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지옥션배에서 8연승을 한 최정 초단과 최 초단의 9연승을 저지한 안관욱 8단(작은 사진). |
4회 때는 여자 팀에서 ‘보무당당’ 박지연 2단이 초반에 4연승한 데 이어 ‘광저우 얼짱’ 이슬아 3단이 중반에 3연승을 올리는 등 대회 중반 너머까지 여자 주니어가 남자 시니어를 마구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긴급 투입되어 4연승,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안 8단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조훈현 9단과 박지은 9단의 결전에서 박 9단이 이겨 4회 대회의 우승컵을 가져갔다.
올해는 남자 팀이 위급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일패도지,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안 8단의 어깨가 무거웠다. 그라운드에 들어오면서 안 8단은 “최소한 3연승은 하고 싶다”는 말로 스스로를 독려했고, 특유의 두터운 행마, 침착한 반면운영, 기다림의 전술로 최 초단을 제압해 “역시 안관욱! 이번에는 과연 몇 연승이냐”는 찬사를 들었다. 그러나 다음 판에서 김나연 초단에게 분패, 올해는 특급 소방수 역할을 완수한 것으로만 만족하며 내려갔다.
안 8단과 최 초단 일전은 승패나 결과, 그런 걸 떠나 아쉬웠던 게 있다. 대국 스케줄이었다. 사소한 문제라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지지옥션배 대국 시작은 저녁 8시다. 무슨 바둑을 저녁 8시에 두나 싶기도 했는데, 지지옥션배가 관심이 폭주하는 인기 드라마여서 바둑TV는 황금 시간대에 생중계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그것까지는 이해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최 초단은 7월 18일 그날 오전에 올해 새로 생긴 또 하나의 이색 기전, 제1회 SG세계물산배 페어 바둑대회 본선 8강전 바둑을 두었다. 최 초단의 파트너는 스승인 유창혁 9단이고 유-최 사제조는 유력한 우승후보 중 한 팀이었는데, 꽃미남 김지석 7단과 권갑용 8단의 딸 권효진 5단이 짝을 이룬 팀에 졌다. 분했을 것이다. 스승과 편을 먹었는데 져 미안하기도 했을 것이다. 마음이 편했을 리 없고 컨디션도 가라앉았을 것이다. 그런 상태로 오후에 또 중요한 바둑을 두었던 것이고, 졌고, 8연승에서 멈추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프로의 공식 대국은 하루 한 판이 불문율이었다. 요즘은 모든 게 빨라졌으니 하루 두 판도 이상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 하면 그런 게 아니라고 강변하기도 사실 어렵다. 다만 최 초단의 경우 두 판이 모두 팬들에게나 본인에게나 중요한 판이었다. 그렇다면 일정을 좀 조정해 줄 수는 없었을까. 그날 오전에 페어 바둑을 두지 않았더라도 지지옥션배에서 이겼으리라는 보장은 물론 없다.
그러나 9연승에 대한 배려는 있어야 했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연승 부문 세계 최고기록은 주지하는 대로 1997년에 서봉수 9단이 진로배에서 이룩한 9연승. 그것은 전무후무할 것, 앞으로 영원히 깨지지 않을 기록일 것이라고 누구나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던 바인데, 그게 14년쯤이 지나자 어쩌면 깨질지도 모르게 된 것이었다. 남들은 없는 기록도 만들려고 하고, 별 것 아닌 기록도 잘 포장하려고 하건만, 이건 엄청난 기록의 가능성에 무감각해 버린 것 같아 그게 아쉽다는 말이다.
제13회 농심배 한국 대표선발전도 화제다. 농심배 승차권은 다섯 장이나 그중 한 장은 주최 측에서 지명하는 와일드 카드여서 실제는 네 장이다. 선발전이 지옥의 경주라고 하는 건 과장이 아니다. 원성진 9단, 김지석 7단, 강유택 4단이 한 장씩 차지했고, 며칠 있다가 이영구 8단과 안국현 2단이 나머지 한 장을 놓고 다투게 된다. 그 한 장의 주인공도 궁금하거니와 와일드 카드가 누구에게 돌아갈 것이냐 하는 것도 그 못지않은 관심사다. 이창호 9단과 이세돌 9단, 우리 쌍두마차가 탈락한 것도 화제 거리다. 이세돌 9단이 살았다면 와일드 카드는 올해도 이창호 9단이 차지할 공산이 컸다. 이창호 9단은 농심배 부동의 에이스, 동방불패의 수문장이었으니까.
그런데 올해는 이창호 9단이 와일드 카드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제는 이창호 9단보다 이세돌 9단이 더 믿음직해서? 꼭 그런 것만은 아니고 지난해 씁쓸했던 기억이 아직 지워지지 않은 탓이라고 짐작이 간다. 작년 대회 때, 막판에 우리는 이창호 9단 한 사람만 남고 중국은 세 사람이 살아 있었다. 이 9단은 홀로 3명의 적장과 싸우러 중국으로 날아갔다.
물론 선수단은 이 9단 혼자가 아니었고 한국기원 이사들이 응원단으로 동행했는데, 그때 이 9단은 3등석, 응원단은 2등석이었다. 이 9단이 3연승으로 우승컵을 안고 돌아온 것은 다행이었지만, 국보급 선수, 세계바둑사에 전설로 남을 선수는 혼자 3등석, 이른바 한국기원 고위층으로 구성된 응원단은 우르르 2등석, 이게 훗날 말이 있었다. 지적하는 소리가 있자 한국기원은 선수는 3등석, 임원은 2등석이라는 규정이 있다고 대답했다. 한국기원 이사는 대개가 사회 저명인사인데, 그들도 과연 규정에 따랐으니 문제가 없었다고 생각할지 그건 모르겠다.
이창호 9단과 최정 초단. 경우는 다르나 무신경은 좀 비슷하다. 기록을 아끼고, 사람을 아끼고, 그게 좋은 것 아닌가. 그게 역사도 되고, 문화도 되고, 그런 것 아닌가. 한국기원 이사가 아무리 저명인사라 한들 어찌 이창호 9단에 비할쏜가.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