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제공=KBS |
하루 종일 촉촉이 비가 내린 지난 8월 16일 서울 대방초등학교에서는 은은한 노래 가락이 흘러나왔다. 바로 최근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며 폭풍감동을 선사하고 있는 <해피선데이> ‘남자의 자격’ 청춘합창단의 하모니였다. 비바람에도 불구하고 52세부터 84세까지 40명의 청춘들은 합창대회를 앞두고 연습에 몰두하고 있었다. <일요신문>에서는 ‘남자의 자격’ 청춘합창단의 뜨거운 연습현장을 직접 찾았다.
#한계
오디션부터 많은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붉혔던 ‘청춘합창단’. <슈퍼스타 K> <위대한 탄생>과 같은 뛰어난 가창력과 기교는 없었다. 다만 오디션 참가자들의 굴곡 많은 사연들이 노래와 함께 어울리면서 대중들의 가슴을 흔들고 있다.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과 달리 ‘청춘합창단’의 인기 비결은 ‘완벽하지 않다’는 것에 있다. 최고 실력자들을 모아 합창단을 꾸리기보다는 노래에 대한 진심과 열정을 최고 우선순위에 둔 것. 이에 대해 ‘청춘합창단’에서 테너를 맡은 이영현 씨는 “서류심사에서부터 정말 실력자들만 모아서 합창단을 꾸릴 수도 있었지만 ‘청춘합창단’은 사연 하나하나에 더 중점을 둔 것 같다”며 “비록 실력은 완벽하진 않아도 노래에 대한 열정이 남달라 진정한 하모니를 만들어내며 발전하는 모습이 더 아름다운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러한 의미를 담아 ‘청춘합창단’은 실력파 단원이 아닌 84세 최고령 노강진 단장을 솔리스트로 정했다. 84세의 나이로 완벽한 가창력을 갖고 있지 않지만 20대부터 삶을 함께 해온 합창에 대한 변하지 않은 열정이 솔리스트로 선택된 가장 큰 이유다. 10년 동안 성대결절로 교편을 놓았던 이원배 씨 또한 청춘합창단을 통해 노래를 다시 부를 수 있었다. 유방암을 이겨낸 김현실 씨는 남편 권영찬 씨와 함께 부부가 함께 합창단원이 됐고, 전직 아나운서 석영 씨와 박찬열 단원도 부부다. 연예인 단원은 이주실과 최영철 둘인데 원로 연극배우 이주실은 늑골까지 전이된 유방암 말기 판정을 받았지만 결국 완치된 경험을 갖고 있고 최영철은 자신의 이름보다는 노래로 더 잘 알려진 25년차 성인가요 가수다. 이밖에도 채식을 통해 회춘해 두 번째 갱년기를 맞고 있는 양송자 씨(75), 지난해 간과 신장을 이식받은 이만덕 씨, 15년 동안 장애가 있는 아내를 돌보고 본인 역시 대장암 수술을 극복한 주영희 씨 등 각자의 사연을 가진 40명의 단원이 모여 하나의 하모니를 만들어가고 있다.
#첫 경험
52세부터 84세까지 40명의 청춘들이 모였다. 마음은 이팔청춘이라고 해도 이들에게 ‘아이돌’은 도저히 익숙하지 않은 존재(?)들이다. 손자 손녀들이 따라 부르는 것은 가끔 봤지만 생전 처음 아이돌 노래를 부르려니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악보를 볼 수 있는 단원들조차 2NE1, 2PM 등의 인기 아이돌 노래를 부르려니 막막했다고 한다.
청춘합창단의 첫 경험은 이뿐만이 아니다. 바로 난생 처음 접해보는 방송 현장과 평소에는 실제로 볼 수 없었던 연예인들을 직접 접한 것. 연습 현장에서 만난 한 단원은 “생각보다 스태프 수가 너무 많아 놀랐다”며 “상상이상으로 방송하는 사람들의 노고와 애환이 많은 것을 느꼈다”고 밝혔다.
방송을 위해 분장을 하는 것도 생소하다. 특히 70년 평생 화장을 처음 해 본다는 홍숙례 씨와 ‘회춘할머니’ 양송자 씨, 그리고 30년 만에 처음 립스틱을 바른다는 84세 ‘왕언니’ 노강진 씨 등은 “으악 너무 빨개”라며 소녀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들의 화장을 도와주는 50~60대의 젊은(?) 여성 단원들의 모습 역시 청춘, 아니 소녀를 닮아 있다.
기자들을 접하는 것 역시 이들에겐 첫 경험이다. 지난 16일 연습을 마치고 나오던 청춘합창단 단원들은 기자의 인터뷰 시도에 대부분 “제작진이 응하지 말라고 했다”며 미안함을 표했다. 특히 한 단원은 “연습 과정 하나하나가 소중한 방송 내용이라 가족들에게도 별다른 얘길 안 하고 있다”면서 “여기까지 취재하러 왔는데 아무 말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청춘합창단’에서는 올해 52세인 성인가요 가수 최영철 씨가 막내다. 어지간한 자리에선 대접을 받을 법한 나이지만 합창단에서 막내인 그는 빵과 음료 등 간식을 다른 단원들에게 나눠주는 궂은 일을 도맡아해야 한다. 최영철은 “정말 예상치 못했는데 합격해서 꿈만 같았다”며 “‘남자의 자격’ 방송 이후 지방 축제와 같은 행사도 많이 들어오고 알아봐 주시는 분들도 늘어 기쁘다”고 말했다.
#열정
평균 연령 62.3세. 하지만 이들의 열정은 남달랐다.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매주 화요일마다 있는 연습을 위해 경남, 강원, 충청 등 전국 각지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찾아온다. 평소와 달리 오전 10시에 연습을 시작한 지난 16일, 경상도 등 남부지방에서 상경하는 단원은 오전 4시에 일어나야만 한다. 직접 운전을 해서, 또는 기차나 고속버스를 타고 몇 시간의 이동 끝에 오전 10시부터 연습에 들어간 단원들은 저녁 6시가 넘어서야 연습 일정을 모두 마치고 다시 귀향길에 올랐다. 언론에 연습 현장을 공개했던 9일 연습 녹화 당시 ‘꿀포츠’ 김성록 씨가 참가하지 못한 까닭 역시 연습 때마다 네 시간 넘는 거리를 직접 운전해서 다니다 지병인 디스크가 재발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몸이 많이 지쳐 있어야 할 테지만 녹화가 모두 끝난 뒤 연습장인 대방초등학교를 나서는 단원들의 표정은 너무나 밝았다. 나이는 숫자일 뿐, 마음이 청춘인 그들은 몸도 청춘인 듯 보였다. ‘남자의 자격’ 조성숙 PD는 “지난 16일 녹화 시간이 평소보다 길었지만 힘들어 하시는 모습은 전혀 없었다”며 “어르신들을 위해 쉬는 시간을 적절히 배치하기도 하지만 즐겁게 연습에 임하시기 때문에 힘들어하는 기색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간 중간 연습시간은 분명히 있었다. 그때마다 ‘남자의 자격’ 출연 연예인들 중 서너 명이 학교 1층으로 내려와 바람을 쐬는 모습이 엿보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단원들이 내려오는 모습은 보기 힘들었다. 쉬는 시간에도 단원들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며 실력과 정을 쌓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몇몇 단원들은 녹화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도착하여 담소를 나누는 모습도 포착됐다. 75살 동갑내기 친구 양송자 씨와 배용자 씨는 “왜 이렇게 일찍 왔느냐”며 소녀처럼 반갑게 인사하는 등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했다. “집안 설거지를 할 때에도 저절로 노래가 나온다”는 하옥 씨, “꿈이 실현됐다는 것에서 자부심과 긍지를 느낀다”는 박석주 씨 또한 합창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
청춘합창단을 위해 회사 일을 제쳐두고 열정을 쏟아 부었던 단원들도 있다. 온라인상에서 많은 화제를 낳은 호텔 CEO 권대욱 씨. “한 번도 사장이란 자리를 내 삶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밝혀 주위를 놀라게 한 그는 “청춘합창단 활동에 대해 회사주주들에게도 동의를 얻었다”고 말해 노래에 대한 열정을 엿볼 수 있었다.
#배려
최고의 실력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마음가짐과 열정으로 모인 청춘합창단. 이 프로그램에는 근래 범람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들이 많다. 다른 단원들을 서로 챙겨주는 모습과 서로에 대한 배려가 더욱 돋보이는 것. 악보를 읽을 수 없는 단원들은 주변에 있는 동료 단원들이 음을 익힐 수 있도록 서로를 돕는다. 단원 이영현 씨는 “나처럼 악보를 볼 줄 아는 이들도 아이돌 노래 악보는 보는 게 쉽지 않다”면서 “전혀 악보를 볼 줄 모르는 분들은 더욱 힘겨웠지만 배우려는 의지가 워낙 강하시고 옆에서 서로서로 알려주다 보니 이제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카리스마로 오디션 현장을 사로잡았던 ‘꿀포츠’ 김성록 씨. 김태원마저 그를 합창단원으로 선발하는 과정에서 강렬한 카리스마가 신경 쓰였을 정도라고 한다. 그렇지만 테너 파트장이 된 김성록 씨의 부드러운 노래 교습, 특히 ‘블랙홀’로 불리는 전 농구 감독 이충희 씨와 전현무를 성심성의껏 돕는 모습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진정한 ‘하모니’를 이루기 위해 의견충돌과 같은 불협화음도 피해갈 수 없다. 연습 초반엔 지휘자 김태원과 단원들의 의견이 상충돼 충돌이 야기되기도 했다. 심지어 한 단원은 “이대로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라고 말한다. 방송에는 배용자 단원이 “어떤 경우에서든지 지휘자의 말을 들어야 한다”며 양측의 의견 충돌이 해결되는 모습만 소개됐지만 그 이전 상황의 의견충돌은 다소 심각한 상황이었다고.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게 만들어 준 것이 바로 서로에 대한 배려였다. 단점을 서로 지적하기보다는 서로 채워주는 방향으로 연습이 진행되고 있는 것. 노래를 사랑하는 열정과 서로를 향한 배려를 통해 40명의 청춘합창단 단원들은 진정한 ‘하모니’를 완성해가고 있다.
최정아 기자 cja87@ilyo.co.kr
까칠 완규? 정말 순수한 분
“솔직히 부활을 잘 알지 못 했었어요.”
▲ ‘남자의 자격’에 출연하고 있는 김태원, 임혜영, 박완규(왼쪽부터). |
남자의 자격 멤버에 대해서 한 단원은 “이경규 씨 같은 연예인을 가까이서 처음 보니 신기했다”며 “다들 생각 이상으로 너무 착하고 잘 챙겨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남자의 자격’ 멤버들에게 ‘청춘합창단’은 또 다른 도전이다. 지난해 최고의 화제로 떠올랐던 박칼린의 ‘남격 합창단’과는 차원이 달랐다. 바로 합창단 지휘 경험이 전무한 김태원이 지휘봉을 잡았기 때문. 초짜 지휘자 김태원은 노래에 대한 열정 하나로 모인 아마추어 ‘청춘’ 단원들과 함께 하모니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이에 대해 어느 한 단원은 “대중음악만 하셨던 사람이 지휘를 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김태원 씨가 지휘에 도전하는 정신이 대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남자의 자격’ 조성숙 PD는 “이미지를 위해 선글라스를 고집하던 김태원과 박완규가 선글라스를 벗었다”며 “이런 열정어린 모습에 단원들이 많은 감동을 하며 연습에 더 많은 열정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청춘합창단’에 참가한 박완규에 대해 합창단 멤버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한 단원은 “정말 순수하고 착한 분”이라며 “발성부터 전반적인 부분에 대해 자세히 공부해오고 노력하시는 것이 보인다. 준비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
“세 딸과 손자손녀에 좋은 선물이 됐으면”
―어떤 계기로 ‘청춘합창단’ 오디션을 보게 된 건가?
▲지난해 결혼한 둘째 딸이 원서를 접수해서 오디션을 봤다. 어렸을 때부터 노래를 좋아했고, 학창시절부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해서 성가대 등 합창단을 많이 해왔다. 오디션 서류심사 합격하고 면접을 보러 왔더니, 노래 좋아하는 분들이 정말 많더라. 지휘하셨던 분도 계시고 노래교실 강의하셨던 분도 계시고, 사장, 강사도 있고. 만약 이해관계가 얽혀서 합창단이 꾸려졌으면 절대 이렇게 못 간다. 음악이라는 순수한 마음으로 모아서 가는 거라 이 인연이 끝까지 이어질 것 같다.
―경쟁이 치열했던 만큼 합격 소식이 전해졌을 때, 더 큰 기쁨으로 다가왔을 것 같은데.
▲합격했을 때 정말 마음이 이상하더라. 내 나이가 44년생으로. 올해 예순 여덟 살인데 마치 고시에 합격한 것처럼 기분이 좋더라. 방송이 시작된 뒤 연락 끊겼던 친구들에게 연락이 오고, 주변사람들도 즐거워한다. 이렇게 나로 인해서 즐거움을 나누니 정말 기쁘다. 이런 것을 보면 매스컴의 힘이 대단한 것 같다. 단원들 각각의 사연들이 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 얘기인 것 같고, 그래서 공감을 많이 해주시는 것 같다.
―합창 연습이 곧 방송 녹화인데 어려운 점도 있을 것 같다.
▲나는 대장암 수술을 받았는데 대장암 수술을 받은 사람은 화장실이 급하면 어서 가야 된다. 그런데 녹화 도중엔 그럴 수 없어 어려움이 있다. 그래도 좋아하는 일이라 이 녹화 날만 기다려진다. 정말 기쁜 마음으로 연습하고 있다.
―가족들의 반응은 어떤가.
▲당연히 너무 좋아해주고 응원을 보낸다. 난 월남전에 다녀왔다. 당시 미군들이 위에서 무슨 물을 뿌려서 이게 뭔가 했었는데 알고 보니 그게 고엽제더라. 우리 손자 가운데에도 선천적으로 아픈 아이가 있는데 혹시 나 때문에 그런 게 아닌지 항상 미안하다. 그래서 이 합창단이 선물이 됐으면 한다. 이 아름다운 화음이 손자에게 힘이 됐으면 한다. 내가 딸이 셋 있다. 세 딸과 손자 손녀들에게 정말 좋은 선물이 됐으면 좋겠다. [정]