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장 큰 숙제인 내 집 마련. 새해부터 부동산 가격을 전망하는 뉴스들이 쏟아지고 달라지는 정책 하나하나에 사람들은 촉각을 세운다.
그렇다면 600여 년 전엔 어땠을까. 조선 시대 사람들도 집값 문제로 울고 웃으며 평생을 고민했을까. 한양 사람들의 내 집 마련 분투기를 극단 '실한'의 익살스러운 연극을 통해 맛깔나게 느껴보자.
개국 초기엔 한양의 토지를 무상 분급했다. 개경 사람들을 신도시 한양에 유인하기 위한 달콤한 유인책이었던 것. 이후 개인들 간의 자유로운 부동산 거래가 시작되고 오늘날의 공인중개사에 해당하는 직업 또한 등장한다.
바로 집주릅! 집 소개는 물론이고 계약서와 도면 작성 등 부동산과 관련한 다양한 업무를 맡았다. 하지만 중간에서 농간을 부리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13년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기를 쓴 유만주의 '흠영'을 통해 조선 시대 매매과정을 히스토리텔링(history+storytelling) 기법으로 만나본다.
10만 인구를 목표로 설계된 계획도시 한양. 하지만 꿈을 좇아 한양에 몰려드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부동산 시장은 새 국면을 맞이한다. 살 집이 부족해지면서 새로운 주거 형태인 전세 제도가 떠오른 것. 퇴계 이황 역시 한양에선 셋방살이했다는데 과연 조선의 전세 제도는 지금과 무엇이 다를까.
한편 지난해 신림동 고시촌 꼭대기의 한 빌라에서 전세 사기 사건이 발생했다. 신림동 고시촌에서도 오르막길 끝자락에 위치한 곳. 그곳도 전세 사기의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새롭게 전세 제도가 떠오른 조선 시대에는 어땠을까.
조선 시대에도 집주인과 세입자 간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하루아침에 거리로 나앉은 포수 박광학의 사연. 과연 그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한편 숙종부터 고종까지 무려 150년의 부동산 거래 내역이 담긴 문서가 발견된다. 지금의 서울 종로에 해당하는 장통방의 집값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한편 그 시절에도 집 없는 서민의 삶은 고달팠다.
주택난이 심각해지면서 양반이 서민의 집을 강제로 빼앗아 들어가는 '여가탈입' 현상이 나타난 것. 이에 여가탈입과의 전쟁을 선포한 영조. 과연 조선은 여가탈입으로부터 백성을 보호할 수 있을까.
사대문 안만 한양이라는 좁은 인식 속에 살던 사람들. 하지만 사대문 안의 시대는 막을 내린다. 한강 유역이 떠오르고 도성 밖이 발달하면서 천만 도시 서울의 근간이 탄생한 것이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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