월 플랜트노조를 결성한 후 울산지역 기업들과 협상을 계속 벌여왔다. 그러나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는 일용직 노동자들의 특성상 업체와의 고용관계가 명확하지 않아 이를 확인하는 데 1년가량의 시간이 걸렸다. 일용직이지만 한 사업장에서 장기간 근로한 것을 실질적인 고용관계로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또 노조측에서는 집단교섭을, 업체측에서는 개별교섭을 원해 협상 자체가 잘 이루어지지 않은 탓도 있다. 결국 노동부의 행정지도로 58개의 업체 중 SK(주)의 하청규모가 큰 12개 업체가 포함된 울산지역 기업협의회가 노조와 협상을 벌였다. 그러나 협상은 결렬됐다. 노조측에서는 “대부분의 업체들은 SK(주) 설비에 상주하는 하청업체로 원청업체인 SK(주)가 나서지 않으면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그 이유를 들고 있다.
노조원들은 결국 지난 3월17일 파업찬반투표를 거쳐 18일부터 파업에 돌입해 두 달째 장기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4월29일 노사간담회가 열렸으나 입장차이만 확인했을 뿐 교섭이 진행되지 않았다. 결국 노조원들은 SK(주)의 플랜트 설비를 점거하고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다음날인 4월30일에는 건설산업노조 토목건축협의회 노조원들이 SK(주)의 사태해결을 촉구하며 서울 아현동의 SK허브 건설현장의 타워크레인에 올라가 점거농성을 벌이며 서울에서의 여론확산에 들어간 상태다.
이에 대해 SK측은 “SK(주)는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 하청업체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직접 나서기는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SK(주) 노조도 “우리와는 직접적 관련이 없기 때문에 사태의 추이를 지켜볼 뿐”이라며 조심스런 반응이다.
결국 SK(주)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번 사태의 한가운데에 서게 됐다. 지난 3년간 끊임없는 ‘관재수’로 고생을 한 SK나 최태원 회장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