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 사진은 지난해 INI스틸 당진공장을 둘러보는 정 회장. 오른쪽 사진은 지난 16일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한 정몽구 회장. 사진=이종현기자 jhlee@ilyo.co.kr | ||
정 회장의 이번 참석은 지난달 현대자동차 미국 앨라배마 현지 공장 준공식에 강신호 전경련 회장을 비롯한 재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서 만찬 초청과 함께 이뤄진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재계는 정 회장의 이번 3년 만의 ‘전경련 나들이’가 재계 인사들에 대한 감사 표시 이상의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2002년 5월 회장단 회의에 참석한 이후 정몽구 회장은 회사 일 등을 이유로 전경련 회의에 계속 불참해 왔다. 지난 2002년 2월 전경련 회장 선임을 위한 정기총회를 앞두고 전경련 내부에선 삼성 이건희 회장, LG 구본무 회장과 더불어 정 회장 등 이른바 재계 ‘빅3’ 총수들에게 신임 전경련 회장직을 적극 권유했다. 특히 현대 분열 사태 이후 현대차 경영을 무난하게 이끌어 현대가 장손으로서 재계의 인정을 받은 것으로 평가된 정 회장에게 많은 시선이 쏠렸다. 당시 박용성 대한상의 회장이 “(신임 회장은) 4대 그룹 중에서 나와야 한다”고 발언한 것은 정 회장을 지칭한 것으로 회자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 회장은 시큰둥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차는 당시 LG를 누르고 재계 2위에 올라서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던 시점이었고 정 회장도 전경련 업무보다는 그룹 경영에 주력하고 싶어했다. 그러다 보니 결국 전경련과도 소원해지게 됐다”고 밝힌다. 결국 2003년 2월 손길승 당시 SK 회장이 2년 임기 전경련 회장직에 오르게 됐다.
삼성 출신 현명관 전 전경련 부회장의 행보도 정 회장과 전경련의 관계를 불편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지난 2003년 8월 현대차가 파업 47일 만에 노사 합의를 이끌어내자 ‘사측이 노조에 너무 많이 양보했다’며 현대차를 비난하는 논평이 전경련에서 나왔을 때 현대차 관계자들의 불만이 현명관 당시 부회장을 향하기도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전경련과 담을 쌓아왔던 정몽구 회장이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배경으로 재계에선 재계 2위를 굳힌 정 회장의 자신감의 표출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LG를 앞질러 재계 순위 2위에 올라선 현대차그룹은 최근 들어 자동차 철강 자재 자급자족을 예측 가능케 하는 철강사업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달엔 미국 앨라배마에 자동차 공장을 설립해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위상을 높이기도 했다. 16일 회장단 회의 직후 정 회장은 참석 인사들에게 만찬을 베풀었다. 그동안 전경련과 소원했던 관계를 털어 버리고 재계 실력자로서 대외 활동에 적극 나서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현명관 전 부회장이 올 2월 물러나 삼성물산 회장으로 복귀하면서 전경련이 ‘탈 삼성화’ 제스처를 취한 것도 정 회장의 전경련 재등장을 가능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그룹 비서실장 출신인 현명관씨가 부회장으로 재직할 때 일부 재벌들은 전경련을 일컬어 ‘삼경련(삼성경제인연합회)’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올 초엔 전경련 회장단이 이건희 회장을 전경련 회장으로 추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삼성의 입김이 너무 세다는 불평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유로 재계 일각에선 ‘이건희 카드’ 불발과 현명관 부회장 퇴임으로 삼성의 영향력이 줄어든 전경련을 정 회장이 주무르려 한다는 시각까지 등장했다. 지난 70~80년대 현대그룹은 사실상 전경련을 이끌다시피했다. 77년부터 87년까지 10년간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13~17대 전경련 회장직을 맡아 재계의 실력자로 군림했던 것이다. 현대가의 장자인 정 회장이 선친의 대를 이어 전경련 회장직에 올라 옛 현대의 영광을 재현하려 한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이다.
재계의 한 인사는 “정주영 명예회장의 숙원사업이던 철강사업에 현대차가 적극 뛰어들어 향후 포스코를 위협할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선친이 못 다 이룬 꿈을 펼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이뤄진 전경련 재참여도 정몽구 회장이 현대가의 장자로서 위상을 높이고 선친의 대를 이어 전경련 회장직을 노리기 위함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평했다.
재계 주도권 획득 포석과 함께 ‘삼성공화국’ 견제심리가 작용한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경기침체로 인해 어려운 회사 경영에 전력을 다하고 재계를 대표해서 정부에 의견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빚어질 ‘정치적 오해’를 우려해 그동안 4대 재벌 총수들이 전경련 회장직을 꺼렸지만 이젠 상황이 변했다. 정부와 여당이 경제에 올인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재계 위상도 격상되는 시점이다. 삼성공화국이란 말이 등장할 정도로 삼성 영향력이 사회 전반에 강하게 미치는 지금 전경련에선 삼성의 힘이 일시적으로 주춤한 상태다. 이럴 때 정 회장이 치고 들어가 전경련을 장악하고 싶어할 것”이라 전망했다. 김우중 전 대우 회장 귀국 이후 재계의 대처과정에 정 회장이 앞장서면서 재계 대표자로서의 위상을 세우려 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에 대해 현대차그룹은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그룹관계자는 “(정 회장이) 전경련 회장직을 고사했던 것이나 그동안 전경련 모임에 참석하지 않은 것은 국가산업인 자동차 분야에 주력하기 위함이었다. 앞으로의 전경련 활동 폭은 아직 단정짓기에 이르다”고 신중론을 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