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도사 논란 속 ‘비선실세’ vs ‘걸크러시’ 여론 엇갈려…“통화 이슈 길어질수록 양쪽 모두 손해”
우여곡절 끝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부인 김건희 씨 ‘7시간 통화 녹음파일’이 1월 16일 MBC ‘스트레이트’를 통해 방송됐다.
이날 방송에서는 온라인 매체 ‘서울의소리’ 소속 이명수 기자와 김 씨가 나눈 대화 중 일부가 공개됐다. 여기엔 김건희 씨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를 비롯해 안희정 전 충남지사 ‘미투’ 사건 등에 대한 발언이 담겨 있었다. 접대부 쥴리설, 양 아무개 전 검사와의 여행·동거설 등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변론했다.
방송 후 각 진영의 반응은 엇갈렸다. MBC 항의방문까지 했던 국민의힘에서는 방송 이후 논란이 될 발언은 없었다고 평가했다. 오히려 사적 대화가 동의도 없이 대중에 공개돼 동정여론이 조성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는 방송 이후 1월 17일 자신의 SNS(소셜미디어)에 “민주당은 왜 본방사수 독려 캠페인을 당 차원에서 했던 것이냐”고 반문했다. 또한 “후보자의 배우자가 정치나 사회현안에 대해 본인이 가진 관점을 드러내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될 일이 없다”며 “선거과정에서 가족만큼 후보자를 생각하고 노력하는 사람이 없기에 모든 단위의 선거에서 가족의 역할은 중요하다. 후보자의 배우자가 본인에게 과도한 의혹을 제기하는 매체들을 지적하고, 조언해주는 사람들에 감사를 표하고, 캠프를 구성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인사를 영입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될 일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본방사수 독려까지 했던 더불어민주당은 ‘결정적 한방’은 없었다는 분위기 속에 방송 당일 공개 반응을 자제했다. 그러다 이내 ‘제2의 최순실’ ‘국정농단 시즌2’ 등 비선실세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민주당 선대위 현근택 선대위 대변인은 1월 17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캠프 구성에 직접 관여했다는 것을 (김건희 씨) 본인이 인정했다”며 “최순실(을 보는 듯한) 기시감이 든다. ‘최순실 시즌2’ 아니냐”고 비판했다. 우상호 의원도 같은 날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기자를 돈으로 협박·회유하고 ‘미투’도 돈으로 했으면 될 텐데라고 하는 인식이 아주 천박하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지적했다.
MBC ‘스트레이트’가 ‘핵폭탄급’ 파장을 일으키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오히려 김 씨의 나머지 통화 녹음파일이 여러 매체와 경로를 통해 공개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7시간 통화 녹음파일’을 MBC에 처음 제공한 백은종 ‘서울의소리’ 대표는 1월 17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MBC 보도에) 상당히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았다”며 “괜히 MBC 측에 줬다 이런 생각도 든다”고 불만을 표했다. 백은종 대표 측은 아직 공개되지 않은 분량이 많은 만큼,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다양한 경로로 공개할 계획을 구상 중이라고 전했다.
실제 백 대표도 이날 방송에서 “딱 하나 김건희 씨가 이런 얘기를 한다. ‘조국 전 장관이나 정경심 교수가 좀 가만히 있었다면 우리가 구속시키려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고 밝혔다. 이어 서울의소리를 비롯해 몇몇 매체에서 미공개 녹음 파일을 공개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측은 통화 녹음이 추가로 공개되더라도 큰 파장은 없을 것으로 본다. 국민의힘 선대본부 한 관계자는 “첫 방송 이후 오히려 김건희 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당당한 화술로 의혹에 대해 설명해 깜짝 놀랐다는 반응이 많다. ‘걸크러시’로 팬이 됐다는 사람들도 있다”며 “첫 방송에서 큰 임팩트가 없어 민주당 지지자들은 실망감과 혼란스러움이 있다. 추가적인 내용을 공개하는데 고심이 깊을 것”이라고 전했다.
민주당 선대위 한 관계자는 “처음 ‘스트레이트’ 방송을 봤을 때는 ‘이게 끝인가’ 싶어 당황했던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곱씹어볼수록 문제가 되는 발언이 많았다. ‘미투’에 대한 가치관이나, 선거 조직 개입, 선거법 위반 혐의 등이다. 특히 ‘영적인 사람’ ‘도사’ 등 무속 관련 발언은 향후 더 논란의 소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추이를 지켜보고 대응하지 않겠느냐”고 귀띔했다.
실제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등에서는 김건희 씨를 두고 ‘비선실세’와 ‘걸크러시’ 상반된 입장이 팽팽히 맞붙고 있다.
결국 김 씨의 ‘7시간 통화 녹음’ 논란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윤석열 후보 대응에 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윤 후보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정가의 주요 기류다.
‘7시간 통화’ 방송이 나간 다음날인 17일 국민의힘 선대본에 무속인이 활동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건진법사’로 알려진 전 아무개 씨가 선대본 하부조직인 네트워크본부에서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윤 후보의 메시지와 일정, 인사 등 선거운동 전반에 관여했다는 것이다. 특히 윤 후보가 전 씨를 부인 김 씨의 소개로 알게 됐다는 말까지 나왔다.
윤 후보는 앞서 당내 경선 과정에서도 손바닥 ‘왕’자 논란, 역술인 ‘천공스승’과 인연 등으로 홍역을 치른 바 있다. 특히 MBC 방송에서 김건희 씨가 “내가 엄청 영적인 사람이라 책 읽고, 도사들하고 같이 얘기하면서 ‘삶은 무엇인가’ 이런 얘기하는 걸 좋아한다”고 답한 부분과 결합되며 논란이 증폭됐다.
국민의힘은 결국 네트워크본부를 해산한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측에서는 불필요한 소문과 오해가 확산되는 걸 차단하는 의미라고 설명했지만, 오히려 무속인의 활동을 인정한 꼴이 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진다. 특히 김 씨 발언과 무속인 논란이 맞물리면서 윤 후보 지지율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여권의 한 전략통은 “‘건진법사’ 논란을 깔끔하게 정리하지 못하니까 김건희 씨 7시간 통화의 ‘도사’ 발언과 연결된다. 이는 국민들에게 자연스럽게 최순실 국정농단의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한다”며 “윤석열 후보를 지탱하는 가치는 뚝심과 저돌성이다. 무속인 논란은 이를 흔든다. 비선실세에 의해 휘둘리고 조종당하는 존재로 전락하는 것이다. 중도·보수층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건희 씨 7시간 통화 이슈가 길어질수록 민주당에도 호재로는 작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고진동 정치평론가는 “어차피 김건희 씨는 이번 대선 기간 중에 공식석상에 나올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그렇다고 김 씨의 통화 녹음에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내용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그런데 대선국면은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 네거티브 공방이 됐다. 중도층에 대선에 대한 피로도를 높여주는 계기가 됐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에 손해”라고 평가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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