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사 청문회를 앞두고 한상대 검찰총장 내정자(왼쪽), 권재진 법무장관 내정자에 대한 의혹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연합뉴스 |
야권은 ‘두 후보자를 모두 낙마시킨다’는 결의를 다지면서 두 사람의 비리파일 수집에 ‘올인’ 승부를 걸고 있는 분위기다. 가뜩이나 두 후보자를 둘러싼 갖가지 의혹과 비리 파일이 속속 터져나오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야권의 검증 칼날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여권 일각에선 벌써부터 2년 전 청문정국을 거치면서 낙마한 천성관 전 검찰총장 후보자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험난한 가시밭길이 예상되고 있는 두 사람의 청문회를 미리 들여다봤다.
이명박 대통령이 심사숙고 끝에 신임 사정라인 카드를 꺼내들자 야권은 강하게 반발했다. 심지어 여권 일부에서조차 우려의 목소리가 새어나오고 있다. 권재진·한상대 두 후보자가 이 대통령이 신임하는 측근인사라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정실ㆍ오기인사라는 정치적 논쟁을 넘어 두 사람은 모두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두 사람을 둘러싼 갖지지 의혹과 비리 파일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는 형국이다. 정치권 일각에서 ‘제2의 천성관 사태’가 재연될 것이란 관측이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한상대 후보자의 경우 국민정서를 자극하는 병역기피 의혹과 위장전입 사실이 확인됐다는 점에서 순탄치 않은 청문회를 예고하고 있다. 한 후보자는 고려대 재학 시절 현역 판정을 받았다가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재검을 통해 수핵탈출증(디스크)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다. 병역기피 의혹에 대해 한 후보자 측은 “당시에는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은 환자는 모두 병역면제 처분 대상이었다”며 “사법연수생 신분으로 법무장교로 복무할 수 있는 상황에서 병역의무를 기피할 이유가 없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야권은 여러 정황에 비춰볼 때 한 후보자가 고의로 병역을 기피한 의혹이 짙고, 청와대 또한 이러한 의혹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인사를 강행한 정황이 드러난 만큼 청문회를 통해 철저히 검증하겠다는 입장이다.
위장전입 문제도 청문회를 달구는 뇌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 후보자는 “딸이 친한 친구와 함께 같은 이웃 학교에 다니고 싶다고 해서 아내가 주소를 이전했다”며 위장전입 사실을 시인한 상태다. 의혹이 불거지자 한 후보자는 해명자료를 통해 “1998년과 2002년 큰딸과 작은딸의 중학교 진학 문제로 배우자와 딸이 주소를 이전해 놓았던 사실이 있다. 결과적으로 위장전입한 것이 되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비록 한 후보자가 위장전입 사실을 즉각 시인하고 사과를 했지만 학군 문제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국민정서를 감안하면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피스텔 매각 다운계약 및 탈세 의혹, 재산 부실신고 등도 청문회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 후보자는 1990년 9월 제주시 연동 소재 오피스텔(33.60㎡)을 700만 원에 매입했다가 2007년 11월 1000만 원에 매도했다고 신고했다. 하지만 매도 당시 비슷한 규모의 주변 오피스텔 시세가 2500만~4000만 원 수준이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다운계약 의혹이 일고 있다. 또한 한 후보자가 가격을 평균 시세대로 신고했다면 50만 원 이상의 양도세를 내야 했지만 가격을 낮추면서 결과적으로 탈세를 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후보자 측은 “지금도 인터넷 상에서 같은 오피스텔을 검색해 보면 1500만 원짜리 매물이 있다”며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한 후보자가 외조부에게 증여받은 서울 행당동 ‘재개발 딱지’를 팔면서 양도세를 탈루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한 후보자는 행당동 40-40번지 땅의 일부를 지난 1978년 6월 외조부로부터 증여를 받았다. 당시 형과 부친도 일부의 땅을 같이 증여받았고, 한 후보자가 증여받은 땅은 12㎡였다.
이후 한 후보자는 이 땅을 2006년 3월 박 아무개 씨에게 700만 원에 팔았다고 신고했지만, 이는 당시 시세에 비해 턱없이 낮은 가격인 것으로 나타났다. 행당동 일대는 집 없는 서민들이 모여 살았던 판자촌이 형성됐던 곳으로 한 후보자가 ‘딱지’를 팔기 3개월 전인 2005년 말에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되면서 부동산 개발 붐을 타고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기 때문이다. 이 땅을 수용한 한국토지공사는 이 일대의 땅을 ㎡당 평균 290만 4000원에 보상했고, 한 후보자가 이 가격으로 팔았다고 해도 최소한 3484만 8000원을 받을 수 있었다. 이에 따라 한 후보자가 판자촌 딱지를 팔면서 다운계약서를 작성해 세금을 탈루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하지만 한 후보자 측은 “당시 주변시세에 대해선 잘 모르겠지만 이 땅은 면적도 작은 데다 주변 토지에 둘러싸인 맹지였고, 주변 토지를 공장부지로 소유하고 있던 공장 운영자가 필요하다고 해서 싸게 팔았다”며 “양도차액이 거의 발생하지 않아 세금을 내지 않았다”고 해명하고 있다.
재산 부실신고 의혹도 불거지고 있다. 한 후보자는 올해 3월 공직자재산공개 당시 처남에게서 넘겨받았다는 그랜저 승용차(배기량 2656cc)의 평가액을 500만 원(2005년식)으로 신고했다가, 최근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요청 자료에서는 1524만 원(2006년식)이라고 수정해 부실신고 의혹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해 한 후보자 측은 “단순한 오류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재산 증식에 따른 의구심도 증폭되고 있다. 한 후보자의 올 3월 현재 재산은 26억 1208만 원으로 5년 전의 16억8832만 원보다 무려 9억 2376만 원이 늘었다. 서울 서빙고동에 소재한 본인(42평)과 배우자(50평) 명의의 아파트 가격이 2006년보다 9억 1237만 원이 상승한 것이다. 장녀와 차녀는 현재 경기도 가평에 임야 600평을 보유하고 있다. 또 한 후보자 가족의 예금은 2006년 2억 6770만 원에서 다음해 7억 672만 원으로 증가했다. 이는 아파트 전세보증금 3억 7000만 원, 조의금 1600만 원, 제주도의 본인 오피스텔 매도금 1000만 원 등을 저축한 데 따른 것이었다.
권재진 후보자는 저축은행 구명 로비 의혹, 국무총리실 민간인 사찰 개입, 2007년 대선 당시 BBK 수사발표 지연 의혹 등 악재가 산적해 있다.
야권은 권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를 통해 지난 2년 동안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낼 당시 저축은행 구명로비 대상으로 거론됐다는 점과 지난해 진행된 총리실 민간인 사찰 수사 등에 부적절하게 개입했다는 의혹 등을 집중적으로 검증한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지난해 말 부산저축은행 김양 부회장(구속)의 부탁을 받은 박종록 변호사가 자신의 사법시험 동기인 권 후보자에게 전화 로비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바 있다. 따라서 민주당은 청문회뿐 아니라 저축은행 국정조사에서도 반드시 권 후보자를 증인으로 부르겠다고 벼르고 있다.
여기에 권 후보자가 대검 차장이던 2007년 11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와 관련이 있는 BBK 수사 발표를 늦췄다는 의혹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 지난해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수사 과정에서는 민정수석이던 권 후보자가 사건을 축소하는 데 개입했다는 의혹도 불거지고 있다.
특히 민주당은 권 후보자가 이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와 초등학교 선후배 사이로 친분이 매우 두텁다는 점을 근거로 ‘영부인 인사’ 의혹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겠다는 방침이다.
권 후보자 장남의 병역특례 복무 문제도 청문회를 달구는 핵뇌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장남 권 아무개 씨는 신체검사에서 고도근시로 4급 판정을 받아 지난 2002년 9월부터 2004년 12월까지 경기도 포천의 모 중소 섬유업체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한 바 있다. 당시 병역특례업체로 지정됐던 이 업체의 회장은 대구 경북고등학교 53회 졸업생으로 권 후보자와 동기 동창인 것으로 확인됐다. 4급 판정을 받았던 권 후보자의 장남이 업체에 취업을 하지 못했다면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했어야 했다. 의혹이 일자 권 후보자 측은 “큰아들이 해당업체에서 일한 것은 맞다”고 시인하면서도 “업체 회장과 친구라고 해도 우연일 수도 있고, 아직 사실 확인 중에 있다”고 해명했다.
권 후보자의 재산문제도 도마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올 3월 기준으로 권 후보자의 재산은 총 25억 6279만 원으로 2007년에 신고한 2006년 재산에 비해 5억 7129만 원이 증가했다. 권 후보자 명의의 대치동 아파트(53평) 가치가 3억 400만 원, 본인과 배우자 및 두 아들의 예금액은 3억 529만 원이 증가했다. 예금 증가분 중 특히 2010년 3월 신고분은 전년보다 1억 7000만 원이 늘었다. 대부분 권 후보자의 예금 증가분이었는데 2009년 7월 서울고검장을 그만두고 나오면서 받은 퇴직금 등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권 후보자의 배우자는 2007년 제주도에 보유하던 오피스텔을 2900만 원에 매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과연 권재진·한상대 후보자가 자신들을 둘러싼 각종 의혹을 말끔히 해소하는 동시에 청문정국의 높은 파고를 넘어 사정라인 수장 자리에 연착륙할 수 있을까. 청문회를 둘러싼 여의도 정가의 긴장감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