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치권에서 부쩍 자주 회자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박경철 안동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이다. 정치인이 아님에도 이들은 명실공히 가장 핫한 인물로 꼽히고 있다. 이들에 대한 영입 움직임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의 러브콜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십고초려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다.
하지만 이들은 정계진출에 대해 거부의사를 밝혔다. 여론도 호의적이지 않다. 젊은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멘토 역할을 하고 있는 이들이 정치판에 발을 들일 경우 ‘변질’될 위험 때문이다. 순수하고 곧은 시선을 잃어버릴 뿐만 아니라 지조 있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될 것에 대한 우려다. 네티즌 사이에서는 이미 안철수-박경철 사수 움직임마저 일고 있는 분위기다. 동시에 그들이 정계진출을 위한 준비단계를 밟아가고 있다는 의혹의 시선도 있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권을 잡기 위한 정치권의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정치권에서 가장 주력하고 있는 것은 ‘물갈이’다. 총선 판도를 뒤집을 수 있는 새 인물의 영입을 꿈꾸는 정치권이 여아 할 것 없이 공을 들이고 있는 인물이 바로 안 교수와 박 원장이다.
야권의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급부상 중인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얼마 전 안철수 교수에게 대놓고 러브콜을 보냈다. 또 박 원장은 이미 2008년 18대 총선에서 민주당 공천심사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민주당으로서는 한나라당의 텃밭인 영남권 공략을 위해 두 사람 영입에 사활을 걸 조짐이다.
센세이셔널한 인물을 내세워 20~40대 표심을 잡아야 할 한나라당도 양보할 수 없는 처지다. 원희룡 의원은 “십고초려를 해서라도 안 교수를 영입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왜 이들인가?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들이 정치선언을 할 경우 제2의 노풍을 일으킬 것이라는 기대감이 팽배한 상황이다. 우선 이들은 20~40대 중산층에게 어필할 수 있다. 기존의 정치인들에 신물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이들의 합리적이면서도 순수한 이미지, 정의에 대한 갈망은 부동층으로 분류되는 20~40대 중산층의 입맛에 딱 맞아떨어진다. 또 고향이 부산(안 교수)과 안동(박 원장)인 이들은 영남권 표심을 잡는 데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뿐만 아니라 양심 있는 지성인으로 SNS 세계에서 지지를 받고 있는 이들만큼 대중적이고도 참신한 인물은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들의 가장 큰 경쟁력은 ‘감동’이다. 노무현과 오바마 정권 출범에서 드러났듯 현대 정치의 화두는 단연 ‘감동’이다. “재벌 독식구조가 고착화되고 기득권이 과보호되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며 건강한 사회를 독려하는 이들에게 사람들은 감동하고 있다. 감동은 진정성과 직결된다. 우리 시대 최고의 브레인으로 꼽히는 이들은 그간 특정 정치색을 띠지 않으면서 사회문제와 관련 소신 있는 목소리를 내왔다.
이들은 재벌과 권력, 사회 분열과 갈등을 유도하는 사회구조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며 독단과 탐욕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서 공멸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해법을 제시했다. 최고의 스펙을 가진 이들이 스펙이 최우선시 되는 사회를 지탄하며 더불어 살아가기에 대한 고민을 하는 모습은 국민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특히 암울한 젊은이 및 낙오자에 대한 따뜻한 희망의 메시지는 함께 소통하는 사회에 대한 갈망을 안겨줬다. 일각에서 10여 년 후 ‘안철수 대통령, 박경철 국무총리’라는 시나리오까지 내놓고 있는 것도 이들의 제시한 ‘살맛 나는 사회’에 대한 비전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쯤되면 관심은 이들이 과연 정치참여를 선언할지에 쏠린다. 현재 당사자들은 모두 정치권 입성을 부인하고 있다. 안 교수는 여전히 정치에 뜻이 없으며 강연에만 집중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박 원장 역시 직접 정치에 참여할 뜻이 없음을 수차례 밝혀왔다.
정치권의 노골적인 영입 움직임이 잇따르자 네티즌들은 이들을 사수하기 위한 움직임에 들어갔다. ‘두 사람을 그냥 내버려두라’는 것이다. 정치권에 발을 들이면 그간 개인의 출세나 정당의 이익과 무관한 위치에서 사회문제를 진단하고 해법을 제시하던 이들의 순수성이 퇴색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하지만 두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이들이 필요이상으로 과대평가되고 있으며 신성시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일부는 안 교수가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최고의 스펙을 쌓으며 성장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의사라는 본직을 과감히 버리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다니는 자유인의 삶은 안 교수의 태생적 배경과 그로 인한 스펙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임에도 어느 순간부터 일거수일투족이 추앙되고 안티 없는 성역과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했다는 얘기다.
세상과 동떨어진 듯한 순수함과 어리숙한 이미지까지 어필되는 것도 그가 안철수이기에 가능함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탄탄한 경제적 기반과 사회적 배경을 바탕으로 자녀의 성공에 사활을 거는 강남엄마들 사이에서 안 교수가 ‘강남키즈’의 로망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1960년대 ‘강남키즈’와 같은 환경에서 성장한 그는 명실공히 최고의 스펙을 달성했는데 사회 기득권자인 그가 소외된 계층에 대한 사회의 관심과 역할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묘한 느낌마저 풍긴다.
박 원장은 뻔한 얘기들만 나오는 경제방송에서 시장경제의 흐름에 대한 냉철한 분석 외에도 비도덕적인 금융인에 대한 질타, 무엇보다 땀 흘려 일하고 자신의 능력을 쌓는 일이 가장 안전한 재테크라고 주장, 많은 이들의 호응을 받았다. 또 친구와의 약속대로 중앙 기득권을 버리고 고향에 내려가 의사생활을 한다는 것으로도 의리의 사나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도 그가 생계 걱정 없는 전문직 종사자이고 사회적으로 명성을 쌓은 인물이라는 전제하에 이뤄졌다.
박 원장의 ‘발언권의 민주주의’가 SNS 세계에도 빈익빈부익빈이 존재함을 간과한 발언이라는 지적도 있다. 발언권 민주주의는 트위터의 등장으로 일반인도 발언권을 갖게 됐으며 이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향한 모토가 됨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는 현재 ‘코리안 트위터 영향력 순위’에서 1위를 기록중이며 팔로어가 13만 명이 넘는다. 하루 불과 30~40분간 트위터를 사용함에도 이 정도의 팔로어와 리트위터를 확보한 것은 그의 유명세 때문이다. 아무리 글을 올려도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는 일반 트위터와도 많다. 그가 말한 발언권의 민주주의는 애초부터 어폐가 있다는 얘기다.
이들의 행보와 관련, 미심쩍은 시선을 보이는 이들도 있다. 최근 이들의 미디어 노출이 부쩍 잦아졌기 때문이다. 그간 이들이 정치권 밖에서 공정사회에 대해 의미 있는 목소리를 꾸준히 내왔던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 미디어에 의도적으로 자주 노출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들의 왕성한 활동과 관련 이들을 정치권에서 볼 날이 멀지 않았다는 얘기도 들린다. 실제로 안 교수의 <무릎팍 도사> 출연은 신선하기도 했지만 많은 의아함을 남겼다. 안 교수는 예능프로그램 출연 이후 다양한 세대로부터 지지를 얻게 됐으며 공익광고에까지 잇따라 출연하며 이 시대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또 수개월째 전국 대학가를 돌며 ‘청춘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는 두 사람은 이전과 달리 기업과 정부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도 마다하지 않으며 지지층을 늘려가고 있다. 암울한 청춘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정의사회 구현에 대한 실천의지를 북돋우는 등 멘토 역할 이상의 적극성이 엿보이는 행보다. 이 때문일까. 현재 이들은 정계 진출을 부인하고 있지만 정치준비를 위한 세팅작업을 하고 있다는 의심 섞인 눈초리도 있다. 또 당장은 아니더라도 ‘운명’처럼 정치참여를 선언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한사코 손사래를 치던 이들이 끝판에 정치권에 발을 들인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전력도 새삼 주목받고 있다. 비록 정치에 직접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이들이 추후에도 정치와 철저히 담을 쌓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얘기도 있다. 안 교수는 미래기획위원회 자문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그가 몸담았던 미래기획위원회는 미래사회 전망 및 사회통합, 미래생활과 관련된 총체적 전략수립에 관해 대통령 자문에 응하기 위해 설치된 조직으로 대통령 직속 기관이다. 또 그가 아름다운 재단 이사라는 점 등을 근거로 그가 결국 중도를 표방하며 정계에 진출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박 원장도 2008년 18대 총선 때 민주당 공천심사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어 정치에 아예 무관심하다고 볼 수는 없다. 당시 박 원장은 공천심사를 맡게 된 것과 관련 “시대상황에 투철한 편은 아니었지만 묘한 부채의식과 죄의식이 함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어쨌거나 한때나마 인연을 맺었던 민주당으로서는 “아예 남은 아니다”라는 기대감을 저버리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