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약 개발 임상시험이 대학생들의 단골 아르바이트로 떠오르면서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
임상시험 알바는 요즘 대학생들 사이에서 최고 인기직종이다. 특성상 고위험군 직종으로 분류되지만 잘만하면 회당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까지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마루타’라는 오명 속에 모집자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였지만 최근에는 어려운 경제 탓에 심하면 5:1의 경쟁률을 훌쩍 넘기기도 한다.
이러한 세태 속에서 임상시험은 요즘 사람들 사이에서 큰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아직까지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임상시험하면 그 옛날 악명 높던 나치의 마루타 생체실험을 떠올리는 경우도 많다. 임상시험은 사람에게 직접 개발 이전 의약품을 투여한다는 점에서 위험이 따르는 것이 사실이지만 실질적인 약의 보편적 이용을 위해 꼭 거쳐야 하는 단계이기도 하다.
특히 임상시험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사람들은 불치병 혹은 난치병을 앓고 있는 환자나 그 가족들이다.
줄기세포 임상시험은 그 단적인 예이다. 국내 줄기세포 연구성과와 기술수준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제의 개발은 걸음마 수준이다. 이러한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을 위한 임상시험에 많은 불치병환자들이 몰리고 있다. 말 그대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서다.
최근 한 방송매체에서 소개된 바 있는 루게릭병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에도 48명의 중증 루게릭병 환자들이 몰렸다. 임상시험 과정에서 이들 환자 중 절반 이상이 증세 호전 효과를 보였다. 앞으로도 치매나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중증환자의 임상시험 참여가 활발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최근 이러한 성과 속에서 정부는 앞 다퉈 임상시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21세기 유망사업으로 떠오른 신약개발사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활발한 임상시험의 여건이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임상시험은 빛이 있는 반면 분명 어두운 그림자도 존재한다. 어찌됐건 임상시험은 신약개발 단계에서 보증되지 않은 약물을 인체에 직접 투여, 시험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위험성도 뒤따른다.
그런 만큼 임상시험은 일정한 시험과정과 피험자의 피해보장이 약사법과 식약청 고지사항 등 관련 법규로 규제되어 있다. 당연히 제약회사와 병원 등 해당 시험기관은 임상시험의 기준 법규를 준수해야 한다. 임상시험의 특성상 항시 내포하고 있는 위험성은 시험기관이 기준 법규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더욱 배가될 수 있다.
그런데 국내 임상시험 기관 대다수가 기준 법규를 무시하고 임상시험에 나서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초 이낙연 민주당 의원(보건복지위원회)이 식약청으로부터 받은 임상시험 기관 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조사대상 기관 36곳 모두가 주의조치 이상의 적발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 큰 충격을 줬다.
서울의 K 대학병원은 피험자의 피해보상에 대한 내용을 설명하지 않았을 뿐더러 동의서도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으며 대전의 D 대학병원은 아예 식약청 승인을 받지 않고 임상시험에 나서 고발조치가 됐다. 부산의 B 대학병원은 시험도중 피험자에게 이상징후가 발생했음에도 상부기관에 보고하지 않은 결정적인 실수를 범하기도 했다. 또한 조사대상 기관 중 상당수는 시험 적합성을 판정하는 사전 진료와 동의서 교부 및 동의과정에서 위법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른 피해자도 속출하고 있다. 심할 경우 법적공방으로 비화된 사례도 적지 않다. 기자와 통화한 임상시험 기관 소속의 한 의학전문가는 “피험자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시험기관의 기준법 준수와 상부기관의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안 서는 내 물건 물어내ㅠㅠ”
지난 7월 6일, 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는 임상시험기관인 강북삼성병원과 한미약품을 상대로 낸 임상시험 피해자의 청구를 기각하며 원고 패소판결을 내렸다.
양 임상시험기관을 상대로 법적 청구를 신청한 설수영 씨(43)는 2009년 10~11월 사이 고혈압 치료제 임상시험에 참여했다. 설 씨는 약 복용 도중 두통과 졸음, 발기부전 등 부작용을 감지해 시험을 자진 중단했다. 이후 그는 발기부전과 더불어 우울증세 등 정신과적 질환에 시달렸다.
또한 설 씨는 임상시험 과정에서 법적기준인 시험 전 의사의 진료상담을 받은 적이 없고, 자격이 없는 연구간호사를 통해 동의절차를 거쳤다고 주장했다. 기자가 확인한 결과 이 사항에 대해 식약청은 강북삼성병원에 경고조치를 내린 것으로 밝혀졌다.
기자와 만난 설 씨는 두 장의 진단서를 보여주며 “임상시험 전까지는 성적기능에 문제가 없었다. 약을 복용하고 난 후 발기부전 증세가 생겼다. 또 임상시험 후 우울증세가 동반됐는데 지금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 법원은 병원과 제약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원고가 법적청구 이전에 피고 측과 민·형사상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합의를 한 것이 결정적 이유였다.
그러나 설 씨는 “당시 합의는 교통비와 검사를 위해 오고가는 시간에 따라 발생한 노동비에 대한 합의였다. 향후 발병한 후유증에 대한 합의가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설 씨는 항소의 뜻을 굳힌 상황이라 양측의 법적 다툼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