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경 수사권 갈등이 사상 초유의 검찰 수뇌부 줄사표 사태로 번졌다. 지난달 30일 세계 검찰총장 총회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 옆에 김준규 검찰총장이 묘한 표정으로 서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검찰 수뇌부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다. 검찰 내부에서는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책임론이 제기됐다. 김준규 검찰총장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자신의 거취문제까지 언급했다. 이쯤되면 ‘검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와대의 조정으로 극적으로 마무리되는 듯했던 검·경간 수사권 갈등이 재점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에 일전불사 의지를 보인 검찰은 정치권과의 전면전 및 후폭풍도 피할 수 없는 형국에 처했다. 인사시즌을 코앞에 두고 검찰은 그야말로 초비상 모드로 돌입한 상태다.
6월 30일 열린 본회의에서 국회는 재적의원 200명 중 찬성 175표, 반대 10표, 기권 15표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경찰에 대한 검사의 수사지휘 범위를 ‘모든 수사’로 유지하되 검사의 지휘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은 ‘법무부령’이 아닌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검찰의 반발 사태는 6월 28일 법사위가 최근 국회 사법개혁특위를 통과한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안을 일부 수정한 것이 발단이 됐다. 법사위는 수사권 조정 합의안 중 수사지휘권 관련 세부사항을 ‘법무부령’으로 정한다는 부분을 ‘대통령령’으로 바꿨다. 이 소식이 전해진 28일 일선 검사들 사이에서는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했지만 일단은 아무일 없이 무사히 넘어갔다. 문제는 다음날이었다.
29일 오전 그간 수사권 조정 실무를 담당했던 홍만표 대검기획조정부장이 사의를 표명하면서 검찰 내부에 기류급변이 일어났다. 홍 부장에 이어 김홍일 중수부장과 신종대 공안부장, 조영곤 형사부장, 정병두 공판송무부장이 줄사표를 냈고 검사 4명도 이에 동참하는 등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그리고 30일 결국 검·경 수사권조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김준규 총장마저 “누군가 책임져야 한다”며 사퇴의사를 비쳤다.
검찰이 ‘법무부령’을 ‘대통령령’으로 수정한 것에 대해 이처럼 강력한 반발을 하는 이유는 추후 수사지휘권 자체가 붕괴될 것에 대한 위기감 때문이다. 법무부령은 법무부 단독으로 제정할 수 있지만 대통령령은 법무부와 행정안전부, 경찰청 등 관련부처와 의견 조율을 거쳐야 한다. 개정안대로라면 검찰은 경찰의 동의를 거친 후 관할할 수 있는 수사범위 및 경찰 직무규칙 등을 정할 수 있게 된다. 경찰 수사를 지휘하는 검찰로서는 영향력이 약화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수사지휘권을 제한받게 되는 셈이다.
검찰은 수사지휘권 관련 세부사항을 대통령령으로 정할 경우 검사의 지휘범위를 정할 때마다 정치권력이 관여하게 될 소지가 다분하며 자연히 사법권에 대한 정치적 중립이 훼손된다고 반발하고 있다. 또 13만 명의 경찰이 단합해 독자수사권을 주장하고 나설 경우 사실상 이들을 통제할 방법이 없다고 경계감을 드러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검찰은 사개특위에서 논의한 합의안을 얼마 지나지도 않아 법사위에서 급히 변경한 것은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고 정당성도 얻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사면초가에 처해 있다. 그간 ‘떡검’ ‘섹검’ 등 경악스러운 사건들에 데인 탓일까. 검찰을 바라보는 눈길은 하나같이 냉소적이다. 대통령과 청와대는 과격한 표현을 자제하고 있지만 검찰에 이미 경고를 날렸다. 정치권과 갈등도 피할 수 없게 됐다. 폐지위기에 놓였던 중수부를 기사회생시킴으로써 여권과의 ‘물밑야합’ 의혹까지 불거져 나왔지만 이번에는 여야 할 것 없이 모두 검찰에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번 사태는 총리실 중재까지 거친 수정안을 국회가 마음대로 뒤집었기 때문이라는 검찰의 항의에 정치권은 괘씸함과 동시에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검찰의 집단행동이 삼권분립의 취지를 왜곡했을 뿐 아니라 국회 입법권에 대한 도전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국회 본회의에서 의원들의 ‘수사권 조정안’ 찬성률은 무려 87.5%에 달했다. 일각에서는 ‘벼르던 참에 잘 걸렸다’며 그간의 검찰 수사에 대한 의원들의 불만이 폭발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청목회 사건 및 쪼개기 후원금 등으로 국회 자존심을 건드려온 검찰이 제대로 당한 모양새다. 급기야 검찰의 오만이 극에 달했다며 줄사표를 모두 수리해야 한다는 발언까지 나왔다. 법조계도 검찰 편은 아닌 듯한 분위기다. ‘대통령령’이든 ‘법무부령’이건 행정편의상 분류일 뿐 큰 차이가 없는데 검찰이 과민반응을 한다는 지적에 힘이 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반응도 싸늘하다. 분명한 것은 국민들이 경찰 편에 서서 힘을 실어주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 많은 국민들은 서민과 훨씬 가까운 곳에서 잦은 빈도로 접하게 되는 경찰의 힘이 커질 경우에 대해 큰 우려를 표하고 있다. 현재 검찰에 대한 냉소적인 반응은 그간 심심찮게 정치편향성 수사로 물의를 빚어온 검찰이 ‘정치적 중립 훼손’을 내세우며 반발하고 있다는 점에 기인한다.
심지어 검찰이 하부조직으로 인식했던 경찰조차 검찰의 행동을 ‘쌩쇼’라며 비아냥거리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반발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번 검찰의 태도는 자신들의 지휘를 받아온 경찰과 수사지휘에 관한 사항들을 논의하는 자체가 치욕이라는 알량한 자존심이 전제된 것이라는 얘기다.
8월 중순 검찰 정기 인사시즌을 코앞에 두고 인사대란도 예고되어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차기 검찰총장 자리는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다. 법무부 장관도 바뀔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와 불편한 관계에 처한 검찰의 반발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덩달아 검찰인사를 단행하는 데 있어 임기 말 핵심사정라인 구축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청와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