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반 협회 임한필 사무총장(왼쪽 두번째)과 단원들이 24반 무예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
더 놀라운 사실은 21세기인 현재까지도 이러한 백동수의 무예가 계속 전승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80년대 재야 무예가 임동규 선생에 의해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24반 무예’가 복원된 이래, 현재 젊은 무예가들이 이를 계승하고 있다. 조선 제일의 무사 백동수가 남긴 전설의 무예 ‘24반 무예’ 계승자들을 직접 만나봤다.
기자는 지난 8월 9일 ‘사단법인 24반 무예협회(이하 24반 협회)’ 단원들이 정기적으로 무예시범을 선보이고 있는 수원 화성행궁을 찾았다. 수원은 백동수와도 깊은 인연이 있는 곳이다. 그의 본관이 수원이었고, 당시 그를 촉망하던 정조대왕이 왕권강화를 위한 천도예정지로 꼽은 곳도 수원이었다. 화성 건축의 목적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시범을 앞두고 도복을 차려입은 몇몇 단원들의 모습에서 불현듯 고수의 기운이 물씬 풍겼다. 화성 돌벽 앞에서 펼쳐진 그들의 검무와 진검 대결 시범은 기자의 눈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실로 무사 백동수의 환생을 보는 듯했다.
24반 협회는 조선후기 전설적인 무사로 회자되는 백동수(1743~1816)가 제창한 24반 무예의 계승과 대중화 작업을 꾀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최근 SBS에서 백동수의 일대기를 그린 월화드라마 <무사 백동수>가 큰 인기를 끌면서 24반 무예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24반 무예는 조선후기 정조대왕 시절 왕의 명을 받들어 무인 백동수가 동시대 지성으로 손꼽히는 실학자 이덕무, 박제가 등과 의기투합해 만든 무예교본 <무예도보통지>(1789)에 수록되어 있는 24종의 무예를 통칭한다.
24반 협회 임한필 사무총장은 “24반 무예는 18가지의 보병무예와 6가지의 기병무예가 결합되어 있는 우리 전통 종합 무예다. 창법(槍法)과 검법(劍法) 등 갖가지 무기를 이용한 무예는 물론 권법(拳法)과 마상무예도 속해있다. 24반 무예는 당시 조선의 무예와 더불어 인근국가인 청과 왜의 무예도 결합되어 있다. 일종의 동북아 종합 무예라고도 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기자 앞에서 선보인 단원들의 24반 무예는 실로 다채로웠다. 진검을 이용한 서늘한 검법과 장창을 이용한 웅장한 창법, 여성 단원들의 절제된 미를 엿볼 수 있는 검무 등 그 화려함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24반 무예의 탄생은 당시 시대적 상황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백동수와 이덕무, 박제가 등에게 <무예도보통지> 편찬의 명을 내린 정조대왕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한 인물이다. 드라마 <무사 백동수>에서도 그려지듯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는 ‘광인’의 모함과 더불어 노론과의 파워게임에서 희생된 비운의 인물로 알려졌다. 당연히 아들 정조는 국권을 바로잡고 ‘왕권 강화’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 검법(위)과 활쏘기 시범을 보이고 있는 단원들. |
하지만 백동수의 24반 무예는 일제 강점기 큰 위기에 봉착한다. 일제에 의해 전통무예의 계승이 탄압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흔적 없이 사라질 뻔한 24반 무예는 70년대 한 재야 무예가에 의해 다시금 빛을 보기 시작한다.
무예가들 사이에서 숨겨진 명인으로 꼽히는 재야 무예가 임동규 선생(72)은 1970년대 지인을 통해 우연히 역사 속에서 잊혀진 백동수의 <무예도보통지>를 접하게 된다. 그렇게 24반 무예의 복원작업은 시작됐다.
하지만 임 선생의 복원작업도 첩첩산중이었다. 통일운동가(당시 임 선생은 서울대 상대를 졸업하고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총무부장으로 재직하면서 통일운동에 투신했다)이기도 했던 임 선생은 복원작업 도중 ‘통혁당 재건위 사건’에 연루돼 1979년께 투옥된다. 하지만 그의 열정은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임 선생은 1988년 가석방되기까지 꼬박 10년간 24반 무예 복원에 박차를 가하며 결국 완벽한 복원에 성공했다.
석방 이후 임 선생은 본격적으로 24반 무예의 계승과 대중화 작업에 열을 올렸다. 지난 1998년 현재의 24반 무예협회를 만들어 민족도장인 경당을 세웠다. 현재는 13개 광역시도에 지역협회가 조직되어 있고 미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 노르웨이, 엘살바도르 등 해외지역에서도 시범공연을 진행하며 지부를 운영 중이다.
물론 아직까지 24반 무예는 기존의 전통무예인 택견과 태권도처럼 일반인들에게 익숙지 않은 무예다. 그렇지만 임 총장은 24반 무예가 다른 어떤 무예와 견주어 봐도 매력적인 무예라고 강조했다. 그는 “맨손으로 하는 권법뿐 아니라 검, 기창, 곤방, 마상무예, 활쏘기 등 다양한 형태의 기법과 무예가 24반 무예에 들어있다. 매우 다채롭다. 검법만 하더라도 일본의 검도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단순한 앞뒤 움직임과 공격만 중시하는 검도와 다르게 24반 무예의 검법은 전후좌우 방향전환과 검을 감는 방어 중심의 동작으로 되어 있다. 또 1000여 가지 이상의 다양한 동작이 존재하기 때문에 놀라운 운동효과와 두뇌회전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기자는 24반 무예 시범 현장에서 무예를 수련 중인 청년들을 만날 수 있었다. 24반 무예를 수련한 지 3개월째라는 박현민 씨(29)는 “24반 무예는 다양한 기법이 응용되는 무예다. 자연스레 많은 관절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정말 다른 무예와 비교해 운동량이 많다. 또 24반 무예를 수련하는 무예가들 대부분이 상업적 목적보다는 수련 자체에 목적을 두기 때문에 그 정신에 있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학교 수업을 통해 우연히 24반 무예를 접했다는 무용학도 권미애 씨(27·한양대 무용과)는 “현재 24반 무예 중 검무를 배우고 있다. 원래 무용을 전공하고 있는데 무예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무용과 마찬가지로 무예 역시 몸으로 표현하는 예술이다. 좋은 경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이쪽으로 계속 일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하지만 24반 무예의 갈 길은 아직 멀다. 타 무예종목과 비교해 인지도가 낮기 때문에 도장 운영 등 마땅한 수익사업이 어렵고, 정부의 지원도 시원치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24반 무예는 ‘2007 MBC-ESPN 지도자상’ ‘2008 대한민국무예대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2009 문화예술위 국제문화교류 지원 사업 선정’ 등 나름의 성과를 내고 있다.
임 총장은 “지난 2008년 국회에서 전통무예진흥법이라는 관계 법안이 통과됐다. 하지만 내용적 측면에서 지나치게 두루뭉술하고 빈약한 법안이다. 이마저도 관계부처 시행령은 아직 선포되지 않았다. 정부 지원도 아직 많이 부족하다. 전통무예의 진흥에 많은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 최근 드라마를 통해 24반 무예의 창시자인 백동수가 재조명되고 있는데 이러한 계기를 통해 24반 무예가 널리 알려졌으면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드라마 속 깨방정 실제론 곧고 묵직
하지만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러한 드라마 속 백동수는 실제 역사 속 백동수와는 큰 차이가 있다고 한다. 무예가 김광식 마상무예학교 팀장은 “백동수의 가문은 오래 전부터 굵직한 무인들을 배출한 뿌리 깊은 가문이다. 그의 신분이 중인이었다고는 하나 ‘판자촌’에서 성장할 만큼 열악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 백동수는 드라마에서 아버지 백사굉이 태어나기 전 처형당해 부친의 보살핌을 받지 못했던 것과 다르게 아버지의 보호 밑에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백동수는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것처럼 다소 희화화되고 방정맞은 인물은 아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24반 무예협회 임 총장은 “드라마 속 백동수는 지나치게 희화화된 인물이다. 당시 백동수는 ‘문(文)으로 무(武)를 이룬 인물’로 평가받았다. 인재(靭齋) 또는 야뇌(野餒)와 같이 그의 곧은 성격을 나타내는 호에서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역사 속 인물이기 때문에 실제 정확한 묘사는 어렵지만 무인다운 곧고 묵직한 인물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설명했다.
백동수가 조선 제일의 명검인 김광택에게 가르침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드라마처럼 김광택이 백동수의 부친 백사굉과의 관계로 인해 가르침을 준 것은 아니다. 사료에 따르면 백동수가 김광택을 직접 찾아가 삼고초려 끝에 가르침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