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걷는 골프장을 다녀왔다. 회원들이 반대해서 일부러 카트 도입을 하지 않는 곳이었다. 장마철이라 다행히 뙤약볕은 주춤했다. 지형도 비교적 완만했다. 하지만 습도가 높아서 동남아시아에서 골프 치는 기분이었다. 걷는 18홀은 체력적으로 버거웠다. 카트에 익숙해져있는 여성 아마추어 골퍼의 체력 한계가 느껴졌다.
한여름에도 나흘 내내 4라운드를 걸으면서 경기를 치르는 여자 프로 선수들이 새삼 생각났다. 선수들은 연습라운드와 프로암을 합치면 일주일에 6일을 플레이한다. 올해 KLPGA는 23개 대회가 잡혀있는데, 하반기 중에 9회 연속 쉼 없이 대회가 펼쳐지는 기간이 있다. 겨우 하루 걷고도 낑낑대는 내 입장에서 보면 상상이 안 되는 체력이다. 원래 체력이 강해서 골프선수가 된 것인지 골프선수가 돼서 체력이 강화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대부분의 여자 골프 선수들이 겨울철 동계 훈련 때 어떤 훈련을 했는지 물어보면 제일 먼저 대답하는 것이 ‘체력보강’이다. 특히 상위 30위권 내에 드는 선수들은 실력 면에서 비등하기 때문에 결국은 하반기로 갈수록 체력싸움으로 승부가 판가름 난다.
간혹 골프가 무슨 운동이 되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운동은 안 되고 스트레스만 받는다며 골프를 폄하한다. 운동이 되는 다른 스포츠를 하겠다며 종목을 바꾼다. 맞는 말이다! 카트를 타면 골프는 운동이 안 된다. 그러나 그 편한 카트만 안타면, 골프는 확실히 운동이 된다. 18홀 정규코스의 길이를 평균적으로 7200야드 정도로 잡는다면, 약 6.5㎞로 환산할 수 있다. 선수들이 치는 백 티에서 시작해서 그린 중앙까지의 거리다. 실제로는 홀과 홀 사이도 걷고 그늘집도 갖다온다. 때로는 옆 홀도 다녀오고 산등성이를 타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을 감안하면 10㎞ 정도 된다. 이 정도 체력훈련이 필수적으로 동반된 스포츠가 얼마나 되겠는가! 문제는 걷지 않기 때문이다.
작년도 상금왕 이보미 선수는 크지 않은 키에 아담한 체구를 지녔다. 워낙 붙임성 있는 성격이어서 몇 번 인터뷰를 하자 많이 친해졌다. 어느 날, 장난삼아 허벅지를 만져 봤다. 말문이 막혔다. 그냥 장타를 구사하는 것이 아니었다. 본인은 부끄러워했지만, 내가 보기엔 상금왕을 만들어준 허벅지였다. 기억에 남는 선수가 또 있다. 늘 우승권 후보로 꼽히는 스텝스윙의 달인 김혜윤 선수와 라운드를 함께 했을 때였다. 선수들의 체력관리요령이 단골 인터뷰 질문이기 때문에, 유심히 그녀의 몸을 훑어봤다(여자 캐스터만의 특권이다^^).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대회기간 중에는 못하지만 나머지 기간은 본인이 정한 룰이 있었다. 아파트 20층을 5번 오르락내리락한다는 것이다. 결국 100층을 올라간다는 얘기다. 그 한마디가 그녀의 모든 것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요즘 꿀벅지가 대세다. 나는 진정한 꿀벅지 소유자들을 안다. 비록 햇볕에 검게 그을리고 알이 박혀서 모양은 미끈하지 않지만 정직한 꿀벅지들이다. 거짓이 없다. 진정성이 있는 꿀벅지다. 그리고 그녀들은 오늘도 어디서에선가 열심히 걷고 있다.
SBS 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