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최근 이 씨처럼 고액의 수입이 보장되는 대리모 알바를 택하고 있는 20대 여성이 점점 늘고 있다. 대리모 실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하고 있는데도 법적인 제도는 미비한 상태여서 적지 않은 부작용들이 속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리모 세계에 감춰진 ‘불편한 진실’을 들춰봤다.
“점점 대리모 지원자의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는 것 같다”
4년 전부터 한 달에 약 40~50명의 대리모 지원자들을 관리하고 있다는 한 베테랑 중개인은 “원래 급전이 필요한 30대 초중반 신용불량자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최근 2년 사이에 다들 알 만한 대학에서 배울 만큼 배운 어린 여대생들의 지원이 급증해 놀랐다”며 “비율상으로 보면 10명 중 6명이 여대생 지원자였다”고 귀띔했다. 이어 그는 “며칠 전엔 (대리모 알바를) 어떻게 알았는지, 갓 20세 된 어린 여대생들이 지원을 해 설득해서 돌려보내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최근 몇 년 사이 여대생 지원자가 급증하자 몇몇 중개인들은 ‘25~26세 미만의 여성은 받지 않는다’는 나름의 ‘방침’을 세우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처럼 주변의 부정적인 인식에도 불구하고 여대생 대리모들이 늘어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취재 과정에서 만난 대리모들은 한결같이 “거액의 돈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임신 기간 동안 미래를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대리모 유미영 씨(가명·24)는 현재 서울의 한 원룸에서 기거 중이다. 일부러 가족이 있는 지역과 가장 거리가 먼 지역으로 이사를 왔다고 한다. 대리임신 12주째지만 영어 학원에서 수업을 꾸준히 들으며 스터디에도 참여하고 있다. 원래 알고 지내던 이들과의 교류는 차단한 지 오래다. 이름도 가명을 사용한다. 휴대폰은 불임부부의 수정란이 착상된 직후부터 정지시켰다.
“가족과 지인들에겐 미국 대학 교환학생에 합격했다고 했다. 교환학생 기간이 2학기 정도라서 출산기간과 비슷하다. 장기간 동안 대리모 알바 하는 것을 숨기기엔 딱 좋은 핑계라 안심도 되고, 정말 교환학생이라도 된 양 열심히 공부하게 된다.”
통번역대학원을 준비하고 있는 유 씨가 불임부부로부터 지원받는 것은 출산 때까지 기거할 숙소와 생활비 월 90만 원이다. 얼마 전엔 “공부 열심히 하라”며 월 10만 원을 추가로 받기도 했다. 불임부부 측이 대리모가 공부를 열심히 하면 태교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학습비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출산 직전까지 지인의 ‘눈’을 피할 주거공간과 생활비, 그리고 사례금까지 제공 받다보니 형편이 어려운 여대생들의 대리모 지원이 증가하게 됐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 한 대리모 중개인은 “요즘 여대생들은 커리어에 욕심이 많은 것 같다. 똑 부러진 학생들이라서 그런지 유흥업소에서 굳이 고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대부분 대리 임신 기간 동안 공짜로 의식주를 해결하며 편하게 공부하고, 출산 후엔 거액을 챙겨 나가 잘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결혼 경험이 없는 여대생들이 대리모가 되는 게 마음 아프지 않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 중개인은 “자신들로 인해 불임부부들이 아기를 얻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답했다.
업계 일각에선 지난해 초 종영한 모 방송사의 드라마가 여대생 대리모 증가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실제로 기자가 대리모 의뢰인으로 가장해 20대 초중반 여대생 대리모 지원자 2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7명(80%)이 ‘드라마를 보고 대리모 알바를 알게 됐다’고 답했다. 또한 대리모 인식에 대한 설문에선 15명(71%)이 ‘여주인공이 대리모 알바를 하는 장면을 시청하고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답했다. 여주인공이 아버지 수술비 마련을 위해 대리모 알바를 하며 겪는 이야기를 다룬 이 드라마를 통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면 대리모 알바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김은희 씨(가명·27) 역시 드라마를 본 이후 대리모에 뛰어든 케이스다. 김 씨는 “대리모 알바를 하기 전까지 많은 고민을 한 것도 분명 사실이다. 알 수 없는 죄책감도 들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한 드라마를 보게 됐는데 여주인공이 대리모로 나왔다. 그게 대리모 알바를 하는데 어떤 합리화 내지는 위안을 줬던 것 같다.”
드라마 때문인지 요새 지원자들이 몰려 대리모 시장도 경쟁이 치열해졌다고 밝힌 김 씨는 의뢰인 불임부부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만들었다는 1년 계획표를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 여기에는 ‘오전 8시 기상, 건강식으로 식사, 오전 10시 자격증 동영상 강의, 가벼운 산책, 오후 3시 클래식 듣기’ 등 하루 일정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20대 여대생 대리모 증가현상과 관련해 서울대 사회학과 배은경 교수는 “불임부부 증가와 맞물려 필연적으로 대리모 시장이 형성된 것일 뿐 여대생 대리모가 증가한 것을 특별하게 바라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청년실업 상황에서 어떻게든 삶의 기회를 찾아보려는 여대생들이 점점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대리모 시장에 공급원으로서 투입되는 것은 어느 정도 예견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분석이다. 배 교수는 “어린 여대생의 대리모 알바는 일종의 사회구조적인 ‘강요된’ 합리성의 문제로 바라봐야지 ‘어떻게 여대생이 대리모를 하느냐’며 개인적인 특이점으로 한정해서 봐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해당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국내 대리모 중개인들은 하루에도 약 20~30통이 넘는 대리모 지원자들의 메일을 받고 있다. 이것을 꼼꼼히 읽어보고 연령대, 지원동기의 진정성 등을 기준으로 의뢰인과 면접을 볼 대리모를 선발한다고 한다. 이 같은 추세라면 앞으로 대리모 시장이 더 치열해짐은 물론 법적인 보호 장치가 없는 환경에서 임신, 출산을 경험할 여대생 대리모들이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워 보인다. 따라서 여대생 대리모 증가 현상을 개인의 ‘잘못된’ 선택으로 치부하기보단 불임부부들이 왜 입양보다는 거액의 돈을 지불해가며 생물학적 자식을 낳고자 하는지 진지한 사회적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