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야구의 수준 차는 종이 한 장 차이다. 베이징 올림픽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이미 증명됐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타격 7관왕을 했다면, 일본에서도 최소 1개 이상의 개인 타이틀은 따낼 수 있다.”
일본 도쿄에서 만난 한 일본인 야구기자는 한국야구를 매우 높게 평가했다. 올림픽과 WBC를 모두 취재했던 이 기자는 한국 선수 가운데 이대호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올 시즌 일본 프로야구가 공인구 교체 이후 극심한 투고타저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며 “그나마 홈런 30개 이상을 치던 타자들도 올 시즌엔 사라진 상태”라며 거포 기근 현상에 대해 설명했다.
어느 때보다 홈런이 격감한 일본 프로야구는 큰 폭의 입장 수입 감소를 경험하고 있다. 일본 프로팀들이 이대호를 노리는 것도 그가 거포 기근을 해결할 유력 후보라고 보기 때문이다.
지난해 LG에서 마무리로 뛰었던 오카모토 신야는 “낮게 떨어지는 포크볼도 무리 없이 받아칠 줄 아는 완벽한 타격 메커니즘을 갖춘 선수다. 한국 타자 가운데 일본에서 성공할 유일한 타자”라며 이대호를 극찬했었다.
이대호의 상품성도 일본 프로구단들이 탐내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올 시즌 오릭스 버펄로스는 박찬호, 이승엽을 영입하며 국내 방송사로부터 50억 원 이상의 중계권료를 벌었다. 두 선수의 연봉을 계산하고도 남는 돈이었다.
2008년 한신 누마자와 쇼지 단장을 만났을 때 그는 비보도를 전제로 “이대호를 영입하고 싶다”고 털어놨다. 겉으론 “좌측 담장을 넘기는 거포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시간이 흐르자 “이승엽을 영입해 꽤 큰 중계권 수익을 거둔 요미우리 자이언츠처럼 우리도 이대호를 영입해 중계권 수익을 얻고 싶다”는 속내를 밝혔다.
일본 언론들이 이대호 영입에 적극적인 구단으로 오릭스, 한신 그리고 김태균의 중계권을 판매한 바 있는 지바롯데를 꼽는 건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다. 과연 일본 언론의 보도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일본 스포츠 언론의 환경은 한국보다 열악하다. 한국 언론이 구단과 선수를 상대로 집요하게 취재하는 게 일상이라면, 일본 언론은 구단을 상대하는 게 무척 어렵다. 구단이 취재 협조를 하지 않으면 기사도 쓸 수 없는 형편이라, 구단을 대하는 언론은 항상 저자세다. 따라서 일본 스포츠 기사 가운덴 추측성 기사가 많다. 이대호의 일본행 예상 기사 가운데도 추측 기사가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일본 현지에서 만난 대부분의 일본 구단 관계자는 이대호를 예상보다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이대호 영입을 시도 중인 것으로 알려진 모 구단 스카우트는 “우리는 이대호 영입에 뛰어든 바가 없다”고 부인했다. “내야수비가 약한데다 2루타를 치고도 1루까지만 출루하는 걸 보고 일찌감치 영입 후보명단에서 지웠다”고 밝혔다.
퍼시픽리그 구단 관계자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일본은 수비력을 무척 중시한다. 이대호가 해마다 일본에서 30홈런, 90타점 이상을 기록한다면 모를까 한국에서처럼 수비했다간 되레 팀에 마이너스로 작용할 것이다.”
한국을 자주 오간 스카우트일수록 이대호에 대한 평은 박하다. 수비력은 답보상태인데, 시간이 흐를수록 이대호의 몸값만 자꾸 오르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이대호가 김태균만큼의 몸값을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균은 2009년 11월 지바롯데와 계약기간 3년에 계약금 1억 엔, 연봉 1억5000만 엔 등 총 5억1000만 엔(71억 1000만 원)에 계약했다. 여기다 연간 최대 5000만 엔의 인센티브가 책정돼 3년간 최대 7억 엔(91억 원)의 매머드 계약을 성사시켰다. 하지만, ‘일본 프로야구에 가장 잘 적응할 타자’라고 꼽혔던 김태균이 지난해에 이어 올 시즌에도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하자 일본 야구계는 한국 타자들의 성공 가능성을 매우 낮게 보고 있다.
센트럴리그 구단의 한 운영부장은 “이대호도 김태균의 뒤를 이를 가능성이 커 5억 엔 이상을 주는 팀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운영부장은 “정직하게 말해”라는 단서를 달고서 “연봉 1억 엔 정도가 이대호의 가장 이상적인 몸값이 아닐까”하고 말했다.
한편, 한신은 이대호보단 SK 정대현에 관심을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릭스도 팀 사정상 한국인 선수의 추가 영입은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대호는 아직 국외 진출을 주도할 에이전트를 구하지 않았다. 이것을 ‘이미 갈 팀을 정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야구관계자들도 있지만, 한국에 남겠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많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