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남전을 소재로 한 영화 <하얀 전쟁>의 한 장면. |
김 아무개 씨는 월남전 참전 당시 내무반 총기난사 사건으로 인해 엄청난 고통을 겪었으며 현재까지도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고 후유증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보다 더욱 김 씨를 괴롭히는 것은 군의 대우방식이다. 김 씨는 “사고부대에서는 월남전쟁 중 벌어진 잔혹하고 끔찍한 사건을 덮어버렸고 가해자를 형사처벌조차 하지 않았다. 또 사고 피해자인 나를 의무대에 가입원시켰고 병상일지 및 입원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공상으로 인정해주지 않았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김 씨에 따르면 운명의 사건은 지난 1971년 8월 6일 밤 11시경 발생했다. ○○부대 헌병대 순찰소대소속 A 병장이 만취 상태에서 사병과 하사관들이 자고 있던 내무반에 들어왔다. 자신의 M16소총을 들고 들어온 A 병장은 “모조리 죽여버리겠다”고 고함을 치며 30여 발을 무차별 난사했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좌측 다리에 총탄을 맞은 김 씨는 급박하게 지하벙커로 긴급대피했는데, 이 과정에서 동료들과 뒤엉켜 넘어지면서 척추를 크게 다쳤다. 응급후송 된 김 씨는 의무중대에서 2개월 동안 입원해 치료를 받았고 결국 파병 4개월 만에 귀국하게 된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온 후 김 씨는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봉착했다. 육군 중앙 공상심의위원회에서는 김 씨의 입원기록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공상으로 인정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파병 중 당한 사고만으로도 억울한 터에 이러한 군의 태도를 김 씨는 납득할 수 없었다.
결국 김 씨는 수소문 끝에 당시 해당 부대의 부대장과 소대장을 찾아 인우보증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1999년 2월 마침내 좌측 다리 부상 부분에 대해 공상 판정을 받아냈다.
문제는 같은 사고로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허리 부분에 대해서는 공상으로 인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공상심의위원회에서는 당시 내 병상일지 및 의무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애초 다리와 허리 부상을 모두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직접 목격자들을 찾아내 인우보증인을 세우자 그제서야 다리부분만 공상으로 인정했다. 나는 허리부상에 대해 추가로 입증하기 위해 또다시 13년 동안 직접 당시 소속 부대원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당시 나를 치료한 위생병을 포함한 6명의 인우보증인의 입증 서류를 법무법인에서 공증한 뒤 공상심의위원회에 제출했다. 총기사고가 발생해 다리에 총상 및 허리부상을 입고 의무실에서 2개월간 치료받았다는 내용이었다.”
특히 김 씨는 자신이 명백한 총기사건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한 것은 당시 군부대 측에서 총기사건을 의도적으로 은폐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자신의 공상인정에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는 병상기록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총기난사 사건 가해자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은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당시는 헌병대장이 중령에서 대령으로 승진이 예정돼 있었던 때였다. 그래서 내무반에서 발생한 끔찍한 총기난사사건도 보고가 되지 않은 채 은폐됐다. 총에 맞은 나를 정식으로 입원시키지 않고 가입원시킨 것도 이 때문이었다. 가입원으로 인해 나는 입원기록조차 문서로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때문에 나를 치료한 위생병 및 당시 사고를 목격한 이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진실을 입증해야 했다”고 김 씨는 주장했다.
공상심의위원회 측은 허리에 대한 공상 불인정 사유에 대해 “당시 총기사고로 인한 증상이라고 볼 수 있는 객관적 증거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위원회 관계자는 7월 26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김 씨는 베트남에서 귀국한 후에도 군생활을 하다가 83년에 전역했다. 그간 정상적인 생활을 했음이 짐작되는 부분이다. 그런데 김 씨는 전역한 지 16년이 지난 1999년에 협착증 등의 진단을 받아 군 측에 공상인정을 요청해왔다”고 설명했다. 즉 김 씨는 사고가 발생한 1971년 이후 허리통증 관련 병원 치료를 지속적으로 받은 기록이 없었으며, 전역 한참 후에 발급받은 진단서만으로는 당시 총기사고로 인한 부상임을입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 씨는 올 7월 1일부로 국가유공자로 등재된 상태다. 이에 대해 김 씨는 “국가유공자 등재는 참전 당시 부상 및 공상처리 여부와 무관하게 참전 자체만으로 이뤄진 것이다. 나는 얼마 전 국가유공자가 됐지만 국가로부터 어떤 혜택도 받고 있지 않다. 총기사고 후 극심한 스트레스 장애와 이명증상, 육체적 고통으로 평생을 진통제에 의지해 살아야 하는 참전용사에 대한 국가의 처우는 이렇게 형편없다. 내가 끈질기게 허리부상에 대해 공상으로 인정해달라고 하는 것은 참전 중 억울하게 피해를 당한 것과 그 후유증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을 국가가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이는 정당한 권리를 찾는 행위다”고 강조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