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인수 무산에도 중간지주사 유지…사업 그대로인데 회사 수 증가, 중복 상장 주주 피해 우려도
이후 KDB산업은행(산은)이 대우조선 매각대금으로 한국조선해양 주식을 받고, 한국조선해양이 현대중공업 지분 등을 팔아 대우조선에 1조~2조 원을 신규 투자하도록 설계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이 자금 부담 없이 대우조선을 인수할 수 있도록 만든 회사가 한국조선해양인 셈이다.
대우조선의 인수가 끝내 무산되면서 한국조선해양의 존재도 무의미해졌다. 현대중공업이 2021년 9월 재상장하는 과정에서 ‘더블카운팅 이슈(중복상장으로 인한 모회사 할인)’로 한국조선해양 주가가 폭락해 주주들의 원성도 높다. 지금이라도 한국조선해양을 현대중공업이나 현대중공업지주와 합병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배경이다. 김현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2021년 말 보고서에서 “(현대중공업그룹의) 건설기계 중간지주사인 현대제뉴인과 조선 중간 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의 명확한 역할이 부각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사실상 한국조선해양의 존재 이유를 지적한 셈이다.
#인수 무산에도 중간지주회사 체제 그대로
현대중공업그룹은 대우조선 인수가 무산됐음에도 중간지주회사 체제는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한국조선해양은 2019년 물적분할 승인 당시 ‘대우조선 인수에 실패해도 회사 분할은 유효하다’고 조건을 걸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조선 자회사 및 건설기계 자회사 관리를 위해서라도 중간지주회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현대중공업그룹 내에는 현대중공업지주라는 지주회사가 있지만 한국조선해양을 통해 현대중공업과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 등 조선 자회사를 관리하고, 현대제뉴인을 통해서는 현대건설기계, 현대두산인프라코어 등의 자회사를 관리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그룹 같은 단순한 사업 구조의 회사가 굳이 옥상옥 지배구조를 갖출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낮은 지분율로 지배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중간지주회사 체제를 구축했을 뿐 경영 자체에는 도움이 안 된다는 지적이다. 한국조선해양과 현대제뉴인은 이 같은 지적을 의식한 듯 그룹 내 연구개발(R&D)을 책임지겠다고 강조한다. 즉, R&D 전문 중간지주회사를 추구한다는 것으로 한국조선해양 인력 상당수는 현대중공업 중앙기술원 출신들이다.
한국조선해양은 2021년 간담회를 열고 수소와 풍력 등 신사업 로드맵을 밝혔다. 한국조선해양은 당시 수소 친환경 운송 선박과 친환경 추진 선박, 자율운항과 스마트 선박, 해상풍력·수전해 연구개발 및 투자, 연료전지 발전 및 연료전지 기반 전기 추진선 등을 개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2023년부터는 울산·동남권 부유식 해상풍력 실증사업도 진행한다고 밝혔다.
한국조선해양은 지난 1월 18일에도 증권사 연구원 대상 간담회를 열어 “(대우조선 인수 좌절로 인한) 유동현금흐름 사용 방안은 추가 계획을 설정한 후 공개할 것”이라며 “기존 방향과 동일한 조선해양 신사업 추진에 집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제뉴인도 비슷한 행보를 보인다. 현대제뉴인은 최근 로봇 사업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로봇 사업은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사장이 관심을 갖는 분야이기도 하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현대제뉴인은 CES 2022에서 소개한 무인 건설기계 개발에 집중하겠다는 구상을 드러내고 있다”며 “때마침 중대재해처벌법 도입, HDC현대산업개발의 대형 사고 등을 계기로 무인 건설기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국면이라 증권업계로부터 주목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옥상옥 시어머니 역할 우려…중복상장도 문제
현재의 중간지주회사 체제로 인해 불거지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지다. 현대중공업그룹 내 사업회사들은 한국조선해양과 현대제뉴인이 R&D를 책임지는 것에 대해 불만이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중공업에 R&D 조직이 있음에도 한국조선해양의 R&D만 부각된다는 것이다. 또 분당에 글로벌연구개발센터(GRC)가 완공되면 현대중공업 R&D 인력 상당수는 이곳에서 한국조선해양 연구 인력과 근무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현대중공업 한 직원은 “개인적으로는 수도권 근무를 환영하지만 현장과 동떨어져 소속이 다른 상급자의 지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염려된다”며 “한국조선해양이 R&D와 인수합병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겠다고 하는데 이미 현대중공업지주도 이에 관여하고 있어서 시어머니 같은 관리조직만 비대해지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현대제뉴인과 현대건설기계, 현대두산인프라코어의 경우 신사업을 놓고 충돌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무인 건설기계는 현대두산인프라코어, 현대건설기계가 이미 자체적으로 추진하던 영역이다. 현대제뉴인의 기습적인 로봇 발표에 사업회사 실무진들은 불쾌하다는 반응을 내비치고 있다.
이와 관련, 현대중공업그룹 관계자는 “한국조선해양은 친환경 에너지원이나 원천기술 R&D에 집중돼 있고, 현대중공업은 스마트 조선과 같은 건조기술을 주로 연구하는 차이가 있다”며 “건조기술도 중요하지만 원천기술 개발도 중요한데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이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계열사들이 건조기술을 발전시킴으로써 시너지를 발휘해 경쟁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전했다.
반복되는 중복 상장과 이로 인한 투자자들의 문제 제기도 넘어야 할 벽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현대삼호중공업과 현대글로벌서비스, 현대오일뱅크 등을 상장할 예정이고, 증권가에서는 현대제뉴인도 언젠가 상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별한 사업이 없는 현대제뉴인이 상장하면 현대중공업지주 주가에 악영향을 미쳐 기존 주주들의 반발이 거세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실제 현대중공업이 상장하면서 한때 16만 원대였던 한국조선해양의 주가는 현재 8만 원대로 내려앉았다. 앞서의 현대중공업그룹 관계자는 “현대제뉴인 상장과 관련해서는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고 전했다.
금융권에서는 산은이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제안했을 때 현대중공업그룹이 마지못해 승낙하는 척하면서 현대중공업을 분리해 과실만 따먹었다고 지적한다. 국내 조선 산업 정상화를 명분으로 물적분할을 진행하면서 주주들에게 피해를 입혔다는 것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현대중공업그룹은 2017년 현대중공업을 6개 회사로 쪼개기 전까지는 몇 개 회사밖에 없는 단출한 구조였다”며 “5년이 지난 현재 사업은 그대로인데 회사 수만 엄청나게 늘었다. 계속되는 자회사 상장은 분명히 기업 지배구조와 평판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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