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안방의 웃음을 책임지며 코미디계를 주름잡았던 이원승은 어느 날 갑자기 모습을 감췄다. 긴 공백기 이후 다시 사람들 앞에 나타난 것은 1998년 TV 속 개그맨이 아닌 나폴리 피자집의 사장으로서였다.
24년 동안 한자리를 지키며 이제는 화덕 앞에서 피자를 굽는 모습이 더 익숙해진 이원승은 피자 때문에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다고 한다. 지금은 연 매출 11억 4000만 원의 갑부가 된 그에게 어떤 사연이 있었던 것인지 방송을 통해 공개한다.
출연하던 코미디 프로그램 종영 후 어렸을 적부터 꿈꿔왔던 연극계에 발을 디디게 된 어느 날 이원승은 한 방송국의 프로그램으로부터 출연 제의를 받게 된다.
이탈리아에서 정통 나폴리 피자 만들기에 도전하는 내용이었는데 당시 한국에서는 미국식 피자가 유행하던 시절이었기에 이원승에게는 나폴리 피자는 신세계였고 이 피자의 씨앗을 국내에 뿌려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 것이다.
이후 촬영을 진행했던 이탈리아 피자집의 독점 사업권을 들여오려 했지만 높은 금액의 로열티 요구로 진행이 쉽진 않았다. 그렇게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던 중 이탈리아 피자집 사장의 가족 결혼식에 초대된 이원승은 그곳에서 기회를 얻게 된다.
이원승은 2시간 동안 팬터마임을 펼쳐 이탈리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결국 독점 사업권을 따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렇게 서울로 정통 나폴리 피자집을 열게 된 이원승은 정통 피자의 맛을 구현하기 위해 피자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는 이탈리아 현지에서 공수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짙은 풍미 자랑하는 물소 젖 치즈가 토핑된 피자가 인기다.
여기에 42년 경력 자랑하는 이탈리아 본토에서 온 피자 장인이 이탈리아 화산재로 만든 화덕에 구워내니 그야말로 '찐' 나폴리 피자를 만나볼 수 있다. 이 맛에 매료돼 24년째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은 물론 배우 배종옥부터 뚝딱이 아빠로 유명한 개그맨 김종석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이원승의 피자집을 찾고 있다.
하지만 이원승도 처음부터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 피자집을 오픈할 당시는 IMF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였고 그 때문에 하루에 오는 손님은 고작 열 팀 정도였다.
그야말로 어두운 터널 속에 갇힌 그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생각했는데 그때 마침 '저녁에 맥주나 한잔하자'는 친구의 한마디가 그를 살려냈다. 이후 다시 일어설 결심을 한 그는 죽을힘을 다해 피자를 구웠고 무엇보다 그의 아내는 옆에서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주었기에 버텨낼 수 있었다.
이렇게 연 매출 11억 4000만 원의 유명 피자집으로 우뚝 서게 된 이원승은 이제 나눔을 실천하려 한다. 개그맨 선배이자 멘토인 전유성 씨의 도움으로 가평에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테마공원을 조성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피자 나눔 봉사도 실천하고 있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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